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가 아니라 창피다. 정말 이렇게 한심한 수준으로 타락했는가?"
진정 부끄럽기 짝이없는 일로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는 신경숙의 표절 논란에 신경숙 작가 본인뿐만 아니라 문학출판사 창비까지 집중 포화를 맞고 있다. “대응하지 않겠다”는 작가의 반응과 “표절이 아니다”라며 적극 비호에 나선 출판사 측의 해명이 더욱 공분을 불러일으키면서, 한국 문단의 끼리끼리, 평론담합, 주례사 비평문화, 작가의 기본 양식등 한국문단 전반의 치욕적인 사태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신경숙은 단편집 ‘감자 먹는 사람들’(창비 발행)에 수록된 1996년작 ‘전설’이 일본 작가 미시마 유키오의 작품 ‘우국’을 표절했다는 의혹에 대해 17일 “해당 작품을 알지 못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작품 집필을 위해 서울을 떠나 있는 신경숙은 창비에 보낸 세 줄짜리 입장문을 통해 “(미시마 유키오는) 오래 전 ‘금각사’ 외엔 읽어본 적 없는 작가로 해당 작품(‘우국’)은 알지 못한다. 이런 소란을 겪게 해 내 독자분들께 미안하고 마음이 아프다. 풍파를 함께 해왔듯이 나를 믿어주시길 바랄 뿐이고, 진실 여부와 상관 없이 이런 일은 작가에겐 상처만 남는 일이라 대응하지 않겠다”고만 밝혔다.
창비 문학편집부도 같은 날 출판사 공식 입장문을 내고 ‘표절이 아니다’라고 부인했지만 독자들과 문단의 양식있는 작가,시인,비평가들은 “눈을 뜨지 못할 정도로 수치스럽고 창피하다”는 반응들이다. 창비는 입장문에서 “선남선녀의 신혼 때 벌어질 수 있는, 성애에 눈뜨는 장면 묘사는 일상적인 소재인 데다가 작품 전체를 좌우할 독창적인 묘사도 아니다”라며 “해당 장면들은 작품에서 비중이 크지 않으며 몇몇 문장에서 유사성이 있더라도 이를 근거로 표절 운운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밝혔지만 궁색한 해명으로 치부되고 있다.
창비는 ‘우국’이 “극우민족주의자를 주인공으로 한 성애묘사가 두드러지는 남성주의적인 판타지”인 반면 ‘전설’은 “한국전쟁을 소재로 한 뛰어난 작품으로, 전쟁을 체험하지 못한 세대의 작가가 쓴 거라곤 믿기지 않을 만큼 직핍한 현장감과 묘사가 뛰어나다”고 비교하기도 했다. “문장 자체나 앞뒤 맥락을 고려해 굳이 따진다면 오히려 신경숙 작가의 음악과 결부된 묘사가 더 비교 우위에 있다고 평가한다”는 유치스러운 첨언까지 덧붙였다. 창비는 “언론과 독자분들께 ‘전설’과 ‘우국’ 두 작품을 다 읽고 판단해주시기를 당부 드린다”며 “표절 시비에서 다투게 되는 ‘포괄적 비문헌적 유사성’이나 ‘부분적 문헌적 유사성’을 가지고 따지더라도 표절로 판단할 근거가 약하다”고 단언했지만 그들만의 졸렬한 생각이라고 따갑게 비판받고 있다.
작가의 무책임한 태도와 출판사의 적극적 비호에 문단 내에서도 비난의 목소리가 높다. 한 문학평론가는 “이렇게 되면 문제만 더 커진다”고 유감을 표했다. 그는 “‘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다’ 같은 일상에서 쓰지 않는 독창적 표현은 결코 우연의 소산일 수 없다”며 “‘우국’과 ‘전설’은 스토리나 설정 등이 완전히 다른 소설이지만 문제가 된 일부 문장은 확실히 표절 혐의가 짙다”고 말했다. 또 다른 소장 문학평론가는 “한국문학의 상징적 존재인 신경숙 작가와 창비는 음지에서 고투를 벌이고 있는 작가 지망생들은 물론 일반 독자들 앞에 겸허히 잘못을 인정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며 “이번에도 예전처럼 ‘모르는 척 하면 언젠가 덮일 일’이라는 식으로 넘어간다면 절망감만 더 깊어질 것”이라고 착잡한 심정을 토로했다.
