대한민국은 ‘성희롱, 추행’의 선진국인가?
국회의원·교수·경찰·교사 사회 지도층 잇단 성범죄
대학교수부터 국회의원, 경찰관, 고등학교 교사까지 권위를 가진 집단의 성범죄 혐의가 연일 들춰지고 있다. 양성평등을 향해 달려가는 시대에도 적잖은 지도층 남성의 성의식은 여전히 빈곤하다. 2015년 여름, 우리 사회는 변화를 거부하는 한국 마초의 민낯을 보고 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마초문화가 무엇인지에 대해 “감수성이 둔감하다, 이 한마디로 요약된다”고 답했다. 이 교수는 “마초 문화는 기본적으로 배려가 없고 결국 피해자와 약자, 여성의 입장에 무감각한 태도가 권력 남용과 맞물려 이런 사건의 주인공이 된다”고 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최근 성범죄 가해자로 등장한 경찰 교사 국회의원 등은 모두 권력이 주어진 사람이다. 그 권력을 이용해 주변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악용하는 습성이 생겼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이런 성범죄자를 ‘권력지향적 사회범죄자’라고 지칭했다. 자신이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이 부류는 잘못을 저질러도 발각되지 않거나 무마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에는 서로 비행을 알게 모르게 숨겨주는 ‘침묵의 문화’가 있다. 다 권력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라고 이 교수는 꼬집었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성공한 사람일수록 더 높은 도덕 수준을 요구받는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어도 지도층 성범죄가 끊이지 않는 건 여성과 달리 남성의 의식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회학자들은 이를 ‘문화지체’라고 한다”고 설명했다. 남의 눈이 없는 곳에서 권력 남용은 더 노골적으로 나타난다.
교사가 교사 아니다. 부산에서도 교사 성희롱
부산의 한 고등학교에서도 교사가 상습적으로 여학생들을 성희롱한 것으로 알려졌다. 더불어 같은 학교의 또다른 교사는 동료 여교사들을 성추행한 것으로 드러나 파문이 일고 있다. 6일 부산시교육청에 따르면 부산 모 고교의 교사 A(51)씨는 지난해 3월부터 최근까지 여학생 5명을 성희롱했다. A씨는 학생들에게 '섹시하다. 남자친구와 잠자리를 했나?', '몸이 예쁘니 누드모델을 해도 되겠다', '엉덩이를 만지고 싶다' 등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학교는 문제가 불거지자 A교사가 피해 여학생들에게 사과하는 선에서 사건을 덮으려다가 추가 피해 학생이 나타나자 40일 가량이 지나서야 시교육청에 사실을 알리고 경찰에 신고했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A교사는 성희롱은 일부 인정하지만 성추행은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시교육청은 지난 7월 A교사를 직위해제하고 정직 3개월의 징계를 처분했다. 또 신고를 늦게 한 학교장에 대해서는 '견책'이라는 경징계를 내렸다.
경찰은 A교사의 성희롱 혐의를 인정해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이 학교에서는 교사 간 성추행 문제도 불거졌다. 시교육청은 같은 학교 수석교사 B(58)씨가 지난 해부터 동료 여교사 10명을 성추행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시교육청은 B교사를 직위해제한 상태이며, 경찰 조사에서 성추행 혐의가 인정되면 중징계할 방침이다.
연쇄 성추행·성희롱 사건을 일으킨 서울의 한 공립학교 교사들에 대한 서울시교육청의 특별감사가 본격화하면서 이들에게 어떤 처벌이 내려질지에 관심이 쏠린다. 추후 교단 복귀 여부가 달렸기 때문이다.
파렴치 성교사들, 교단 영원히 퇴출해야, 교육당국 솜방방이처벌 문제
파렴치한 성범죄를 저지른 교원들은 교단에서 영원히 퇴출해야 한다는 국민적 목소리가 커지는 상황에 있다. 6일 교육당국에 따르면 일단 현재까지 가해교사로 지목된 교사 5명은 교육당국의 중징계를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서울시교육청은 앞으로 특별감사 결과를 토대로 징계위원회를 열어 징계 수위를 결정하게 된다. 감사 결과를 지켜봐야겠지만, 현재 법규상 해임이나 파면을 받을 공산이 크다는 게 중론이다.
지난 4월부터 성범죄 교원에 대한 징계를 대폭 강화한 '교육공무원 징계 양정 등에 관한 규칙' 개정안이 시행되고 있기 때문인데 개정안은 국·공립 초·중·고등학교 교사와 대학교수가 성폭력을 하면 비위 정도에 상관없이 해임 또는 파면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과거에는 성폭력 정도에 따라 견책·감봉·강등·해임·파면 등의 징계를 내리는 것이 가능했지만 이제 '솜방망이' 처벌이 어려워졌다.
가해교사들은 여학생들에게 '황진이', '춘향이' 등의 별명을 지어주는 등 성희롱·성추행 의혹이 속속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특히 한 가해 교사는 여학생에게 "공부 못하면 미아리간다"는 차마 입에 담지 못할 폭언을 했고, 이 여학생은 나중에 '미아리'가 성매매 집결지를 뜻한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교육청은 경찰 수사결과에 따른 형사처벌 수위와 관계없이 중징계를 내릴 가능성이 유력하다. 다만, 이들 교사의 영구퇴출 여부는 범죄 대상이 학생이냐, 아니냐에 따라 달라진다. 학생들에게 성범죄를 저지른 교사는 사실상 교단 복귀가 불가능하다. 교육공무원법은 미성년자에 대한 성폭력 범죄로 파면·해임되거나 1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을 받는 경우 임용결격 사유로 하고 있다. 이 조항은 사립학교 교원에게도 준용된다.
그러나 여교사들을 상대로 성폭력을 행사한 교사가 교단에 다시 설 길이 완전히 차단된 것은 아니다. 해임 또는 파면돼도 교원 자격증까지 박탈되지 않는다는 점에서다. 국가공무원법상 파면 처분을 받으면 5년 동안, 해임 처분을 받으면 3년 동안 다시 공무원으로 임용하지 못한다. 이 기간이 지나면 교직에 복귀하는 것이 가능한 셈이다.
교육부는 이런 허점을 보완하려고 지난 4월 교육공무원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개정안은 성인 대상의 성폭력으로 파면·해임된 교육공무원까지 임용결격, 당연퇴직 범위에 포함했다. 또 성범죄 경력을 교원자격 결격사유에 추가해 교원자격을 취득할 수 없도록 하는 유아교육법 및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오는 10월께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이런 법령이 국회에서 통과되면 교사들은 성범죄 수위나 대상에 상관없이 다시 교단에 설 수 없게 된다. 성범죄 경력자는 교원 취득이 원천적으로 봉쇄된다. 따라서 이번 성추행 사건을 계기로 국회가 학교 성폭력을 예방하기 위한 법안 처리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교육살리기학부모연합은 5일 성명을 내고 "국회는 야수처럼 성범죄를 저지른 부적격 교사를 퇴출하는 교육공무원법 개정안을 즉시 통과시켜야 한다"고 촉구했다.
다만, 이런 법규를 소급적용할 수 없다는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한선교 의원이 최근 교육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1년 1월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성범죄에 연루된 교사 231명 가운데 상당수가 아직 교단에 있다. 이들 교사의 53.2%인 123명이 그동안 정직, 감봉, 견책 등의 처벌을 받고 학교에 남아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권맑은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