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 비상, G2 경기부진, 엔저, 저유가 등 영향
한국 수출이 부진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 경기의 부진에 더해 엔화 약세에 따른 한국 기업의 수출 경쟁력 저하, 저유가 등 대외 악재가 한국 수출의 발목을 잡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1일 밝힌 한국의 5월 수출액(423억9천200만 달러)은 작년 같은 달보다 10.9% 줄어든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올해 들어 5개월 연속 감소세를 보인 것으로 월간 수출액 감소율로는 세계 금융위기가 발생한 직후인 2009년 8월(-20.9%) 이후 근 6년 만에 최대치다.
한국 수출에 경고음이 켜진 것은 한국의 주요 수출국인 미국과 중국의 경기가 살아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경제는 올해 들어 흔들리기 시작했다. 1분기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마이너스로 떨어진데다 2분기 전망도 밝지 않다. 지난해 세계 경기 둔화 속 '나홀로 성장'을 이어간 미국 경제가 예상 밖으로 삐걱거리자 세계 경제에 대한 불안감은 더 커졌다. 중국 경제에 대한 불안감도 점점 커지는 상황이다. 중국의 1분기 GDP 증가율(7.0%)은 2009년 1분기(6.6%) 이후 6년 만에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한데 이어 2분기에도 경기는 나아지지 않고 있다. 중국의 산업생산과 소매판매, 고정자산투자 모두 부진을 거듭하고 있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주요 수출시장인 미국과 중국의 경기 부진 영향을 고스란히 받았다. 미국 경제가 주춤거리면서 5월 대미 수출액은 7.1% 줄어 2개월 연속 감소했다. 대중 수출액도 3.3% 줄어 4개월 연속 감소했다.
문제는 엔저가 이른 시일 내에 사그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시장에서는 올해 안에 일본은행이 추가 양적완화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강하다. 물가상승률이 애초 기대를 밑돌면서 일본은행이 최대 목표로 내세운 물가상승률 2% 달성이 쉽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일본은행이 추가로 양적완화에 나서면 엔저는 더욱 강해질 가능성이 크다. 블룸버그 집계에 따르면 시장의 달러·엔 환율 전망치는 올 연말 125엔, 내년 말 126엔, 2017년 말 127엔으로 완만한 상승세를 나타내고 있다.
저유가로 주력 수출품목인 석유화학·석유제품의 고전이 이어지는 점도 문제다. 지난달 수출에서 품목별 동향을 보면 석유제품과 석유화학의 수출액은 1년 전보다 각각 40.0%, 22.8% 감소했다. 저유가로 수출제품 가격의 단가 역시 떨어졌기 때문이다. 국제 유가는 지난해 말 사우디아라비아 등 석유수출국기구(OPEC) 주도국들이 '가격 지지'에서 '시장 점유율 고수'로 정책 방향을 바꾸면서 급락했다.
저유가 상황이 이어지고 있지만 OPEC의 '감산 불가' 정책이 바뀔 조짐이 없어 유가 반등은 현재로선 요원한 실정이다. 이지선 연구원은 "유가 하락에 따른 산유국 경제 위축 역시 한국의 수출은 물론 해외 건설에도 악영향을 준다"며 "저유가로 산유국의 재정 감소가 불가피해 해외 건설 수요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벼랑 끝에 몰린 수출,--“주력상품 ‘安住가 위기 불렀다”
5월 수출이 지난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두 자릿수(10.9%) 감소율을 보이는 등 한국 수출이 ‘내리막길’로 들어선 것은 경기순환주기에 따른 일시적 부진이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에 직면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1960년대 이후 50년 넘게 수출을 경제성장의 엔진으로 삼아왔지만, ‘수출 한국’이라는 평가에 취해 산업구조, 글로벌 경기, 산업 트렌드 등 수출환경 변화에 대한 대비책 없이 안주해온 탓이 컸다는 지적이다. 1일 산업연구원의 최근 분석결과에 따르면 한국의 연평균 수출증가율은 2000∼2008년 11.9%에서 2011∼2014년 1%로 급락했다. 최근 3년간 수출증가율은 명목(통관) 및 실질(국민계정) 기준 모두 1970년 이래 최저치로 떨어졌다.
1962년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원년에 태동한 한국의 수출정책은 반세기 이상 이어오면서 세계 7위권 도약을 견인하는 등 그동안 한국경제의 버팀목이 돼 왔다. 1997년 외환위기를 비교적 일찍 벗어날 수 있었던 것도 수출의 공이 적지 않았다. 섬유 의류 등 경공업 위축과 임금 인상 등으로 수출 한계에 부딪힌 상황에서 ‘중화학 공업화 선언(1973년 1월 12일 박정희 대통령 연두 기자회견)’은 나라 안팎의 거센 반대에서 나온 과감한 결단으로 평가받는다. 세계은행(IBRD)과 국제통화기금(IMF)이 “한국은 저임금 이점을 살려 노동집약적인 경공업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이후 정부가 수출환경 변화에 대응해 선도적으로 산업정책을 편 적이 없다는 게 지배적인 평가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40년 동안 중화학공업에 주력하다가 신흥국에 발목이 잡혔고, 돌파구였던 정보기술(IT) 분야도 이미 다른 나라의 추격권에 놓였다고 진단한다. 시장변화를 외면한 채 똑같은 상품을 똑같은 시장에 파는 관성에 젖어오다 한계에 봉착했다는 것이다.
한국이 안주하는 동안 중국은 턱밑까지 쫓아왔고, 일본은 ‘아베노믹스’에 따른 엔저(엔화가치 하락) 효과로 제품수출에 날개를 달았다. 국내 기업들은 채산성을 이유로 공장을 계속 해외로 옮겨가고 있다. 한국의 주력 수출품인 자동차의 경우 해외생산 비중이 50%에 달하고, 휴대전화는 80%를 넘었다.
권맑은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