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대통령, 국무총리 ‘황교안’ 지명
황교안 총리지명의 정치적 의미
박근혜 대통령이 21일 황교안 법무부 장관을 신임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하면서 국정이 다시 활력을 찾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완구 전 총리 사퇴의 후유증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50대의 젊은 현직 국무위원을 총리로 발탁, 국정전반에 새로운 활력을 모색하고 상황 반전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나타냈다. 황교안 총리카드가 취임 3년차로 접어든 박 대통령이 그간의 인사실패를 해소하고 국정 난맥상을 벗어나 새로운 도약을 이뤄내는 발판이 될 것인지 관심이다.
이 전 총리 사퇴 이후 총리 후보자를 놓고 박 대통령의 고심이 길었던 것은 그만큼 인사문제가 난제였던 것으로 보인다. 집권 초기부터 2년여 동안 잊을 만하면 터지는 인사문제로 박근혜정부의 국정운영은 계속 제동이 걸려왔다. 취임 초부터 김용준 전 후보자의 낙마에 이은 '윤창중 성추문 사태' 이후 2년차에는 안대희·문창극 전 후보자의 연이은 낙마로 물러나지 못했던 정홍원 전 총리는 '뫼비우스 총리'라는 비아냥까지 들어야 했다.
대통령 취임3년차 정부에 들어서면서 이완구 총리·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 체제로 '청와대 문건 파동' 후폭풍을 해소하고 국정에 활력을 되찾겠다고 팔을 걷어부쳤다. 그러나 '성완종 리스트 파문'이 불어닥치면서 불과 두 달 만에 회심의 카드였던 이 전 총리가 물러나야 했고 결국 국정공백은 지속됐다. 모든 국정의 출발점인 인사문제를 제대로 해소하지 못하면서 박 대통령이 취임 초부터 줄기차게 외쳐온 경제활성화를 비롯한 대부분의 국정운영이 상당한 차질을 빚어왔다.
이 같은 인사난맥상이 지속되면서 이미 임기가 절반가량 지나가버린 박 대통령으로서는 남은 기간 성과를 거둬야 한다는 압박에 직면해왔다. 때문에 박 대통령은 신뢰할 수 있는 '황교안 카드'를 통해 좀 더 안정적으로 자신의 국정 스타일 기조를 유지하면서 정치·사회 개혁을 전개해 국정에 활력을 되찾겠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 출범 초기부터 지금까지 법무부 장관으로 재임해온 황 후보자의 경우 박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누구보다 잘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박 대통령과 유기적인 호흡을 맞춰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박 대통령은 최근 성완종 리스트 파문을 통해 불거진 '정치개혁' 실현을 우선적으로 강조하며 국정 분위기를 반전시켜나가는데 더욱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이 전 총리의 경우 부정부패 척결을 기치로 내걸었지만 정작 본인이 발목 잡힌 모양새가 된 상황에서 황 후보자를 통해 중단 없이 개혁작업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이미 김성우 청와대 홍보수석도 이날 인선 발표를 통해 "지금 우리의 현실은 경제 재도약과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루기 위해 과거부터 지속되어 온 부정과 비리, 부패를 척결하고 정치개혁을 이루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그동안 줄기차게 인사문제에 시달려온 박근혜정부가 이번 총리 인선을 통해 '인사 트라우마'를 벗고 국정동력을 되살리는 계기로 만들 수 있을지가 관심이다.
야권은 황 후보자에 대해 "공안통치에 나서겠다고 노골적으로 선언한 것"이라고 비난하면서 비판의 날을 세우고 있어 인사청문회 과정에서도 난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또 기존의 우려를 잠재울 만한 새로운 인물이 아니라는 점뿐 아니라 줄곧 법조계에 몸담아온 인사로서 국정전반을 진두지휘하면서 부처간은 물론 정치권과도 긴밀히 협력해야 하는 정무적 역할도 필요한 총리직을 잘 수행해나갈 수 있을지 여부도 두고볼 문제다. 이와 함께 박 대통령이 남은 임기 동안 자칫 사정정국이 조성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공안통으로서 그동안 국정원 댓글사건, 수사 가이드라인 논란 등 정치적인 사안과 관련해 비판을 받아온 황 후보자가 앞으로 박 대통령의 정치개혁 기조를 앞세워 공안정국 조성에 힘을 쏟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황교안은 누구인가?
황교안(58·사법연수원 13기) 국무총리 후보자는 ‘미스터 보안법’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대표적 공안통 검사출신 법무부 장관이었다. 황 후보자는 박근혜 정부 초대 법무부 장관으로 2년2개월간 일하면서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정당해산결정을 이끌어냈다. 대검찰청 공안1·3과장, 서울지검 공안2부장 등을 거친 황 후보자는 공안수사의 교과서로 불리는 <국가보안법 해설>의 저자다.
