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연금담합 리뷰’, 시카고 재정과 그리스경제 무엇을 배울 것인가?
시카고시 재정 어떻길래?
지난 5월 8일 미국 시카고시 행정수장 람 이매뉴얼 시장은 잔뜩 긴장한 채 일리노이주 대법원 재판정에 섰다. 이날은 지난해 시의 '공무원연금 개혁법'에 대해 시공무원 노조가 제기한 위헌 소송 최종심 판결이 내려지는 날이었다. 판사는 굳은 표정으로 최종 판결문을 읽어 내려갔다. "공무원 혜택을 축소하거나 훼손할 수 없도록 규정한 주 헌법에 위배된다." 이매뉴얼 시장과 시카고시에 청천벽력의 선고였다.
람 이매뉴엘 시카고 시장
이 판결이 나온 지 나흘 뒤인 12일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시카고시 신용등급을 정크본드 수준인 Ba1으로 강등했다. 2년 전 디폴트 선언 후 미국의 대표 산업도시에서 '고물도시'로 전락한 디트로이트 수준으로 추락한 것이다. 무디스는 강등 이유를 '대법원의 판결로 시카고시는 재정적자를 해소할 수 있는 마지막 가능성마저 사라졌다'고 지적했다. 시 공무원 연금재정에 대한 개혁이 대법원으로부터 '사형선고'를 받았다는 것이다. 시카고의 재정적자 규모(누적 기준)는 지난해 무려 632억달러(약 69조원)에 달한다. 이 중 공무원연금 적자는 200억달러로 전체 재정적자의 3분이 1이나 된다. 시카고는 한때 600~700개 큰 기업들이 둥지를 틀며 미국 5대 도시 중 하나로 위상을 떨쳤다.
시카고가 왜 '정크 도시'로 추락할 수밖에 없었을까? 결론은 '표만 얻고 보자'는 정치인들의 포퓰리즘과 시 자기 '철밥통'만 챙긴 공무원들의 이기주의가 빚어낸 합작품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시카고 의회는 지난 15년 동안 수십 번에 걸쳐 슬금슬금 연금 소득대체율은 높이고 연금 수령나이를 당기는 식으로 법을 개정해 왔고 이로 인해 지난 2000년 33억달러에 불과했던 연금 적자는 20배나 불어났다는 것이다. 연금 지급 방식은 한국과 유사한 확정급여형으로 퇴직 후 평생에 걸쳐 확정된 규모의 연금이 지급되는 시스템이다.
연금지급액은 본인 기여율(4~11.5%), 주·시정부 재정지원(26~42%), 기금 운영수익(약 50~70%) 등으로 구성된다. 문제는 시카고시 공무원들의 과도하게 높은 소득대체율이다. 75~85%에 이른다. 한국의 경우 최고 62% 정도다. 게다가 소득대체율 산정 기준을 임금이 가장 높은 퇴직 직전 4년간의 연봉으로 삼고 있다. 매년 내는 연금기여액은 10% 안팎인 반면 퇴직 후 받는 돈은 정상 월급과 큰 차이가 없다보니 파산은 이미 예고된 수순이었다. 시카고는 현재 매년 지급해야 할 연금액의 무려 절반을 적자재정으로 메우고 있는 형편이다. 실제로 시카고시에 따르면 시카고시의 공무원 1인당 연 연금지급액은 평균 4만1400달러인 데 반해 현재 확보된 1인당 예산은 2만달러에 불과하다.
연금 수급 나이를 보면 더 가관이다. 시카고시 소속 경찰의 경우 20년 이상 재직 경력자라면 심지어 나이 50세에 은퇴를 해도 연금을 받는다. 이러다 보니 교사연금은 이미 파산상태고 나머지 연금도 파산 직전으로 내몰린 지 오래다. 이런 누적적자가 시 재정 전체에도 부담으로 작용하며 교육재정까지 바닥나 결국 매년 수십 개 학교가 문을 닫는 상황으로까지 몰렸다.
학교가 문을 닫고 자리도 없어질 상황이 왔지만 교사들은 연금 축소보다는 퇴직을 선택하는 사례가 속출하는 공무원들의 도덕적 해이가 만연된 것이다. 시카고 지역언론인 시카고트리뷴은 "공무원들은 시장이 '개혁안'을 만들라 지시해도 차일피일 미루면서 '연금휴가'만 계획했다"고 꼬집었다. 이매뉴얼 시장은 지난해 4월 이해관계자들과 정치권의 거센 반발을 이겨내고 시의회와 가까스로 '연금 개혁'에 합의했다. 시카고시의 연금개혁안은 문제가 되는 소득대체율을 줄이고 연금지급 시기도 5~7년씩 늦추는 것이다. 그러나 공무원 노조와 퇴직연금조합 노조는 또다시 강력 저항하면서 곧바로 소송을 제기했다. 공무원 노조는 법원 역시 공무원 신분으로 연금의 가장 큰 수혜자라는 점에 내심 기대를 걸었다. 역시나 법원은 약속이나 한 듯 노조 기대에 '딱' 맞는 판결을 내놨다.