신씨를 적극 두둔하고 나선 창비의 태도가 더 큰 문제라는 지적도 잇따른다. 한 트위터 이용자는 “미시마 유키오의 정치적 극우성향에 초점을 맞춰 논점을 흐리는 창비의 대응이 참담하다”며 “자기작가 감싸기에 급급한 저 행태가 바로 한국문단의 수준”이라고 개탄했다. 소설가 고종석씨도 트위터에서 “이게 다 신씨가 창비에 벌어준 돈 탓”이라며 “창비 입장은 지적 설계론 찜쪄먹을 우주적 궤변이자 한때 거룩했던 제 이름을 돈 몇 푼과 맞바꾼 타락”이라고 비판했다. 신씨는 주로 문학동네를 통해 책을 출간해왔지만, 국내에서만 200만부 넘게 팔린 그의 최대 베스트셀러 ‘엄마를 부탁해’는 창비에서 나왔다.
16일 신씨의 표절을 고발한 이응준 소설가는 “신경숙과 창비의 이러한 반응에 대해 독자분들께서 판단을 내려주리라 믿는다”며 “한 사람의 문인으로서 제 모국어의 독자분들께, 이 기어이 반성하지 못하는 문단이 너무도 치욕스럽다”고 밝혔다. ‘우국’을 번역한 김후란 시인도 말을 아끼던 전날과 달리 아쉬움을 표했다. 김씨는 “기본적으로 원작자와 신씨의 문제”라면서도 “다른 문장으로 표현할 수도 있었을 텐데 왜 그 대목에 (표절 의혹을 받은) 문장이 들어가야 하는지 잘 이해가 안 간다”고 말했다.
신씨논란, 엉뚱하게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도 표절의혹으로 번져
한 저명한 문학평론가는 또 표절의혹 작가 신씨의 논란으로 시인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도 표절 작품이라고 주장해 파문이 일고 있다. 소설가 신경숙의 표절 논란과 맞물려 어떤 반향을 일으킬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서울경제’는 ‘한국아이닷컴’ 보도를 통해 평론가 황현산씨의 견해를 빌어 이 사실을 보도했다. 황현산씨는 지난 7일 자기 트위터에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가 발표되었을 때, 사람들은 그게 (폴) 엘뤼아르의 표절인 걸 알았지만 말하지 않았다.
민주화의 대의가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잘한 일이었는지 묻게 된다. '타는 목마름으로'를 온전하게 살린 것은 이성현의 작곡이다”라는 글을 올렸다. 산문집 ‘밤이 선생이다’와 문학평론집 ‘잘 표현된 불행’으로 유명한 황현산씨는 현재 한국 문단을 대표할만한 유명 평론가다. 그가 트윗에서 언급한 엘뤼아르 작품은 ‘자유’. 황현산씨의 지적대로 ‘타는 목마름으로’와 ‘자유’는 주제는 물론이고 어투 등에서도 빼다 박을 정도로 닮았다.
<‘내 학생 때 공책 위에/ 내 책상이며 나무들 위에/ 모래 위에도 눈 위에도/ 나는 네 이름을 쓴다// 읽어본 모든 책상 위에/ 공백인 모든 책상 위에/ 돌, 피, 종이나 재 위에도/ 나는 네 이름을 쓴다// 숯칠한 조상들 위에/ 전사들의 무기들 위에/ 왕들의 왕관 위에도/ 나는 네 이름을 쓴다// 밀림에도 사막에도/ 새 둥지에도 금송화에도/ 내 어린 날의 메아리에도/ 나는 네 이름을 쓴다// 밤과 밤의 기적 위에/ 날마다의 흰 빵 위에/ 약혼의 계절들 위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 내 하늘색 누더기 옷들에/ 곰팡 난 해가 비친 못 위에/ 달빛 생생한 호수 위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 들 위에 지평선 위에/ 새들의 날개 위에/ 그림자들의 방앗간 위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
새벽이 내뿜은 입김 위에/ 바다 위에 또 배들 위에/ 넋을 잃은 멧부리 위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 구름들의 거품 위에/ 소낙비의 땀방울들 위에/ 굵은 또 김빠진 빗방울에도/ 나는 네 이름을 쓴다// 반짝이는 형상들 위에/ 온갖 빛깔의 종들 위에/ 물리적인 진리 위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 잠깨어난 오솔길들 위에/ 뻗어나가는 길들 위에/ 사람 넘쳐나는 광장들 위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 켜지는 램프 불 위에/ 꺼지는 램프 불 위에/ 모여 앉은 내 집들 위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 