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집 그리스 좌파총리, 구제금융 먹구름, <그리스 경제 나락으로 추락중>
13일 그리스 통계청(ELSTAT)은 1분기(1~3월)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 0.2%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작년 4분기(10~12월) 마이너스 0.4%에 이어 두 분기 연속으로 그리스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했다. 그리스 경제가 다시 리세션에 빠진 것은 2013년 4분기 이후 처음이다. 블룸버그는 "그리스의 정치적 불확실성으로 2400억유로 규모의 구제금융 지원에 대한 우려가 커진 상황이 경제성장률에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그리스의 시리자 연합 정부는 유럽연합(EU)·국제통화기금(IMF)과 마지막 72억유로 구제금융을 두고 4개월에 걸친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상황은 악화되고 있다. 그리스 현금 고갈 우려가 커지고 있는 데다, 디폴트(채무불이행) 불안도 증폭되고 있다.
어떤 대가를 치르면서라도 구제금융에 합의하려고 하지 않겠다고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가 기존 강경노선을 고수했다. 이로써 디폴트를 피하고 유동성을 공급해주기 위한 그리스와 국제 채권단간의 합의가 타결에 이르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치프라스 총리는 16일(현지시간) 아테네에서 열린 한 컨퍼런스에 참석, “채권단과의 구제금융 합의에 이르러야 한다는 점에는 추호도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전제하면서도 “타결 시한이 다가오면서 자연스럽게 그리스측의 저항이 시험받을 수 있다거나 우리가 더이상 물러설 수 없는 마지노선이 약화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생각은 지워버려야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재 치프라스 총리는 공무원과 정부기관 종사자들에게 대한 추가 임금 삭감과 연금 축소라는 채권단 요구를 거부하는 등 협상 마지노선에서 한 발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2400억유로 규모의 기존 구제금융 미집행분을 지원받기 위해 그동안 110일간이나 진행돼온 양측간 협상은 결실을 맺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이런 대치국면으로 인해 유동성 경색과 경기 침체로의 재진입, 그리스의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이탈 우려 등이 커지고 있다.
이와 관련, 야니스 바루파키스 그리스 재무장관도 이날 현지 언론인터뷰에서 “채권단과의 합의에 이르겠다는 목표만으로 우리 정부는 수용할 수 없는 조치들에 합의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역시 같은 언론에 출연한 디미트리스 스트라툴리스 보건사회부 장관도 “우리는 합의를 위한 합의는 원하지 않는다”고 전제한 뒤 “그리스 정부는 그리스 국민과 이나라, 그리고 나아가 유럽의 이익을 지킬 수 있는 결론을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스의 강경노선에도 불구하고 협상은 계속되고 있다. 한 유럽연합(EU) 관계자는 “유럽중앙은행(ECB), EU 집행위원회, 국제통화기금(IMF) 등 트로이카와 그리스 정부 관료 등으로 구성된 소위 `브뤼셀그룹`에서의 협상은 이번 주말부터 다음주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브 메르쉬 ECB 정책위원은 이날 룩셈부르크 라디오 100.7과의 인터뷰에서 “그리스는 유로존내 18개 다른 나라들과 다른 규칙을 원하고 있다”며 이 때문에 협상을 둘러싼 상황이 녹록치 않다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현재 양측간에 구제금융으로 가야 한다는 원칙에는 합의가 이뤄지고 있는 만큼 협상도 최종 단계까지 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리스 총리 ‘알렉시스 치프라스’는 누구?
알렉시스 치프라스(Alexis Tsipras,40)은 2015년 1월 26일부로 그리스 최연소 총리에 오른 급진좌파연합 시리자(SYRIZA, the Coalition of the Radical Left)를 지난 2009년부터 이끌어온 인물로 1974년 7월 28일 생이다. 그는 2009년에 최초로 그리스 의회(Hellenic Parliament)에 진출했고, 2015년 1월 25일 급진좌파연합을 이끌며 총선거에서 36%의 득표율을 획득 총 300석 가운데 149석을 차지하면서 그리스 총리에 오르게 된 인물이다.
그는 그리스 아테네(Athens)에서 그리스 군사정권이 멸망한지 3일 후인 1974년 7월 28일에 태어났다. 그는 아테네공과대학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했으며 2000년에 졸업한 후 대학원에서 도시 및 지역계획을 공부했다. 이후 그는 건설업계에서 토목기사로서 근무를 했다. 알렉시스 치프라스는 아테네시에 관한 여러 연구논문 등을 저술했다. 그는 1980년대 후반 청년공산주의 학회에 가입을 했고, 90년대 초에는 암펠로끼포이 고등학교 학생이었다. 고등학생 당시에 그는 논란이 많은 교육문제 등에 깊은 관심을 갖고 정치적 활동을 하기 시작한 활달한 성격의 소유자로 학생운동의 대표자격으로 방송 인터뷰 등에 다수 출연하기도 했다.
그는 엔켈라두스(Enceladus)라는 그룹에 가입, 혁신적인 좌파운동을 열심히 했다. 엔켈라두스는 “신들과 싸우다가, 아테나가 던진 큰 돌에 맞아 죽은 거인‘을 뜻하는 좌파운동단체의 이름이다. 그는 NTUA대학 토목공학과 학생연합의 집행위 위원으로 뽑혀 활동하기도 했다. 그는 이어 1995년부터 1997년까지 그리스전국학생연합(EFEE)의 중앙위원으로 선출되면서 자신의 활동 영역을 넓혔다.
1999년 5월부터 2003년 11월까지 그리스 좌파운동생태주의연합인 시나스피스모스(Synaspismos Neolaia Syn)의 청년층을 대변하는 정치적인 보좌진으로 일하게 됐다. 급진좌파성향의 정당이지만 그는 이후 시나스피스모스의 지도자로서 줄곧 일을 해왔다. 그는 ‘젊은이’라는 뜻을 가진 ‘네올레아(Neolaia Syn)’에서 일할 때에는 중도성향을 보였었다. 그는 올바른 일, 잘못되었다고 생각되는 정책 등에 대해서는 큰 목소리를 내는 인물로 거듭 성장해왔다. 그러나 그의 올바른 일이란 지극히 ‘좌파적 시각’에서의 올바른 일이었다.
시나스피스모스 멤버로 그가 일을 할 때에 ‘그리스사회포럼(Greek Social Forum)'창설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신자유주의(Neoliberal)세계화 반대를 위한 모든 국제 시위나 회합에 참여하는 적극성을 보였다. 2004년 12월 알렉시스 치프라스는 시나스피스모스 제 4차 총회에서 당 중앙정치위원회 위원을 선출됐고, 교육과 청년문제를 담당했다.
2006년 지방선거 동안에 중앙정치무대에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아테네시에서 급진좌파연합 ‘시리자(Syriza)’가 10%가량의 표를 얻는데 크게 공헌했다. 이후 2008년 2월 10일 시나스피스모스 제5차 총회에서 시나스피스모스의 지도자로 선출됐다. 당시 나이 33세였다. 당시에 그리스 정당 가운데 최연소 당수가 되는 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그가 이끌고 있는 현재 그리스의 경제, 그리고 국력은 힘없이 꺼져가고 있으며 국격은 추락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대한민국에 시사하는 바도 크다.
권맑은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