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당국의 달라지는 말바꾸기
“밀접 접촉만” → 시설 오염 전파, “1시간 이상 접촉” → 30분 만에
메르스확산 진원지인 평택성모병원의 실제 환경이 당초 정부가 고수한 매뉴얼과 크게 달랐던 것으로 드러났다. 병원 시설물이 바이러스에 오염됐던 것으로 확인되면서 최초 환자가 퇴원한 후 이 병원을 방문한 지역사회 주민에게서도 메르스 감염 환자가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정부가 사태 초기 내놓은 매뉴얼과 말들이 뿌리째 흔들리면서 바이러스 확산과 방역체계의 불신을 자초한 셈이다.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5일 정부세종청사에서 한 언론브리핑에서 “평택성모병원이 다른 병원들에 비해 원내 접촉자가 높은 감염력을 보이는 특성을 보이고 있다”며 “병원 이름을 공개하고 위험 시기에 이 병원을 방문한 모든 분들의 신고를 접수해서 위험 증상 여부를 확인하겠다”고 밝혔다.
전날까지 병원명 미공개 원칙을 강조했던 정부가 하루아침에 태도를 바꾼 것은 이 병원의 환경이 일반적인 메르스 감염 경로와 사뭇 다른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사태 초기 정부는 비말(직경 5㎛ 이하의 작은 침방울)이 반경 2m 이상을 벗어날 수 없다며 최초 환자의 2m 이내 밀접 접촉자들을 격리관찰자로 분류했다. 중동 지역에서 메르스는 비말을 통해 감염되고 있다.
그러나 민관 종합대응 태스크포스(TF)가 최초 환자가 입원한 병실을 조사한 결과 이 병실은 환기구·배기구가 없고 에어컨만 있는 특이한 구조였다. 전문가들이 병실 5곳에서 에어컨 필터를 꺼내 조사한 결과 필터 3개에서 메르스를 일으키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RNA가 검출됐다. 조사에 참여한 최보율 한양대 교수는 “상당 기간 폐쇄된 공간에서는 비말이 축적돼 있다가 병실 문이 열려 공기가 들어올 때 퍼져나갈 가능성이 있다”며 “에어컨 필터도 공기를 빨아들이기 때문에 병실 내 바이러스가 그쪽에 축적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최 교수는 “메르스가 비말이 아니라 공기 중으로 전파된다는 증거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메르스 환자와 1시간 이상 접촉해야 감염된다는 정부 매뉴얼도 국내 상황에선 통하지 않았다. 지난달 27일 서울 D병원 응급실에서 의사인 35번 환자가 환자들을 30~40분 진료하다가 옆 병상에 누워 있던 14번 환자에게 감염된 게 대표적이다.
사태가 매뉴얼과 다르게 전개되자 문 장관은 뒤늦게 병원 이름을 공개하면서 “떨어진 진주목걸이를 다 줍는다고 해도 혹시 (진주알) 한두 개가 빠질 수도 있다”며 “(감염 위험자를) 다 못 찾을 수도 있기 때문에 (5월15~29일 방문객 중) 개연성이 있으신 분들은 신고해달라”고 말했다. 사태 초기 “개미 한 마리도 지나치지 않는다는 자세로 대응하겠다”고 했던 것과 달라진 태도다.
정부가 이제야 평택성모병원 이름을 공개한 것을 두고도 감염병 확산의 주요 병원만큼은 진작 알렸어야 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정부는 당초 미국도 지역이나 병원 이름을 구체적으로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미국 보건당국은 주요 전염병 사례가 확인될 경우 병원 이름이나 지역을 공개하고 있다.
보건당국의 의사감염 치명적 거짓말 의혹
보건당국의 치명적인 중요 의문점은 14번째 감염자가 처음 서울의 대형병원을 찾은 건 지난달 27일이었다. 의사와 환자 등 3차 감염자는 같은 날, 응급실에서 감염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옆 병상의 환자를 진료했던 의사는 지난달 31일 밤 격리됐고, 그다음 날인 6월 1일 확진 판정을 받았다. 그런데 보건 당국은 사흘이 지나서야 이 의사의 확진을 발표했다. 메르스 확산의 매우 중요한 고비가 됐던 시점에 보건당국이 왜 확진 발표를 미뤘을까? 서울 대형병원의 의사가 최종 확진 판정을 받았다고 보건당국이 공식 발표한 것은 4일이다.