겨울의 또 내 방의/ 둘로 쪼개진 과실 위에/ 속 빈 조가비인 내 침대 위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 주접떠나 귀여운 내 개 위에/ 그 쫑긋 세운 양쪽 귀 위에/ 그 서투른 다리 위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 내 문턱의 발판 위에/ 정든 가구들 위에/ 축복 받은 넘실대는 불길 위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 사이 좋은 모든 육체 위에/ 내 친구들의 이마 위에/ 내미는 손과 손마디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 놀란 얼굴들의 유리창 위에/ 침묵보다도 훨씬 더/ 조심성 있는 입술들 위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 파괴된 내 은신처들 위에/ 허물어진 내 등대들 위에/ 내 권태의 벽들 위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 나는// 욕망도 없는 부재 위에/ 벌거숭이인 고독 위에/ 죽음의 걸음과 걸음 위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 다시 돌아온 건강 위에/ 사라져 간 위험 위에/ 회상도 없는 희망 위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 그리고 한 마디 말에 힘입어/ 내 삶을 다시 시작하니/ 너를 알기 위해 나는 태어났다/ 네 이름지어 부르기 위해// 오 자유여’(폴 엘뤼아르의 ‘자유’ 전문, 시 "자유"는 엘리아르의 "시와 진실 Poésie et Vérité"에 실렸던 작품이다)
<‘신새벽 뒷골목에/ 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 오직 한가닥 있어/ 타는 가슴 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아직 동 트지 않은 뒷골목의 어딘가/ 발자욱소리 호르락소리 문 두드리는 소리/ 외마디 길고 긴 누군가의 비명소리/ 신음소리 통곡소리 탄식소리 그 속에 내 가슴팍 속에/ 깊이깊이 새겨지는 네 이름 위에/ 네 이름의 외로운 눈부심 위에/ 살아오는 삶의 아픔/ 살아오는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 되살아오는 끌려가던 벗들의 피묻은 얼굴/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떨리는 치떨리는 노여움으로 나무판자에/ 백묵으로 서툰 솜씨로/ 쓴다// 숨죽여 흐느끼며/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김지하 ‘타는 목마름으로’ 전문)>
20세기 프랑스의 대표 시인인 엘뤼아르는 초현실주의 작품을 쓰다 1936년 스페인 내전을 계기로 정치색을 강하게 품은 작품을 썼다. 2차 대전이 발발하자 독일에 저항하는 레지스탕스 활동에 적극 참여했다. 평화와 자유, 정의를 관통하는 엘뤼아르 작품 중에서도 대표적인 게 ‘자유’다. 1942년 영국 공군은 엘뤼아르의 시집 ‘시와 진실’을 독일이 점령한 프랑스에 뿌리기도 했다. 이 시집의 맨 앞에 실린 작품이 ‘자유’다.
‘타는 목마름으로’는 대표적인 저항시인이었던 김지하가 엄혹한 유신시대의 억압 속에서 민주주의를 열망한 작품으로 그동안 알려져왔다. 숨이 막힐 듯한 시대적 상황에서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절규하는 문체로 풀어낸 한국문단의 대표적인 사회참여시 아니던가?
사실 ‘타는 목마름으로’가 ‘자유’의 표절작이라는 주장은 진작 제기되었었다. 시인 노태맹은 올 초 한 지방지에서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라는 시는 엘뤼아르의 ‘자유’라는 시를 대 놓고 베낀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두 시가 워낙 유명한 만큼 시를 좀 아는 사람이라면 ‘타는 목마름으로’가 ‘자유’의 표절작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일반인은 왜 이 같은 사실을 잘 모르고 있는 것일까? 전태흥 미래티앤씨 대표가 2013년 1월 한 지방지에 기고한 글에서 그 이유를 유추할 수 있다.
