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네델란드병’ 증상, 대책은?
우리나라 경제의 올해 성장률이 2%대로 내려앉을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하게 제기되는 상황에서 해외 투자은행(IB)들이 한국이 구조적 저성장 가능성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고 주문해 눈길을 끌고 있다. 특히 저유가로 비롯된 원화 절상으로 제조업 기반이 붕괴될 우려까지 제기됐다. 23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성장률 전망치는 2.8%로 기존의 3.1%보다 0.3%포인트 대폭 하향 조정됐다. 더군다나 이날 발표된 올 2분기 성장률 속보치가 전기비 0.3%로 발표되면서 정부가 목표로 한 3%대에서 더욱 멀어지게 됐다. 이에 따라 2%대 저성장의 터널로 다시 진입한 것이라는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과거 최소 3.0% 이상의 고성장세를 구가하던 한국경제는 2012년 성장률이 2.3%로 떨어진 후 2013년(2.9%)에도 3%대에 미치지 못했다. 지난해에는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전방위적인 경기활성화 정책과 이주열 한은 총재의 금리인하 조치로 성장률을 3.3%까지 끌어올렸다. 하지만 올해는 예상치 못한 복병인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와 가뭄, 수출부진 등으로 경기는 다시 지지부진한 모습이다.
이런 가운데 해외 IB들은 한국경제가 구조적 저성장 가능성에 빠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 적극 대응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스탠다드차타드(SC)는 최근 한국이 생산성 둔화 및 구조적 수출부진 등에 따라 투자자들은 저성장이 한국의 뉴노멀(New Normal·기존의 고속 성장 대신 중저속 안정 성장)이 되고 있다고 평가하는 데 주목했다. SC는 임금대비 낮은 노동생산성 등으로 기업의 생산기지가 해외로 이전하면서 기업의 수익 개선과 임금상승의 연결고리가 약화됐다고 분석했다. 또 소득증가율 둔화와 고령화에 따라 민간소비와 정부지출이 제약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여기에 글로벌 경기회복세 둔화, 엔저 지속, 일본 경쟁기업들의 연구개발(R&D) 및 설비투자 확대 등도 수출 부진의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골드만삭스는 국제유가 하락에 따른 무역흑자 확대로 원화가 절상되면서 제조업의 수익성 저하 및 수출감소가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하고 한국판 ‘네덜란드병’ 발생 가능성을 제기했다. 해외 IB들은 우리 정책당국이 구조적 성장둔화 가능성에 적절히 대응하고 있다고 평가함과 동시에 한계점도 지적했다.
골드만삭스는 한은의 저금리 기조와 정부의 해외투자 활성화 정책 조합이 네덜란드병 예방에 기여할 것으로 분석했다. 해외자산 축적을 통해 유가 상승에 대비하고, 원화 절상 압력 완화로 제조업의 수출가격 경쟁력을 제고함과 동시에 기술혁신에 필요한 시간 및 재원 확보 등이 가능할 것이라는 것이다. SC는 정부가 국회 통과를 위해 총력을 기울이는 추가경정예산안 편성에 대해서는 실물경제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일시적·단기적 자금 투입만으로는 제조업 생산성 및 수출부문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또 작년 4분기와 올 2분기 수출의 국내총생산(GDP) 기여도가 각각 마이너스인 것에 주목하면서 현 원화가치가 상당히 높아 정부의 추가적인 수출 지원이 필요하다고 촉구했고 SC는 엔저에 따른 수출 경쟁력 저하가 심화한다면 한의 기준금리가 더 인하될 것으로 전망했다.
*네델란드 병이란 무엇인가?
'네델란드 병(Dutch disease)' 이란 천연자원 개발에 따른 갑작스러운 외환증가가 제조업의 후퇴를 불러오는 것을 말한다. 마치 로또에 당첨된 후 오히려 인생이 망가지는 것과 유사하다. 슬로히터른 지역의 천연가스전(田)과 북해 유전이 개발되어 거액의 외화가 네델란드로 유입된 결과 환률이 급격히 떨어져서 전반덕인 수출 경쟁력이 떨어졌다. 이것이 네델란드 병의 주된 병세지만 그 외에도 심각한 증상들이 다양하게 나타났다.
우선 2차대전 이후 장기간 유지해 왔던 임금 안정 기조가 풀려 임금 수준이 폭발적으로 상승했다. 환율 하락과 임금상승이 맞물려 기업의 경쟁력이 더욱 하락했고, 그결과 실업률이 크게 올랐다. 이로 인한 문제 해결은 가스 수출 대금을 이용한 복지 시스템에 의존했고 그 결과로 '노동 없는 복지' 가 자리 잡았다. 1960~70년대에는 노사 간 임금 협상이 난황을 겪다 불법 파업과 공장 폐쇄로 이어지는 일이 빈발했다.
특히 1967년 필립스사의 임금 협약 결과 임금에 물가상승률을 반영하게 된 것이 중대한 계기가 되었다. 임금만이 아니라 임금 수준에 연동된 사회보장 지출이 한계에 이르도록 팽창하여 네델란드의 사회보장제도는 사실상 유지가 불가능한 수준에 되었다. 사회보장부담금과 조세의 증가는 결과적으로 노동자들의 소득 수준을 크게 떨어뜨렸다. 이런 상황에서 1973년과 1979년에 들이닥친 두 차례의 석유 위기는 네델란드 경제를 완전히 나락에 빠뜨렸다.
