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피바람 숙청-"김정은 집권 이후 간부 70여명 처형"
북,현영철 인민무력부장 고사총으로 공개처형
북한 내 군 서열 2위인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우리의 국방부 장관에 해당)이 지난 4월 30일쯤 반역죄로 처형됐다는 첩보를 입수했다고 국가정보원이 13일 밝혔다. 처형이유는 지시 불이행과 불만표출 등에 따른 ‘불경’이며, 수백 명이 참관한 가운데 일반 소총이 아닌 고사총으로 처형된 것으로 전해졌다. 국정원은 이날 국회 정보위원회 비공개 현안보고에서 이같이 브리핑했다고 김광림 정보위원장과 간사인 새누리당 이철우·새정치민주연합 신경민 의원이 전했다.
현 부장은 군 서열 1위인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 다음으로 꼽히는 군내 실력자였다는 점에서 이번 처형이 북한 내 권력구도 재편의 신호탄이 아니냐는 해석과 함께 김정은 체제의 불안정성을 내보인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현 부장은 4월 24∼25일 열린 군 일꾼대회에서 조는 모습이 적발되고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지시에 대꾸하고 불이행했으며, 김 위원장에 대한 불만을 표출한 부분 등이 ‘불경’ 혹은 ‘불충’으로 지적돼 ‘반역죄’로 처형됐다고 국정원은 보고했다.
현 부장은 평양 순안구역 소재 강건군관학교에서 수백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고사총으로 공개 처형된 것으로 전해졌다. 또 지난 6개월간 마원춘 국방위 설계국장, 변인선 총참모부 작전국장, 한광상 당 재정경리부장 등 김 위원장의 측근 간부들도 숙청됐다고 국정원은 보고했다. 국정원은 “현영철 숙청은 과거 리영호 총참모장 숙청, 장성택 전 국방위 부위원장 숙청 때와 달리 당 정치국의 결정 또는 재판절차 진행 여부에 대한 발표 없이 체포 후 3일 내에 전격적으로 이뤄진 것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국정원은 이번 현영철 처형 사건이 김 위원장의 ‘공포 통치’와 핵심 간부들에 대한 불신이 심화하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며, 반대로 간부들 사이에서는 김 위원장의 지도력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확산하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분석했다. 국정원은 별도 기자브리핑에서 “김정은 집권 이후 총 70여 명의 간부 이상급 인사를 총살한 것으로 확인됐다”며 “간첩, 반혁명 반당행위, 종파행위뿐 아니라 김정은에게 이견을 제시하거나 불만을 토로한 경우, 비리나 여자문제 등도 처형의 이유”라고 밝혔다. 국정원은 김 위원장의 고모인 김경희 독살설에 대해서는 “근거없다”고 일축했다.
현영철 처형에 동원된 '고사총'이란?
현영철 북한 인민무력부장을 처형하는데 사용된 ‘고사총’은 구소련에서 개발한 14.5mm ZPU 중기관총 여러 정을 묶어 만든 대공화기다. 북한은 지난해 10월에도 우리 민간단체가 대북전단 유인물을 실은 풍선을 날리자 이를 향해 고사총을 발사한 바 있다. 고사총은 수직으로 발사했을 때 1.4km 고도에 있는 목표물까지 맞힐 수 있으며, 한 정이 분당 1200발을 발사할 수 있다.
북한군은 대공 방어용으로 ZPU 계열 화기를 대량 운용하고 있으며, 일반 보병연대에도 14.5mm 고사총 중대를 편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군으로만 구성된 고사총 부대도 다수 운용 중이다. 북한군은 과거 휴전선 부근에 일어난 국지적 교전에서도 14.5㎜ 고사총을 여러 차례 동원한 적이 있다. 2010년 10월 북한군은 강원도 화천 지역의 우리 측 GP를 향해 두 발의 고사총을 발사했고, 2003년 7월 경기도 연천 GP에서 일어난 총격전에도 이 무기를 동원했다.
김정은 회의론, 북 내부 확산
평양에 또다시 ‘피의 집단숙청’이라는 공포정치가 재연되고 있는 것은 김정은 체제의 불안정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평가된다.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2013년 12월 12일 정권 2인자였던 고모부 장성택 전 국방위 부위원장을 전격 처형한 이후 1년 5개월 만이다. 국가정보원이 13일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숙청을 확인한 북한 고위 인사만도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을 포함해 6명에 달한다. 이날까지 최근 6개월 동안 평양에서 벌어진 일이다.
김정은 체제에서 북한 고위 엘리트들이 얼마나 ‘파리 목숨’인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증거다. 김 제1위원장의 잔혹하면서도 독단적인 통치 스타일을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동시에 김 제1위원장의 지난 9일 러시아 전승절 행사 불참과 맞물리면서 김정은 체제의 권력 기반이 상당히 약하다는 분석이 잇따르고 있다.
특히 정보 당국은 김 제1위원장이 군부 인사를 집단 숙청한 의도와 배경 파악에 주력하고 있다. 표면적인 숙청 사유는 현 부장 등이 ‘최고 존엄’인 김 제1위원장에 대한 불충과 반역을 저질렀다는 것이지만, 이면에는 복잡한 정치 역학이 숨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정보 당국은 판단하고 있다. 먼저 김 제1위원장이 자신의 권력 기반이 상당히 불안정하다고 생각해 군부 다잡기에 나섰을 가능성이 높다. 김 제1위원장이 8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사출 시험 현장에 참석하는 등 부쩍 군부대 시찰 및 훈련 참관이 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또 군부 핵심 인사를 잔인하게 처형하는 방식은 일종의 본보기였을 수도 있다. 김 제1위원장이 핵심 실세로 떠올랐던 리영호 총참모장(2012년 7월)과 장성택 부위원장(2013년 12월)을 차례로 제거한 것과 같은 방식으로 정권 2인자를 만들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군부의 경제적 이권 문제가 걸려 있을 수도 있다. 주로 군부가 이권 사업을 독점하고 있는 북한 체제 특성상 다른 세력과 이해 충돌이 발생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다.
황병서 총정치국장이 현 부장 숙청에 관여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김영수(정치학) 서강대 교수는 “현 부장은 상당한 충복인데, 충복 제거를 통해 다른 인사들의 충성심을 끌어내는 효과를 노렸을 수 있다”면서 “그 이면에는 현 부장이 당 사업을 추진할 때 걸림돌이 되는 등 경제적 이권이 중요하게 작용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집권 4년 차를 맞은 김 제1위원장의 독단도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조급성과 난폭성이라는 개인적 기질까지 작용했다.
이번에 숙청이 확인된 인사들은 모두 김 제1위원장의 측근으로 분류돼 왔는데, 한순간에 날아간 셈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북한 엘리트층에서는 김 제1위원장의 지도력에 대한 의구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관계자는 “김정은의 독단성이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는 징후가 속속 감지되고 있다”면서 “공포통치 강도가 높아지면서 김정은의 지도력에 대한 회의적 시각도 확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권맑은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