공무원 그룹 중 판사의 연금 소득대체율이 85%로 가장 높다. 판결을 내리는 판사가 가장 큰 이해관계자로서 사실상 '고양이 손에 생선을 맡기는 격'이 된 것이다. 시카고선타임스 칼럼니스트 마크 브라운은 13일자 칼럼에서 "일리노이주 대법원의 황당한 결정으로 신용등급 하락이 야기됐고 시카고는 디트로이트와 거의 같은 수준으로 추락했다"고 비판했다. 이번 판결로 인한 후폭풍은 신용등급 추락 외에도 매우 크다. 결국 구멍 난 연금을 시카고 주민 세금으로 메워야 하는데 이로 인해 1인당 7400달러의 부채를 떠안게 됐다. 재산세 인상률이 150%에 이를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디폴트 난 디트로이트 주민 한 명이 떠안아야 하는 부채(5100달러)보다도 더 많다. '부채폭탄'은 악순환 고리를 만들 수밖에 없다. 재산세·법인세 등을 인상하면 결국 '부자'들과 '기업'이 떠나고 이는 다시 시의 재정위기로 작용한다는 것은 디트로이트시가 보여준 선례다.
IMF, “그리스 6월 국가부도 불가피”
그리스가 내달 디폴트 위기를 모면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채권국과의 구제금융 협상 타결이 여전히 요원한 가운데 내달 5일부터 꼬리를 무는 국제통화기금(IMF) 채무 상환을 이행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얘기다. 투자자들의 경계감이 크게 고조되면서 18일(현지시각) 그리스 국채 수익률이 연초 이후 최고치로 치솟았다. 이날 주요 외신에 따르면 IMF는 내부 보고서에서 구제금융 지원이 없을 경우 그리스가 내달 총 15억유로(17억1000만달러)의 IMF 채무금을 상환할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진단을 내렸다.
그리스 정부는 당장 내달 5일 3억유로의 부채를 갚아야 하는 상황이지만 공무원 급여와 연금 불입금조차 충분히 마련하지 못한 상태다. 이 때문에 앞서 이브 메르시 유럽중앙은행(ECB) 정책위원도 “그리스가 종반전을 맞았다”며 “쉬운 상황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리스는 72억유로의 구제금융 지원금을 받아내기 위해 수개월에 걸쳐 채권국과 협상을 벌이고 있지만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한 상태다. 급진 좌파 그리스 정부는 채권국이 요구하는 개혁안 수용을 완강하게 거부하고 있다.
바클레이스는 이날 보고서를 통해 “앞으로 2주일이 그리스의 운명을 결정 짓는 분수령이 될 것”이라며 “그리스 정부의 현금이 몇 주 사이에 고갈될 전망이며, 디폴트 리스크가 크게 고조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리스 경제전문가는 그리스의 디폴트가 불가피하다는 데 입을 모으고 있다. 하이 프리퀀시 이코노믹스의 칼 B. 와인버그 이코노미스트는 “그리스는 디폴트를 모면하기 어렵다”고 잘라 말했다. 컨설팅 업체 DRPM 그룹의 필리파 맘그렌 대표는 “그리스의 디폴트 위기는 장기간 지속된 일이지만 최근 상황은 매우 다급하다”며 “그리스는 다리 세 개가 부러진 말과 같다”고 전했다.
가베칼 드라고노믹스의 아나톨 칼레츠키 이코노미스트는 “유로존 채권국은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대신 디폴트 상황으로 몰아갈 것”이라며 “그리스 정부는 IMF 부채뿐 아니라 공무원 급여도 충당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투자자들의 불안감이 증폭된 데 따라 그리스 국채 수익률이 가파르게 치솟았다. 이날 장중 2년물 수익률이 352bp 뛰면서 24.44%까지 상승했다. 10년물 수익률도 55bp 상승하며 10.98%까지 올랐다. 10년물 수익률은 1년 사이 447bp 뛰었다. 결국, 시카고시 재정문제나 그리스 경제몰락의 근본원인은 좌파 표퓰리즘 저질정치의 결과였다.
권맑은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