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의 나라 그리스가 지금 보여주는 것은?
그리스 좌파정권과 경제몰락의 말로를 보여주고 있다고 외신들이 전하고 있다. 국제 채권단의 긴축 정책안 수용 여부를 묻는 그리스의 국민투표가 임박하면서 국민들은 찬성과 반대로 갈라져 저마다 목소리를 높였다. 수도 아테네 곳곳은 상반된 구호로 가득 찼고 길거리는 양측이 뿌린 전단으로 도배됐다. 투표일을 이틀 앞둔 3일 곳곳에서는 시위가 열렸다. 이날 오후 아테네 최대 관광지인 아크로폴리스 앞에서는 급진좌파연합(시리자) 청년당원들이 전단을 뿌리며 반대투표를 독려했다. 대학생 엘라다는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진실을 알 필요가 있기 때문에 이곳으로 왔다”면서 “OXI(오히·반대)는 ‘반유럽’이 아니라 ‘반긴축’을 요구하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전날 저녁에는 신타그마 광장으로 가는 대로가 경찰에 의해 전면 봉쇄됐다. 10분 남짓 걸어가면서 세 그룹의 시위대를 만났는데 모두 반대파였다. 광장에서는 스피커에서 나오는 노래 소리가 일대를 흔들었다. 외국 관광객들은 이런 모습을 바라보면서 사진을 찍었다. 지금까지 목격한 시위대는 대부분 반대파였다. 찬성파 시위는 지난달 30일 신타그마 광장에서 본 것 정도였다. 공산당과 시리자는 조직력을 가동해 반대 캠페인에 집중한 반면, 찬성을 원하는 쪽은 중산층 이상이 많아 조직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사람들은 분석했다.
찬성표를 던지겠다는 프리랜서 정책연구원 아나스타시아는 투표가 ‘반대파의 승리’로 끝나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탈퇴)가 발생할까봐 두려워했다. 그는 “은행 현금인출이 제한된 뒤 집에 도둑이 들까봐 모든 돈을 매일 가방에 넣고 들고 다닌다”며 “은행 영업 중단 후 연금을 받지 못한 일부 연금 수급자들이 시리자에 등을 돌렸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찬성파가 이길 것이라고 본다”면서 “그러나 투표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그리스를 위험에 빠뜨린 시리자는 무조건 물러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찬성파는 3일 밤 국회 옆 근대올림픽경기장에서 대규모 시위를 열었다.
아테네에 사는 많은 사람들은 투표를 위해 주소지인 고향으로 가고 있다. 트리폴리로 가는 아나스타시아는 “반대를 주장하는 공산당원 오빠와 매일 설전을 벌이고 있다”며 “찬성 시위에 적극 참여하는 한 변호사 사무실에 반대파들이 들이닥쳐 시위를 하지 말라고 을러대는 등 양측 간 갈등도 고조되고 있다”고 전했다. 혼란을 더욱 가중시키는 것은 투표의 성격을 서로 다르게 보고 있기 때문이다.
찬성파는 ‘유럽이냐 반유럽이냐를 묻는 것’이라고 보는 반면 반대파는 ‘긴축이냐 반긴축이냐를 묻는 것’이라고 여겼다. 한 택시운전사는 “사람들이 지금 ‘미친’ 상태라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르겠다”면서 “아무튼 그리스의 정치인들은 나라를 망가뜨린 책임을 지고 모조리 목을 매달고 죽어야 한다”며 거칠게 성토했다. 찬성파든, 반대파든 이들은 모두 유로존 채권국이 요구하는 현재와 같은 긴축은 더 이상 안된다고 입을 모았다.
그리스 정부와 야당도 막판 표심을 끌어오기 위해 팽팽한 선거전을 벌이고 있다.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는 TV인터뷰에서 “채권단 협상안을 찬성하면 그리스는 추가로 짐을 져야 한다”며 “반대표가 많을수록 협상에서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스 정부는 채권단 제안에 반대해야 하는 이유 등을 소개한 공식 웹사이트를 개설했다. 제1야당인 신민당의 안토니스 사마라스 대표는 찬성 촉구 성명을 냈다. 전직 총리인 그는 “드라크마(그리스 구 화폐)로 돌아가는 것은 그리스 경제와 국민의 희망을 짓밟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본통제가 계속되면서 그리스 경제는 거의 마비 상태가 됐다. 그리스 은행 현금보유액이 5억유로(약 6225억원)까지 떨어져 8일쯤 영업을 재개하면 은행 잔액이 곧바로 바닥을 드러낸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식당엔 손님이 크게 줄었고 대중교통도 연료 절감을 위해 운행을 감축했다. 슈퍼마켓에서는 식품을 사재기하는 사람도 눈에 띄었다고 외신들은 전하고 있다.
권맑은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