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선거법상 인터넷실명제 '합헌’
정보통신망법상 인터넷실명제를 위헌 결정했던 헌법재판소가 30일 공직선거법상 인터넷실명제 조항에 관해서는 합헌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재판관 9명 중 4명이 반대의견을 낼 만큼 표현의 자유 보장과 선거 공정성 확보를 둘러싼 찬반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어 선거운동기간에 한정한 인터넷실명제에 대한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선거법상은 합헌, 정보통신망법은 위헌
헌재가 지난 2012년 8월, 이용자 수사 10만명 이상인 인터넷 게시판에 글을 쓸 때 실명인증을 하도록 한 정보통신망법 제44조의5 제1항 등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린 만큼 이번 선거법상 인터넷실명제에 대한 판단도 이전과 달라질 것으로 예상됐었다. 그러나 헌재는 지난 2010년과 같이 선거운동 기간 중 인터넷 언론사 게시판에 정당과 후보자에 대한 글을 올릴 경우 실명확인 절차를 거치도록 한 이 조항이 위법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다만 달라진 것은 반대의견을 낸 재판관이 2명에서 4명으로 늘었다는 점이다.
헌재의 이날 결정은 한국의 인터넷 선거문화라는 현실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즉 선거운동기간에 익명의 글을 게시토록 허용할 경우 흑색선전과 허위사실이 유포될 우려가 있고, 인터넷의 특성상 광범위하고 신속한 정보의 왜곡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를 드러낸 것이다. 앞서 헌재는 지난 2010년 결정에서도 선거운동 기간 중에 허위사실이 유포돼 정보가 왜곡될 경우 이로 인한 피해 회복이 어렵다는 점 등을 들어 이 법률 조항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선거 기간 정치적 의사표현 최대한 보장해야" 목소리 커져
하지만 재판관 4명이 합헌 결정에 반대 의견을 내고 "공정한 선거를 해치는 악의적 의사표현이 익명표현을 허용함에 따라 발생하는 문제로 볼 수 없다"고 밝힌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공정 선거를 해치는 악의적 의사표현은 선거를 둘러싼 정치적 사회적 상황 등 여러 변수로 인해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들 재판관은 또 해당 조항이 유익한 익명표현까지 포괄적으로 규제해 정치적 의사표현을 위축시키고, 나아가 선거의 공정성이라는 입법 목적에도 장애가 된다고 판단했다. 선거운동기간에는 오히려 정치적 의사표현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해야 정확한 판단을 담보할 수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논란이 되고 있는 또 다른 부분은 이미 인터넷을 이용한 선거범죄를 제재할 수 있는 사후적 수단이 마련돼 있다는 점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불법게시물에 대한 대응을 할 수 있고, 이에 대해 명예훼손죄나 후보자비방죄 등을 적용해 처벌할 수 있다. 그럼에도 예방을 목적으로 사전적 규제를 유지, 선거기간에 익명표현 그 자체를 제한하는 것은 국민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것으로 침해의 최소성 원칙에 위반될 소지도 있다.
반대의견을 낸 재판관들은 "선거운동기간은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행사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시기라고 볼 수 있고,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중요한 헌법적 가치"라며 "익명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데 따르는 불이익이 선거 공정성 유지라는 공익보다 결코 더 작다고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법조계 "시대에 맞지 않게 표현의 자유 위축시키는 결정" 우려
반대 의견을 낸 재판관들의 논거처럼 이번 헌재 결정에 대해 법조계 안팎에선 우려의 목소리 또한 적지 않다. 인터넷은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어 균형성과 투명성 확보라는 선거법의 목적에 부합함에도 익명표현을 규제해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판단이라는 것이다. 더욱이 선거 과정에서 발생하는 각종 이슈와 관련해 개별 유권자들 간 후보자 검증을 위한 의견 교환이 충분히 이뤄져야 함에도 익명표현을 제한함으로써 이러한 정보 교환이나 소통의 과정을 위축시킨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권맑은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