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 지식보따리商 전락 오래
이런 자들이 국립교원대 교수들인가?
지난 경희대 교수 막말사건, 몇몇대학 교수들의 성희롱사건에 이어 한국교원대 교수들이 국립대학 교수들이 맞나? 싶을 정도의 믿기 어려운 비리를 저질렀다. 교원대 교수들의 낯 뜨거운 비리 실태가 교육부 종합감사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는데, 제자의 논문을 자기 것으로 발표하고, 자신의 배우자를 연구보조원으로 채용해 돈을 타낸 교수 등이 대거 적발됐다. 이쯤되면 교수가 아니라 완전히 사기 도둑인가? 아이들의 교육을 담당하는 교사를 양성하는 국가 대표급 대학이라는 명칭이 무색할 지경이다. 교육부는 지난해 10월 실시했던 충북 청주시 한국교원대 종합감사 결과 인사·복무 부문 9건, 예산·회계·연구비 14건, 입시·학사 8건, 시설·기자재 등 모두 34건의 비리 사안을 적발했다고 26일 밝혔다.
감사결과에 의하면 교수 A씨 등 4명은 자신이 지도한 제자의 논문을 가로채 제자 이름은 쏙 빼고 혼자 논문을 쓴 것처럼 속이거나, 마치 자신이 주도한 것처럼 제1저자로 학술지에 등재해 중징계를 받았다. A씨는 그것도 모자라 승진을 위한 실적물로 논문을 제출하기도 했다. 수학교육과 교수 B씨 등 22명은 교내 학술연구과제를 위한 연구비를 지원받고 자신이 지도한 제자의 석사 논문을 요약·정리해 연구 결과물로 제출했다가 무더기로 적발됐다. 이렇게 챙긴 교내 연구비는 1억 2000여만원이었다.
초등교육과 교수 C씨는 본인의 기존 연구 결과물을 세종시교육청과 한국과학창의재단 연구 과제물로 제출한 후 두 기관에서 각각 3000만원과 2000만원 등 모두 5000만원을 받았다가 적발돼 반납 조치를 당했다. 심지어 교수 D씨 등 8명은 배우자를 연구보조원으로 참여시켜 인건비와 1100여만원을 받았다. 이는 명백한 공무원 행동강령 위반이다. 교수 E씨 등 2명은 자녀와 배우자를 자신이 소속된 학과의 시간강사로 추천한 사실이 적발돼 경고를 받기도 했다. 소식을 접한 시민들과 다른 대학생들은 “저들은 국립대 교수 자격은커녕 교수가 가질 기본 자질도 없는 사기 도둑 파렴치한 들이다”며 충격을 받고 질타하고 있다.
교수들, ‘해외논문출판 사기’의 세계
편집위원 위촉에 논문 편당 100~200만원 요구하기도
교수신문에 의하면, 수도권 사립대 공학계열의 A교수는 지난해 말못할 고초를 겪었다. 이름 모를 해외학술지의 편집위원직을 덥석 맡았다가 뒤늦게 사퇴한 것이다. 이메일을 통해 접촉해온 이 학술지는 A교수의 최근 연구업적을 추켜세우며 편집위원직을 부탁했다. ‘국제학술지 편집위원’이라는 자리욕심에 A교수가 제안을 받아들이자 학술지 측은 곧 본색을 드러냈다. 편집위원 자격으로 논문 3편을 제공하라고 한 것이다.
A교수가 더욱 놀란 것은 1편당 100만~200만원에 상당하는 ‘논문게재료’ 때문이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그는 논문게재를 거절했지만 학술지 측은 이를 무시했다. 또한 편집위원 명단에 A교수의 이름을 빼지 않고 다른 교수들에게 논문게재를 요구하는 메일을 보내기까지 했다. 상황이 이쯤 되자 A교수는 급히 편집위원직 사퇴의사를 전달했다.
사퇴가 받아들여지기까지는 또다시 상당한 시간이 흘러야 했다. A교수는 전형적인 ‘해외논문출판 사기’의 피해자다. 해외논문출판 사기는 실체를 알 수 없는 해외 유령출판업체가 해외학술지를 만들어 6개월~1년 이상 걸리는 해외학술지의 기존 심사과정을 생략한 채 논문을 빠르게 발표하고 저자에게 고액의 게재료를 요구하는 수법이다.
앞서 미국에서는 이 같은 해외 논문출판 사기가 비정상적 출판으로 이익을 취한다고 보고 ‘약탈출판’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이런 유령출판업체는 최근 해외학술지 논문게재 실적에 목마른 국내 교수들을 노리고 있는 것이다. 취재과정에서 만난 교수들은 하루에도 6~7통에 달하는 해외논문출판 사기 관련 이메일을 받고 있다고 털어놨다. 대부분 메일을 바로 삭제했지만 일부 교수들은 이 업체를 실제로 이용하고 있었다.