서울중앙지검 2차장이던 2005년 7월 국가정보원 도청 자료를 통해 폭로된 이른바 ‘삼성 엑스파일 사건’ 특별수사팀의 지휘를 맡았다. 횡령과 뇌물공여 혐의를 받던 이건희 삼성 회장을 서면조사만 하고 수사를 마무리하는 등 삼성 쪽 인사 모두를 불기소 처분했다. 엑스파일 내용을 보도한 이상호 <문화방송>(MBC) 기자와 녹취록 전문을 실은 김연광 <월간조선> 편집장, ‘떡값 검사’의 실명을 공개한 노회찬 의원을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같은 해 10월에는 강정구 동국대 교수 사건의 처리를 놓고 논란의 한복판에 섰다. 당시 황 차장 산하의 공안1부 수사팀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고발된 강 교수에 대해 구속 방침을 밝히자 천정배 법무부 장관이 불구속 수사를 하라는 취지로 수사지휘권을 발동했다. 김종빈 검찰총장이 반발해 사퇴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이후 황 후보자는 요직인 서울중앙지검 2차장을 거치고도 검사장으로 승진하지 못했다. 동기였던 서울중앙지검 1·3차장은 모두 검사장으로 승진했다. 황 후보자는 이명박 정권이 출범한 2008년 3월이 돼서야 검사장으로 승진했다.
황 후보자는 야간 신학대학을 다니며 교회 전도사를 맡기도 한 독실한 침례교 신자다. ‘종교활동과 분쟁의 법률지식’이라는 책도 집필했다. 황 후보자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에 대한 불만을 공개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황 후보자는 81년 사법시험에 합격했고 음반을 낼 만큼 색소폰 연주에도 일가견이 있다.
왜 황교안 총리인가?
박근혜 대통령이 21일 새 국무총리 후보에 황교안 법무부 장관을 지명한 것은 이완구 전 총리 낙마 사태에 흔들리지 않고 4대 구조 개혁과 사정 및 정치개혁 드라이브를 계속 밀고 가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밝힌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황 지명자가 박근혜정부 초대 법무부 장관으로서 줄곧 야당의 집중 견제와 비판의 대상이 돼 왔음에도 불구하고 박 대통령이 그를 발탁한 것은 정치권의 공방과 상관없이 정권 차원에서 해야 할 일은 하겠다는 선언으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이날 인선 결과 발표가 한 차례 기약 없이 연기됐다가 발표되는 등 우여곡절이 있었고 야당에서 즉각 강한 반발이 나온 데서 알 수 있듯, 황 지명자가 국회 인사청문회와 임명동의안 표결을 통과해 총리로 최종 확정되기까지는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황교안 총리 카드’에 담긴 박 대통령의 국정 운영 구상은 ‘정면돌파’라는 한마디로 요약된다. 집권 3년 차인 올해 공무원연금과 노동·금융·교육 등 4대 구조개혁을 경제 활성화에 버금가는 최우선 국정 과제로 설정한 박 대통령이 누가 이를 실행할 적임자인지를 차기 총리 인선의 제1 기준으로 삼았다는 얘기다. 황 지명자는 진작부터 인사 요인이 있을 때마다 총리는 물론 대통령 비서실장 후보로 유력하게 거론됐을 정도로 박 대통령의 국정 철학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인물로 통해 왔다. 집권 2년 차인 2014년 세월호 침몰 참사와 3년 차인 2015년 상반기를 ‘성완종(전 경남기업 회장) 파문’에 휘둘리면서 갈 길이 바빠진 박 대통령으로서는 황 지명자를 가장 믿고 맡길 수 있는 인물로 생각할 수 있다는 의미다.
실제로 김성우 청와대 홍보수석은 이날 황 지명자 인선 결과를 발표하면서 “대통령의 국정 철학에 대한 이해가 깊고 사회 전반의 부정부패를 뿌리 뽑아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고 정치 개혁을 이룰 수 있는 적임자”라고 설명했다. 김 수석은 “지금 우리 현실은 경제 재도약과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루기 위해 과거부터 지속돼온 부정과 비리, 부패를 척결하고 정치 개혁을 이루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도 강조했다. 박 대통령이 황 지명자에게 내린 미션이 부패 척결과 개혁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황 지명자가 정권 초부터 실세 장관으로 통했음에도 불구하고 업무 외적인 잡음 없이 조용한 스타일로 일해 왔다는 점도 그의 발탁 이유 중 하나로 분석된다. 이와 함께 정치인 출신이 아닌 법조인 출신 전문관료가 새 총리에 내정된 데에는 정치와 대야 관계는 여당인 새누리당에 맡기고 박 대통령은 정부의 국정운영 스케줄대로 국가과제를 추진해 가겠다는 뜻도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황 지명자가 총리에 오를 경우 정치인인 이 전 총리에 비해 여당에 대한 장악력은 상대적으로 약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황교안 카드를 내건 박 대통령의 국정 운영 구상은 결코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개각 요인이 있을 때마다 황 지명자를 ‘교체 1순위’로 지목해 온 야당이 그의 임명동의안 처리에 협조해 줄 가능성은 높지 않다. 야당은 특히 황 지명자가 법무부 장관으로 일하면서 검찰의 편파 수사와 공안 분위기 조성을 주도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황 지명자에 대한 청문회와 인준표결이 파행을 겪는 것은 물론 자칫 여야의 공무원연금 개혁안 처리에도 불똥이 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은 이 같은 이유에서다. 하지만 국민들은 대통령의 ‘황교안 국무총리 지명’에 꽤 환영하고 있다.
엄원지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