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다시 들여다 보니
물가상승률은 0%대인데 '체감 물가'는 왜 높을까?
올들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0%대에 머물며 저물가가 지속되고 있지만 정작 우리가 직접 느끼는 물가 수준은 높아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30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인플레이션 보고서에서 '체감물가와 공식물가 상승률간 괴리요인 분석'에 따르면 지난 6월 기준 일반인의 물가인식은 2.5%로 실제 소비자물가 상승률 0.7%보다 1.8%p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양 지표는 2013년부터 평균 1.7%p의 격차를 보여왔다. 이렇듯 공식 지표로 나타나는 물가 상승 수준보다 체감 물가가 훨씬 높은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개인이 물가를 인식할 때 가격 상승 품목에는 민감한 반면 가격 하락 품목에는 둔감해지기 때문이라고 한은은 분석했다. 한은은 "소비자물가지수는 품목별 가격변동을 상승이나 하락에 관계없이 동일하게 반영하고 있지만 개인은 가격 하락 품목에는 둔감하지만 가격 상승 품목에는 민감하게 반응하는 비대칭적 성향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독일 통계청의 품목별 가격 상승·하락에 따라 가중치를 달리한 '체감물가지수' 산정 방식을 대입해 우리나라의 체감물가지수를 분석한 결과 2013년 이후 물가인식과 체감물가상승률관 평균 격차는 0.1%p로 줄어드는 것으로 조사됐다.
개별 가구의 소비패턴의 차이에 따라서도 공식물가와 체감물가 사이에 괴리가 발생할 수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예를 들면 담뱃값 인상으로 실제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0.6%p 올라갔지만 각 가구별 흡연 여부와 흡연량에 따라 물가 인식은 달라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또 전국 16개 시도별로 작성하는 지역별 소비자물가 상승률 추이가 각각 다른 것도 지역별 소비패턴이 다르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한은은 설명했다. 다만 품목별 구입 빈도에 따라 공식 물가와 체감 물가가 차이를 보이는 것은 아닌 것으로 분석됐다.
현재 통계청에서는 공식물가와 체감물가간 차이에 대해 품목별 구입빈도를 감안해 자주 구입하는 품목과 기본 생필품 등을 대상으로 한 '생활물가지수'와 채소·과실·생선등을 대상으로 한 '신선식품지수'를 공표하고 있다. 하지만 생활물가지수와 신선식품지수 모두 일반인의 물가인식에 비해 낮은 상승률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은은 "개인이 생활용품이나 음식료품 등 구입 빈도가 잦은 품목의 가격 변동에 예민하게 반응한다는 점 만으로 체감물가와 공식물가 상승률에 차이가 나는 것을 설명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은 ‘물가안정목표제’ 손본다
한편 한국은행은 향후 3년간(2016~2018년) 적용될 물가안정목표제를 새롭게 설정한다. 한은은 전세계적인 저물가 현상과 국내 경제여건을 고려해 현재 3%±0.5%(2.5%~3.5%)인 중기 물가안정목표를 하향 조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한은이 30일 공개한 인플레이션보고서에서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012년 11월 1%대로 하락한 뒤 올해 6월까지 32개월 동안 물가안정목표 하한(2.5%)를 밑돌고 있는 상황”이라며 “새로운 중기 물가안정목표 설정에 앞서 적정 물가상승률 수준이 어느정도인지 분석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은은 이번 보고서에서 전세계적인 저물가 현상 분석과 함께 물가안정목표제를 도입한 세계 32개국의 장단점을 비교분석한 내용을 담았다.
저물가 세계적 추세
2011년 이후 세계적으로 저물가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대외 개방도가 높은 우리나라도 이런 기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 2011년 4.1%였던 우리나라 물가상승률은 2012년 2%대로 하락한 뒤 2013년~2014년은 1%대, 올해 상반기에는 0.5%로 하락했다. 글로벌 저인플레이션 현상으로 우리나라 이외에도 미국, EU 등 선진국들도 2012년 이후 물가안정목표를 하회하고 있다. 일본도 소비세를 인상 직후인 2014년 4월~2015년 3월에만 일시적으로 물가상승률이 2.9%로 반등했고 추세적으로 하락세다.
보고서는 이같은 글로벌 저인플레이션 현상이 수요 측면에서는 GDP갭률(잠재성장률과 실질성장률의격차)의 마이너스 현상, 공급측면에서는 국제 원자재가격 하락, 유가하락 등에서 비롯됐다고 분석했다. 세계적 저인플레이션 현상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올해 세계 소비자물가상승률 전망치는 3.2%로 이가운데 미국, 유로존, 일본 등 선진국은 평균 0.4%, 중국 등 신흥국은 5.4%를 기록할 것으로 예측했다. 내년에는 선진국은 1.4%, 신흥국은 4.8%의 물가상승률이 예상됐다.
보고서는 경제구조 변화에 따른 인플레이션 영향을 측정한 결과 인구고령화가 진전되고 인구증가율이 낮고, 무역개방도가 높을수록 물가상승률을 낮추는 요인으로 나타났다고 강조했다. 이는 우리나라의 현재 경제상황과 맞닿아 있어 주목된다.
2.5~3.5% 물가안정목표제 어떻게 바뀔 것인가?
현재 우리나라의 물가안정목표 수준은 2.5~3.5%다. 그러나 이같은 물가목표를 설정한 2012년 11월 이후 1%대로 떨어진 뒤 32개월 동안 한번도 이 범위에 들어온 적이 없다. 한은은 이런 현상을 감안해 물가안정목표제를 조정할 계획이나 아직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일각에선 경제여건을 고려해 2.0%~3.0%(2.5%±0.5%)로 낮추는 방안이 유력하다는 말도 나오지만 한은 측은 공식적으로 부인한다.
다만 최근 세계적 저물가 현상을 감안하면 물가안정목표제는 하향 조정될 가능성이 유력하다. 물가안정 목표수준은 선진국은 2~2.5%, 신흥시장국은 3~4%대 이상이 많다. 문제는 방식인데 한은은 지금처럼 목표범위를 설정할 것인지, 아니면 많은 나라들이 선택하고 있는 중심치±변동폭으로 바꿀 것인지를 놓고 검토 중인 것으로 보인다. 허용범위도 관건이다. 현재 물가안정변동 허용폭은 ±0.5%인데 이는 최근 물가변동성을 감안할 때 예측을 벗어날 가능성이 높다. 한국, 호주 등 2개국만 변동허용폭이 ±0.5%이며, 뉴질랜드, 캐나다 등 16개국은 변동허용폭이 ±1.0%다. 브라질, 인도 등 10개국은 변동허용폭이 ±1.0%이 넘는다.
한은은 대외의존도가 높아 물가변동성이 높은 우리나라의 특성을 고려해 변동허용폭을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도 물가안정목표제 점검주기를 현행 3년으로 할지 5년으로 연장할지 스웨덴, 노르웨이처럼 특별한 사유없이는 유지할지를 놓고도 검토 중인 상황으로 알려졌다.
권맑은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