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사상최저` 기준금리, 가계부채가 문제
- 내수회복과 수출개선 기대 높아져
- 일각에선 금리인하 효과 의문도
- 가계부채는 여전히 리스크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11일 전체회의에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해 사상 최저치인 1.50%로 내린 것은 수출 부진이 이어지는데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돌발 악재까지 겹치면서 소비와 경기 위축 조짐에 사실상 정부와 공조해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기준금리 인하로 시장에 돈이 많이 풀리면 원·달러 환율을 높여 달러 기준 원화와 달러 기준 엔화로 추산하는 원·엔 재정환율도 끌어 올릴 여지가 있다. 현재 한국기업의 수출 부진의 핵심 원인인 원화 대비 엔화 약세 속도를 늦추면서 수출개선과 기업들의 실적 회복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추가 인하로 사상최대치인 가계부채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면서 우리 경제의 뇌관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내수 회복·수출 개선 기대…효과는 ‘글쎄’
이번 기준금리 인하가 저금리 대출을 더욱 활성화하면서 가계소비, 기업투자를 늘려 내수회복에 기여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또한 엔저 속도를 늦추면서 장기적으로 우리 수출기업들의 경쟁력 향상을 이끌어 시장에 호재로 작용할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신성환 금융연구원장은 “환율 부분도 도움을 받을 것이고 수출도 인하를 하지 않을 때보다 좋아지지 않겠느냐”며 “수출 회복으로 기업들의 실적이 개선되면 투자도 일부 좋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3시 기준 서울외환시장에서 원·엔 재정환율은 100엔당 900.15원을 기록했다. 전날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의 “엔화 약세가 더 진행되기는 힘들 것”이라는 강력한 ‘구두 개입’에 엔·달러 환율이 달러당 122엔대로 급락한데다 이날 금리 인하 영향으로 원·달러 환율이 오르면서 이달 초만해도 880원대에 머물던 환율이 900원대를 유지하고 있다. 같은 시간 원·달러 환율은 전일 종가(1108.2원)에서 0.6원 오른 1108.8원에 거래됐다. 김문일 유진투자선물 연구원은 “기준금리 인하 직후 원·달러 환율이 상승폭을 늘리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금리 인하의 즉각적인 경기부양 효과에 대한 의문도 여전히 존재한다. 최도성 가천대 교수는 “이미 앞서 3번이나 금리 인하를 하고 지난 몇 년간 적자재정을 감수하며 재정지출을 확대했지만 그 효과가 안 나타나고 있는 것도 재정과 통화정책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세계 경제가 아직 침체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대내외적으로 불확실성이 많은 상황에 따른 것”이라며 “이번 인하 효과도 크게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초저금리에 '1천100조 돌파' 가계부채가 문제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11일 기준금리를 1.50%로 내리면서 가계부채 증가세에 가속도가 붙을 가능성이 커졌다. 미증유의 초저금리가 주택 매매 증가에 따른 자금수요와 맞물려서다. 내 집 장만 수요자로선 호기를 맞았다. 하지만 양적 완화를 끝낸 미국이 이르면 9월부터 기준금리를 인상할 채비를 서두르면서 호기가 얼마나 길어질지는 의문이다. 가계부채 증가는 잠재위험을 키우는 일이므로 전문가들은 상대적 취약계층 등을 중심으로 대책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가계부채 1천100조 넘어…주택 매매 후끈 달아오르지만 주택담보대출 증가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1분기말 기준 금융권 전체의 가계신용(가계대출과 판매신용을 합한 금액) 잔액은 사상 최대인 1천99조3천억원이다. 그간 가계대출 급증세에 비춰 이미 1천100조원을 돌파한 게 확실시된다. 실제 한은의 '4월 중 예금취급기관 가계대출' 통계를 보면 4월 말 현재 예금은행과 비은행 예금취급기관(저축은행·신용협동조합·새마을금고·상호금융 등)의 전체 가계대출 잔액은 765조2천억원으로 한 달 전보다 10조1천억원 증가했다. 한 달 새 10조원 넘게 늘어난 것은 처음이다.
대출종류별 증액분은 주택담보대출이 8조원으로 증가액 대부분을 차지했고 취급기관별로는 은행대출이 8조7천억원으로 증가액의 90%에 육박했다. 지역별로는 수도권이 4월 한 달간 6조원이 늘어 전체 가계대출 증가세를 이끌었다. 실제 전국 주택 매매거래량은 지난달까지 3개월 연속으로 10만건을 넘었다. 5월에 10만9천872건으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40.5% 늘었다. 5월 거래량으로는 통계를 내기 시작한 2006년 이후 최대치다. 앞서 4월에는 12만488건이 거래됐다. 1∼5월 누적 거래량도 역대 최대치인 50만413건을 기록했다. 월세 전환으로 전세 구하기가 날로 어려워지고 전세값이 고공행진하자 매매 수요가 늘어난 영향이다. 실제 수도권은 물론 서울에서도 매매가격 대비 전세가의 비율이 90%를 넘는 곳이 속출한 것으로 전해진다.
미국 올리면 우리도?…"당장은 문제없어…취역계층 부채 주목 필요"
이런 상황에 비춰 기준금리 인하로 가계 빚 증가세는 가팔라질 공산이 크다. 가계 빚이 늘어난다고 당장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정부도 가계부채가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고 본다. 연소득 4∼5분위에 해당하는 고소득층의 빚이 가계부채의 70%를 차지하는데다, 금융자산은 물론 부동산 같은 실물자산까지 합치면 총자산이 총부채의 5배 이상이어서 담보력이 충분하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우려의 목소리가 이어지는 것은 증가 속도가 빠르고, 늘어나는 만큼 잠재 위험이 커진다는 점에 있다. 지난해 8월 정부가 주택담보대출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를 완화한 이후 가계신용 증가액은 60조원을 넘어섰을 것으로 추정될 정도로 빨리 늘었다.
당장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이 가시화된 게 부담이다. 고용지표가 호조를 띠며 '나홀로' 경기 회복세가 두드러진 미국이 금리 정상화를 시작하는 시기로는 현재로선 9월이 유력하다는 게 시장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미국의 금리 인상은 전 세계 금융시장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미국이 금리 정상화 속도를 천천히 하더라도 우리나라도 기준금리 인상 흐름에 언젠가는 동참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문가들은 본다.
국내 고정금리 대출 비중이 28% 수준인 점을 고려하면 전체 가계부채 중에 약 700조∼800조원은 기준금리 인상기에 이자 부담이 커지게 된다. 0.25%포인트만 올려도 이자 부담이 연간 2조원이 늘어난다는 얘기다. 특히 제2금융권이나 대부업체에서 고금리 대출을 받은 가계는 금리 인상에 따른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더하다. 이자 부담은 경기 회복이 더디고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여파까지 겹친 상황에서 가계의 소비 여력을 줄여 민간소비를 움츠러들게 할 수도 있다.
주택시장의 호조가 이어져 주택가격이 어느 정도 유지된다면 괜찮겠지만, 주택시장마저 위축되는 최악의 상황이 닥치면 가계부채의 잠재위험은 커질 수 있다. 이창선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잠재적 위험은 있지만 위험이 당장 현실화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부채가 늘며 자산도 함께 늘어나는 면이 있고 가계부채의 상당 부분은 중·고소득자가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만, 가계부채 증가 속도가 소득 증가 속도보다 빠르다는 점은 문제"라며 "미시 정책을 통해 상환 능력이 떨어지는 가계의 부채가 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맑은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