“며칠 전 페이스 북에서 친구가 쓴 글을 읽었다. 그 글은 2차 대전 당시 프랑스의 레지스탕스 시인인 폴 엘뤼아르의 시 '자유'와 한국에서 오랫동안 저항시인(무엇에 저항했는지는 모르지만)으로 불린 김지하의 대표 시 '타는 목마름으로'를 비교한 것이었다. 그 글의 내용은 한마디로 김지하의 시가 폴 엘뤼아르의 시를 베낀 것인데 이미 오래전에 '자유'라는 시가 한국에 소개되었고 그 시를 읽은 사람들이 김지하가 그 시를 표절한 것을 알면서 침묵한 것은 표절의 명백한 공범이라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이어 친구는 우리가 그동안 김지하라는 이름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주저해 왔던 것은 젊은 날 자신이 지켜왔던 것들을 잃지 않으려는 일종의 보상심리와 같다고 썼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민주화의 대의가 중요했기 때문”에 모두들 표절인 걸 알고서도 침묵했다는 황현산의 글과 일맥상통하는 주장이다.
한 문인은 “표절에 대한 ‘침묵의 카르텔’이 있다는 이응준의 지적은 김지하의 사례에도 유효하다”고 말했다. 시인이자 소설가인 이응준은 최근 허핑턴포스트코리아에 ‘우상의 어둠, 문학의 타락 - 신경숙의 미시마 유키오 표절’이란 글을 기고해 신경숙의 소설 ‘전설’ 중 한 문단이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 ‘우국(憂國)’의 한 문단을 거의 베끼다시피 했다고 주장해 파문을 일으키고 있지만 글로벌 문단에 뻗어나갈 한국문학의 자화상을 생각할 때 이번 만큼은 “절대로 그냥 넘어가서는 안될 부끄러운 일이며 반성해야 할 일”라는 것이 대다수 양식있는 문인들의 입방아였다.
신경숙 표절의혹에 창비 직원들 양심선언
‘창비직원A(@unknownmembera)'라는 닉네임의 네티즌은 “출판사 창비에서 일하는 직원이다. 신경숙 작가의 단편소설 ‘전설’ 표절 논란과 관련해 오늘 회사가 발표한 입장이 부끄럽고 실망스럽다”며 17일 오후 트위터에 새 계정을 개설했다. 그는 “내년은 창작과비평이 세상에 나온 지 50주년이 되는 해다. 새로운 창작과 비평의 자세를 위해 곳곳에서 직원들이 열심히 일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회사가 신경숙 작가의 표절 논란과 관련한 처음의 입장을 철회하지 않는다면 모두 헛된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직원A는 또 “지금 이 사태 앞에서 어떤 마음가짐으로 업무를 보아야 하나” “회사의 기괴한 입장 표명이 바로 한국문학에 대한 갑질이 아니고 무엇이냐”고 일갈했다.
직원A의 트윗은 삽시간에 퍼져 화제가 됐다. 직원A의 계정이 생긴지 2시간 뒤 창비직원Z(unknownmemberz) 계정이 생겼다. 역시 창비에서 일하고 있다고 소개한 직원Z는 “직원A의 용기에 힘입어 계정을 만들었다”며 “회사의 입장이 부끄럽다. 회사가 하루빨리 입장을 철회하고 사과할 것을 바란다”고 말문을 열었다. 직원Z는 “한 동료가 창비가 아니라 창피라는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차라리 그냥 독자이고 싶다. 왜 부끄러움은 나의 몫인가”라고 토로했다. 18일 오전 올린 트윗에서 그는 “일개 직원이 굳이 공개적으로 이런 계정을 만든 이유는 창비는 입장을 밝혔지만 이런 입장이 나가는지도 몰랐던 노동자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외부인들을 만나게 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독자들 큰 충격
한편, 이번 신경숙 표절의혹 사태를 지켜보는 많은 독자들은 “정말 실망스럽고 큰 충격을 받았다”는 반응들이다. 심지어 “어디가서 한국문단 운운 하지마라, 작가는 무슨 작가? 얼어죽을 18세 문학소녀도 그따우짓 않는다. 습작기의 문학지망생이 자기 좋아하는 대가를 흉내내는 것은 몰라도 등단한 작가가 표절이다? 이것은 정말 유치, 수치스러운 일이다. 자기 지은 죄는 아는 모양이다 대응않겠다는 것을 보면,,,,정말 한국문단 한심 추잡스럽다. 창비가 아니라 창피 맞다.“ 는 반응들이다.
권맑은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