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완종 측근들 증거인멸-누군가의 회유, 증거인멸 교사 있는 것 아닌가?
검찰, 경남기업 박준호 전 상무, 비자금 자료 빼돌린 정황 포착
검찰의 경남기업 수사에서 증거인멸 의혹이 계속 불거졌다. 성완종 전 회장의 측근인 박준호 전 경남기업 상무는 구속영장 신청이 됐다. 박준호 전 상무가 삭제하거나 빼돌리려던 자료는 무엇이었는가에 관심이 주목되고 있다. 검찰은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지 않았는데, 경남기업이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주고 그 차액을 남긴 자료 등이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검찰은 이 부분에서 로비자금이 마련된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검찰이 주목하고 있는 곳은 경남기업 토목담당 부서다. 회사 자료가 집중적으로 빼돌려지거나 파쇄된 정황이 포착된 곳이다. 주로 경남기업과 계열사인 대아레저 사이의 거래 내역 등이 포함된 것으로 파악됐다. 검찰도 지난 21일 경남기업 본사와 대아레저 등을 압수수색해 이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자료 일부를 확보해 경남기업이 대아레저에 일감을 몰아주고 대금 일부를 비자금으로 조성한 정황이 있는지도 함께 확인하고 있다.
박 전 상무 등이 비자금 조성 경로를 숨기기 위해 자료를 없애거나 빼돌리려 한 것으로 검찰은 파악하고 있다. 검찰은 박 전 상무 등을 상대로 빼돌린 자료가 무엇인지 파악하는 한편, 남아있는 자료를 추가로 확보하는데 주력할 방침이다.
검찰, 성완종 수행비서 이용기, 증거인멸 긴급체포
또 검찰은 성 전 회장의 수행비서 이용기씨를 체포했다. '성완종 리스트' 수사가 시작된 이래 성 전회장의 최측근 인사가 긴급체포된 건 이번이 두 번째다. 경남기업 관련 의혹 특별수사팀(팀장 문무일 검사장)은 23일 이씨를 증거인멸 혐의로 조사 중 긴급 체포했다. 수사팀은 이씨가 지난 21일 증거인멸 혐의로 먼저 긴급체포된 박준호 전 경남기업 상무와 공모해 증거자료를 은닉, 폐기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씨는 성 전 회장을 10년 이상 보좌해 성 전 회장 비자금의 용처를 가장 잘 아는 인물로 주목받는다. 경남기업 홍보팀장인 이씨는 성 전 회장이 의원직을 잃은 이후에도 비서를 맡는 등 성 전 회장의 최측근으로 활동해왔다. 이씨는 박 전 상무와 함께 성 전 회장의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 대비하기 위한 '대책회의'에도 참석한 인물이다. 수사팀은 이씨가 성 전 회장이 건넸다는 불법 정치자금의 규모 등을 알고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수사팀은 이씨를 상대로 리스트에 등장하는 인물들에게 성 전 회장이 불법 정치자금을 건넸는지, 혹시 그 자리에 동석한 사실이 있는지, 성 전 회장이 어떤 경위로 불법 자금을 조성했는지 등을 조사할 방침이다. 수사팀은 먼저 체포된 박 전 상무에 대해 이날 구속영장을 청구하고 이씨에 대해서도 조사를 마치는 대로 구속영장을 청구할 방침이다.
측근들 증거인멸-누군가의 회유, 증거인멸 교사 있는 것 아닌가?
‘성완종 리스트’ 특별수사팀이 “증거인멸이 (또 다른) 주요 수사 갈래가 됐다”고 밝히면서 금품수수 혐의 외에도 증거인멸 혐의로 주요 인사들이 처벌받을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수사 협조를 공언하던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 측근들이 도움은커녕 수사 방해에 나섰다는 혐의에 비춰볼 때 이들에게 ‘리스트 인사’들의 회유나 협박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수사 본격화에 앞서 박 전 상무는 “회장님 유지에 따라 검찰 수사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그랬던 그가 증거인멸을 주도했다면, 그 동기는 무엇일까. 검찰은 증거인멸이 이뤄진 시기에 주목하고 있다. 증거인멸은 두 차례에 걸쳐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지난달 18일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가 경남기업 본사를 1차 압수수색한 뒤 직원들이 폐회로텔레비전(CCTV)을 끈 채 각종 자료를 빼돌렸다고 보고 있다. 검찰이 가져가지 않은 자료를 처분한 것으로 보인다.
이것보다 더 의심스러운 건 2차 증거인멸이다. 검찰은 지난 12일 박 전 상무 등의 지시로 대대적 서류 파쇄 및 은닉이 이뤄졌다고 의심하고 있다. 이에 대해 박 전 상무는 “성 전 회장님이 돌아가시고 난 뒤 증거를 훼손한 건 없다. 성 전 회장님 살아계실 때 퇴직하는 임원들이 있었다. 그들이 쓰던 컴퓨터를 다른 사람이 써야 하니까 컴퓨터 내용을 일부 지운 게 전부”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검찰은 성 전 회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9일), 언론을 통해 ‘성완종 리스트’ 명단이 모두 공개된 뒤인 12일에 증거인멸이 이뤄진 점에 주목하고 있다. 리스트에 이름이 올랐거나, 거기에 이름이 없어도 금품을 받은 누군가가 성 전 회장 측근들을 통해 자신들과 관련된 자료를 없앤 것 아니냐는 의심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수사팀 관계자는 “증거인멸 의혹도 계속 확인하고 있는데 유의미한 변화가 있었다. 수사가 한 갈래 나뉘었다. 수사 가닥이 점차 잡혀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리스트 인물’이 경남기업 쪽에 증거인멸을 부탁한 사실을 검찰이 확인한다면 수사는 급진전될 수 있다. 증거인멸죄는 ‘타인의 형사사건’에 관한 증거를 인멸·은닉할 경우에만 적용된다. ‘자기 형사사건’과 관련된 증거를 인멸하는 건 죄가 안 된다. 그러나 남을 시켜서 자기 사건 관련 증거를 인멸하면 증거인멸 교사죄가 성립한다. ‘리스트 인물’의 금품수수 사실이 당장 입증되지 않는다 해도 증거인멸 교사로 우선 처벌할 수 있다는 뜻이다. 수사팀 관계자는 ‘(누군가에게) 증거인멸 교사죄가 성립하느냐’는 질문에 “수사팀 내부에서 관련 법리 검토를 마쳤다”며 증거인멸 교사죄 입증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내비쳤다.
권맑은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