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리 미국무장관, ‘사드’ 언급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이 미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의 한반도 배치 필요성을 언급했다. 미국의 대외정책을 좌지우지하는 케리 장관의 입에서 사드 문제가 공개적으로 거론됐다는 것은 가볍게 넘길 사안이 아니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케리 장관은 방한 마지막 일정으로 지난 18일 서울 용산 주한미군기지를 방문해 미군 장병들과 만난 자리에서 "우리는 모든 결과에 대비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사드와 다른 것들에 관해 말하는 이유"라고 밝혔다.
그는 북한의 위협을 거론하면서 사드 필요성을 제기했다. 케리 장관의 이런 발언이 알려지자 주한 미국대사관과 외교부는 케리 장관 방한 중에 양국간 사드 논의는 없었다고 서둘러 진화에 나섰지만 불씨는 여전히 꺼지지 않고 있다. 미측 인사들은 그간 마치 '치고 빠지는' 듯한 모양새로 사드를 언급하면서 한국을 우회적으로 압박해왔다. 케리 장관이 한국을 떠나기 직전에 사드 문제를 거론한 것도 "한국이 고민해봐라"는 압박성 메시지를 던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달 10일 애슈턴 카터 미국 국방장관이 한민구 국방장관과 회담을 한 뒤 가진 공동기자회견에서 미국은 "현재 세계 누구와도 아직 사드 배치를 논의할 단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밝힌 뒤 사드 배치 논란은 일단 수그러드는 양상이었다. 하지만 40여일 만에 미측이 사드 필요성을 공론화시킨 데는 분명한 전략적인 의도가 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미측은 사드를 핵심체계로 하는 미사일방어(MD)체계를 아태지역에 구축하고 있다. 이런 작업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을 극대화하면서 추진되고 있다.
미국 국방부 관리들이 한국에는 보안 준수를 엄격히 요구하면서 자국 언론에 북한의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 등의 정보를 지속적이고 의도적으로 흘리면서 위협을 극대화해온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커티스 스캐퍼로티 한미연합사령관은 19일 극동포럼 주최 강연에서 "최근 몇년 동안 북한의 위협이 계속 변화했으며 앞으로도 변화할 것"이라며 "이는 최근 북한의 SLBM 발사 주장에서도 볼 수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우리나라 일부 정치권과 군에서도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려면 한국형 미사일방어(KAMD)체계를 보완하는 사드 배치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지난해 미측은 주한미군사령부를 통해 사드 배치 후보지 5곳에 대한 실사를 진행했다. 가장 유력한 사드 배치 후보지는 2016년까지 주한미군 부대가 결집하는 평택이 꼽히고 있으나 후방지역의 대구 등도 거명되고 있다.
미 정부가 록히드마틴과 계약한 7개 사드 포대 중 5번째 사드 포대가 올해 하반기에 미 육군에 인도되고 내년부터 6번째, 7번째 포대가 차례로 납품된다. 미측은 앞으로 인수하는 사드 포대 중 2개 포대 정도를 한국을 비롯한 국외주둔 미군기지에 배치할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사드 배치가 결정되면 비용 부담 주체와 부지 부지 제공 문제 등의 논란도 예상되고 있다.
우리 국방부와 외교부는 사드 배치 가능성에 대해 아직도 '3 NO'(요청·협의·결정 없음)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국방부는 "사드 구매 계획이 없으며 그런 절차도 전혀 진행된 것이 없다"고 설명하고 있고, 외교부도 "사드 배치 문제와 관련해 한미 정부간 협의가 전혀 이뤄진 바가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달 말 싱가포르 아시아안보대화(일명 샹그릴라대화)에서 열리는 한미 국방장관회담, 한미일 국방장관회담 등에서 미측이 사드 문제를 공식, 비공식적으로 꺼내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내놓고 있다.
국방부, 케리사드발언-“한반도 평화 노력하자는 맥락”으로 이해, 배치는 아직 어정쩡?
국방부는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이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인 사드(THAAD)의 한반도 배치 필요성을 시사하는 발언을 한 것과 관련, 한반도 평화와 안전을 위해 노력을 해야한다는 맥락이라고 밝혔다. 나승용 국방부 부대변인은 19일 오전 정례브리핑에서 “케리 장관의 주한미군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사드 문제가 일부 언급된 것으로 알고 있다”며 “미국측에 확인해보니 케리 장관이 언급했던 것은 북한의 핵이라든지 미사일 위협의 심각성을 언급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나 부대변인은 이어 “또 이와 연계해 한반도 내에서 평화와 안전을 위해 노력을 함께 해야한다는 맥락에서 말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사드 배치에 관련된 내용들은 투명하게 하겠다고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만약 진전되는 것이 있다면 당연히 언론에 이야기해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케리 장관의 발언 이후 청와대와 정부가 유지해온 “미국의 요청이 없었기 때문에 협의도 없었고 결정된 것도 없다”는 이른바 ‘3 NO’ 원칙이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케리 장관이 방한 마지막 일정이었던 서울 용산 주한미군기지를 방문해 처음으로 사드의 한반도 배치 필요성을 언급한 자체가 한국을 압박한 것으로 풀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케리 장관의 발언을 계기로 한미 양국의 사드 논의가 공론화 단계에 접어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한편 케리 장관은 18일 미군 장병들을 만난 자리에서 북한의 위협을 언급한 뒤, “우리는 모든 결과에 대비해야 한다”며 “이것이 바로 우리가 사드와 다른 것들에 관해 말하는 이유”라고 밝혀 미국이 사드의 한반도 전개를 추진하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낳았다. 한미 양국은 외교부가 한미 외교장관회담에서 사드에 대한 논의가 없었다고 해명하고, 마크 리퍼트 주한미국대사가 케리 장관의 발언은 내부 행사에 참석해 내부 청중을 상대로 한 것이라고 하는 등 불끄기에 나섰지만 사드의 한반도 배치를 둘러싼 논란은 한층 더 뜨거워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권맑은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