1981년~83년 당시 국민소득은 8분기 연속 감소했고, 부채 증가로 인해 제조업체 25개 중 하나꼴로 파산했다. 1981~83년에만 무려 3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는데 대부분이 제조업 정규직이라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었다. 실업자 수는 매월 1만명씩 늘어나 1984년에는 80만명까지 치솟았다. 고용 노동자의 평균 가처분소득은 1981-83년 3년간 약 10% 감소했으며 미취업자들에 대한 사회보장 혜택은 더 크게 감소했다.
*네델란드병 차단하려면,,,
엎친데 덮친격으로 우리는 이제 메르스 사태라는 사회경제적 문제가 끝나가는 모양이다. 그러나 해외 관광객수 증가는 아직 회복이 멀었고 내수 회복을 위한 추경은 겨우 국회를 통과했다. 초동 대응에 문제가 있었기는 해도 메르스 같은 질병은 객관적 파악과 과학적 진단이 가능하고 대응책에 대한 정책적 합의도 빠르다. 그러나 경제, 사회적 병은 진단과 전망이 어려울 뿐 아니라 현상 파악도 힘들다. 미국 정부의 GDP 속보치마저도 확정치와 크게 괴리하는 경우가 많아, 작년 1분기에는 그 차이가 연간 기준으로 2% 이상 차이가 났다.
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기와 원자재 가격의 불확실성이 커진 지금, 경제 진단과 전망은 더욱 힘들어져 IMF의 세계경제 전망치와 연준의 미국 성장 전망치도 수년째 매년 크게 하향 수정돼 왔다. 대표적 경제병으로는 낙후된 산업 생산성을 일컫는 70년대 영국병이 있고 천연자원과 관련된 네덜란드병 등이 있다. 한국은 원자재 수입국으로 당시 네덜란드와는 정반대였지만 지금의 원자재 가격폭락은 무역흑자 급증과 원화절상 압력을 가져와 네덜란드병과 유사한 해독을 끼칠 수 있다. 경쟁력 향상 없이 이뤄진 원화 절상은 제조업 기반을 무너뜨릴 수 있고 향후 원자재 가격상승 등으로 원화가 약해지더라도 이미 거래선이 없어진 후에는 제조업의 복원이 어렵기 때문이다.
이제 한국에서 이 네덜란드병의 징조가 나타나고 있다. 현재 나타난 증상으로는 수출 감소와 원화 절상, 제조업의 수익성 하락 등인데 제조업 가동률과 재고율은 세계 금융 위기 직후의 2009년 수준만큼이나 악화된 것으로 보이고, 그 증세가 내수 쪽으로도 전염되는 것 같다. 무역 구조는 한국과 비슷하나 통화는 약세나 보합세인 일본·대만에 비해 한국의 수출 실적이 더 나쁜 것을 보면 한국이 네덜란드병에 더 노출된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한국은 노령화로 내수가 약화되고 있지만, 가계 부채에 대한 우려 때문에 추가 금리 인하를 통한 소비 확대 효과가 제한적인 것으로 보인다. 원자재 생산이 많은 개도국으로의 수출 비중이 큰 것도 유가 하락 시 한국 경제의 역동성을 줄이는 역할을 한다.
네덜란드병에 대한 일반적 처방은 해외 자산 축적이다. 천연자원은 언젠가 바닥나므로 저축을 늘려야 하고, 이에 따라 해외 투자가 확대된다. 노르웨이나 사우디의 국부 펀드가 그래서 생겼고, 원자재 가격이 올라 경상수지 흑자가 늘수록 해외 자산이 더 늘어나는 구조다. 급격한 유가 하락으로 경상수지 흑자가 늘어나는 한국에 대한 처방도 해외 자산을 늘리는 것이다. 이는 유가 상승에 대비한 저축도 되고 제조업의 가격 경쟁력을 보전하는 효과가 있다. 이러한 일반적 대응 외에도 국제무역의 침체 추세를 감안해 과잉 투자된 제조업종의 구조조정과 경쟁력 향상을 위한 기술 혁신이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
이런 점에서 한은의 초저금리 기조와 정부의 해외 투자 활성화 정책은 네덜란드병 예방에 도움을 준다. 금년 말로 예상되는 연준의 금리 인상 이후 상당 기간 한은이 금리를 인상하지 않고 해외 투자를 막아온 세제상 불이익이나 복잡한 신고 의무가 없어진다면 외환시장 수급에 상당한 변화를 줄 것으로 보인다. 원화 강세 추세가 반전되면, 구조조정과 기술 혁신에 필수적인 시간과 재원을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또 이런 사실상의 해외 투자 자율화는 외환과 자본시장의 왜곡을 줄이고, 금융의 국제화를 촉진해 제조업 경쟁력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경제정책도 타이밍이 매우 중요하다. 다만 그 절박함의 정도가 경제의 경우 바로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현재의 취약한 세계경기 회복세와 한국경제의 침체위험을 고려할 때 해외 투자 활성화 정책은 가능한 한 신속히 집행하고 이와 더불어 구조 개혁과 기술혁신으로 경쟁력 향상에도 힘쓰지 않으면 방법이 없어 보인다.
권맑은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