지난해 창원대에서 보직을 맡았던 B교수는 “상당수의 교수들이 유령출판업체를 이용하고 있다. 메일을 받는 순간 저급 학술지라는 것을 알지만 해외논문이 교수업적평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 쉽게 유혹에 노출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대학의 교수업적평가에서는 SCI와 SSCI, A&HCI 등에 게재된 논문이 가장 높은 점수를 받는다. 국내 학술지 중에서는 한국연구재단이 선정하는 등재지·등재후보지의 점수가 높다. SCI급에 못 미치는 해외학술지는 ‘기타 해외학술지’로 분류돼 한국연구재단 등재지 수준의 점수를 받을 수 있다. 이 때문에 통과가 힘든 SCI급 논문이나 국내 등재지 논문보다 다수의 해외학술지 논문이 평가에 유리하다. 일부 대학은 평가와 관계없이 ‘다작’을 한 교수에게 포상금을 지급하는 규정도 있어 유령출판업체의 유혹에 빠지기 쉬운 구조다.
해외논문출판 사기 벌이는 출판사를 짐작해 볼 단서는 있다. 이들 업체는 주로 중국이나 인도, 스리랑카 등 아시아 지역에 사무실을 열고 광범위한 분야를 다룬다. 가장 눈여겨볼 점은 ‘빠른 출판’이다. 6개월~1년 이상 소요되는 해외학술지 게재과정과 달리 유령출판업체는 수주일 내 논문을 출판한다. 한 업체가 발송한 메일을 보면 ‘사흘 이내 제출 승인’ ‘동료평가 21일’ ‘개정 14일’ ‘온라인 출판 승인 뒤 7일 이내’ 등 짧은 소요기간이 유독 강조됐다. 또 다른 업체는 동료평가에 사흘 밖에 걸리지 않는다는 점을 내세웠고, 출판 뒤 사흘 이내에 출판 인증서를 받을 수 있다고 홍보했다. 이 점이 해외 학술지 논문실적을 요구받는 국내 교수들을 현혹하는 것이다.
이처럼 유령출판업체가 활발하게 국내 교수들을 유혹하고 있지만 아직 피해사례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있다. 개인이메일로 접촉해 당사자가 피해사실을 밝히지 않는 한 확인이 어렵기 때문이다. 다만 상당히 만연해 있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추측이다. 대학의 연구·교무를 담당하는 보직교수들은 이미 ‘다작의 중견교수를 눈여겨봐야 한다’고 말할 정도다. 아주대 C교수는 “1년에 50편 이상의 논문을 발표하는 등 ‘다작교수'들이 있다. 연구를 열심히 했겠지만 유령출판업체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을까 의심되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해외학술지 선호가 높은 국내 학계의 풍토도 실태파악을 어렵게 하는 원인이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인식이 학계에 만연해 유령 출판업체를 이용하는 동료교수를 보고도 쉽게 지적할 수 없다. 서울과기대 D교수는 “양심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 유능한 교수의 척도가 해외 발표논문인데 이를 유령출판이라고 섣불리 지적했다가 자칫 모함으로 몰릴 수 있다”고 말했다. 논문실적 위주의 현행 교수업적평가 제도 탓에 교수들이 유령출판업체의 수법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학회나 학술단체들이 나서 교수들이 속지 않도록 유령출판업체의 목록을 만들 필요성도 제기된다. 실제로 이 같은 문제가 처음 지적된 미국에서는 콜로라도대 도서관 사서인 제프리 비얼이 유령 출판업체의 리스트를 작성해 공개하기도 했다. 창원대 B교수도 “학술단체들이 공동으로 리스트를 만들거나 한국연구재단과 공조해 대응지침을 수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문제가 논문의 양을 평가하는 현행 제도에서 출발한 만큼 평가기준을 다른 방식으로 전환하는 고민도 필요하다. 모대학 교수는 “논문은 연구의 부분적인 성과이기 때문에 이를 종합적으로 엮은 저술이 연구 성과물로서 의의가 더 크다”며 “연구를 완성하고 대중이나 다른 연구자들에게도 성과를 종합적으로 알릴 수 있는 저술에 대한 평가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왠만한 유학으로 전공실력이 만만치 않게 다져진 교수들은 이 문제를 대충 알고는 있다. 문제는 그렇지 못한 교수같지도 않은 교수부류들이 문제인 것이다. 한국의 대학교수, 예전처럼 존경받는 직업이 아니라 지식 보따리商이 된지도 오래되어 간다. 당국뿐만 아니라 각 대학들, 학생들이 정신차릴 일이다.
권맑은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