[권준욱/보건복지부 공공보건정책관(4일) : 일부러 지연시키거나 그런 것은 전혀 아니고. 이것은 재검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해서 다시 한 번 검사가 진행된 것.]
4일밤 서울시는 기자회견을 열고 해당 의사가 감염된 상태에서 1천5백 명 이상과 직, 간접적으로 접촉했다고 밝혔다. 또 당국이 발표하기 사흘 전 이미 확진 판정이 나왔다고 전했다. 그러자 당국은 말을 바꿨다. 지난 1일 확진이 됐지만, 정책적인 판단으로 발표를 미뤘다고 해명했다.
[오늘 : 정책적으로 일단 재검사 없이 (메르스) 양성자로 확인하는 게 맞겠다는 판단하에 최종적으로 6월 4일에 발표를 (했습니다.)]
그동안 보건당국은 감염이 확진되면 곧바로 발표해왔다. 이례적으로 발표를 늦춘 점에서 특정 병원 봐주기가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해당 의사는 의심 환자와 접촉했다는 것을 지난달 31일 오전까진 전혀 몰랐다고 주장했다.
[대형병원 의사/메르스 감염 : (5월) 31일까지는 메르스 환자와 접촉한 사실을 몰랐습니다. 감염을 일으킬 수 있는 증세가 나타난 이후로는 한 번도 안 움직였어요. 다른 사람을 만난 적도 없고요.]
이 의사는 확진 판정이 난 다음 날인 2일 국가지정격리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고 있다.
서울 한 대형병원서 2명 감염·600명 노출
서울의 한 대형병원 응급실에서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감염자가 2명 발생하고, 관련 감시 대상이 600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나 인구 천만 대도시 서울에 지역사회 감염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5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이날 추가로 확진된 메르스 환자 5명 중 41번(70·여)은 지난달 27일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서 14번 환자에게 감염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병원에서 일어난 감염은 4일 복지부가 확진 사실을 발표한 35번(38) 의사 환자 이후 두 번째다. 이미 감염된 상태로 도착한 14번 환자를 포함하면 이 병원을 거쳐간 확진자는 3명이다. 35번 환자는 최근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삼성서울병원 의사로 이미 널리 알려진 상황이다. 보건당국의 역학조사 결과를 보면 의사 환자와 41번 환자 모두 같은 날 같은 공간에서 같은 환자로부터 감염됐다. 이 때문에 이날 14번 환자 도착 이후 응급실을 이용한 환자와 보호자, 의료진 모두가 메르스 바이러스에 노출됐을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메르스대책본부에 따르면 14번 환자는 지난달 27일 오후 2∼3시 사이에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 도착했다. 권준욱 메르스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 총괄반장은 이날 정부세종청사 브리핑에서 (이 병원과 관련해) "지금 600명이 조금 넘게 그렇게(추적) 하고 있다"고 말했다. 메르스의 잠복기가 2∼14일이므로 지난달 27일 바이러스에 노출됐다면 잠복기가 끝나기까지 아직 5일 이상이 남았다. 권준욱 반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삼성서울병원에서 감염된 사례가 앞으로 더 나올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정부의 모니터링 체계 안에서 감시를 받던 노출자 중에서 추가 감염사례가 나온다면 다행이지만, 미처 연락이 이뤄지지 못한 응급실 이용자 가운데서 증상이 나타난다면 지역사회 확산 우려가 제기되는 엄중한 사태에 직면한 것이다. 수많은 환자와 보호자가 들락거리는 응급실의 상황을 고려하면 감염자가 감시망을 벗어나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밀접 접촉 가능성은 낮다고 하나 이 병원 의사가 재건축조합 총회 등에서 1천600명과 접촉한 것이 드러난 데 이어 이 병원 응급실 이용자 600명도 감시망에 포함된 것으로 확인돼 서울 지역에서 메르스 전파 우려가 한층 커진 셈이다.
보건당국은 그러나 삼성서울병원에 대해서는 평택성모병원과 달리 폐쇄 등의 조처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권준욱 반장은 "다른 의료기관 감염은 (평택성모병원 감염에) 부가적으로, 추가로 발생한 병원감염 형태이므로 일단 평택성모병원 한 곳에 대해 방문자 전수조사를 하되, 앞으로 전개되는 양상에 따라서 다른 판단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권맑은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