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문불출 사의총리, 청와대-새총리 인선 고민심각
이완구, 고립무원 이틀째 삼청동 공관 칩거
이완구 국무총리가 사의 표명 이틀째인 22일에도 서울 삼청동 총리 공관에서 나오지 않았다. 지난 21일 청사에서 퇴근한 이후 한 번도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것이다. 이 총리는 당분간은 아무런 공식 일정을 수행하지 않은 채 총리 공관에 머무를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오후에 잡혀 있었던 사우디아라비아 석유부장관 접견도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한다. 사의를 표명한 상황에서 정부 대표로서 공식 일정을 수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이 총리는 총리 공관에 머무르며 주요 업무에 대한 보고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무엇보다 대통령은 해외 순방 중이고, 여전히 총리직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주요 업무에서 완전히 손을 뗄 수는 없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추경호 국무조정 실장이 전날 2차례에 걸쳐 총리 공관을 찾은 데 이어 이날 오전에도 다시 공관을 찾아 주요 현안에 대해 보고했다.
총리실 관계자는 "사의를 표명한 상황에서 대외 행사에 참여하거나 외빈을 만나지는 않지만, 총리 신분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기본적인 업무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전날 이완구 국무총리의 갑작스러운 사의 표명으로 충격에 휩싸였던 총리실은 조금씩 안정을 되찾는 분위기다. 총리실은 이날도 추경호 국무조정실장 중심으로 움직였다. 추 실장은 이날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제2차 4·16 세월호 참사 피해자 지원 및 희생자 추모위원회'를 열어 세월호 피해자 지원 대책을 심의·의결했다. 이어 서울청사와 세종청사를 연결하는 화상 간부회의를 열어 "총리가 사의를 표명하고 대통령이 부재한 상황에서 국정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업무를 꼼꼼히 챙겨달라"고 당부했다.
새 총리 인선--'리더십+추진력'+'도덕성' 무게
한편, 박근혜 대통령이 오는 27일 중남미 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뒤 새 국무총리 후보자 인선에 본격 착수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청와대가 이번엔 어떤 잣대로 인선에 나설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현 정부 초대 총리였던 정홍원 전 총리가 자기 '색깔'을 드러내기보다는 정권의 연착륙을 돕기 위해 뒤에서 국정 전반을 조율하는 '관리형 총리'에 가까웠다면, 이완구 총리는 이른바 '실세 총리'로 불리며 박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 아래 각종 정책과제를 주도적으로 추진코자 하는 등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여권 내에선 이완구 총리가 고(故)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의 금품수수 의혹에 따른 도덕성 시비 등으로 취임 2개월여 만에 '중도 하차'할 상황에 처했다는 이유에서 일단 "이 총리 인선 당시 적용한 요건을 유지하되, 도덕성 측면을 '보강'할 수 있는 인물이 후임 총리로 발탁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앞으로 박 대통령의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뒷받침하면서 '경제 활성화' 등의 정책성과를 조기에 가시화하려면 "리더십과 정책 추진력은 물론, 도덕성을 바탕으로 국민에게 믿음을 줄 수 있는 인물이 새 총리가 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 총리의 사의 표명 이후 정치권과 언론의 후임 하마평에 이미 장관 인사청문회 등을 통해 도덕성 검증을 받은 전·현직 관료 출신 인사나 정치인 출신 인사들이 우선 거론되는 것도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다. 그러나 현역 정치인들의 경우 총리직을 제의받더라도 내년 총선 출마 문제가 걸림돌이 될 수 있다.
현재도 내각 중엔 사의를 표명한 이 총리 외에도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포함해 황우여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유일호 국토교통부·유기준 해수부·김희정 여성가족부 장관 등이 국회의원 신분을 유지하고 있어 이들이 차기 총선에 나설 경우 연말쯤엔 일정 규모 이상의 개각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부총리나 장관 등 현직 각료 가운데 새 총리를 발탁하더라도 역시 후속 개각을 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
이런 가운데, 여권 일각에선 "새 총리 인선과 관련해선 앞서 이 총리 사의 표명과 관련한 박 대통령의 메시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박 대통령이 현 시점에서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부분들이 곧 차기 총리에게 필요한 덕목이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박 대통령은 21일 이 총리의 사의 표명과 관련, 내각과 청와대를 향해 "이 일로 국정이 흔들리지 않고, 국론분열과 경제 살리기의 발목을 잡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주문하면서 "정치개혁"과 "경제 살리기"를 거듭 강조했었다.
이 가운데 '정치개혁'에 방점을 찍을 경우 관료 출신보다는 이를 상징할 수 있는 법조계 출신 인사가 총리 후보로 발탁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현직 각료는 후속 개각이 필요하다는 부담이 있다. 이밖에 이 총리가 각종 전국단위 선거의 '캐스팅보트'로 꼽히는 충청 지역 출신이었다는 점에서 재차 충청 지역 출신 인사를 총리 후보로 지명할지 여부도 주목된다. 총리 인선을 준비하는 청와대의 고민이 상당하다.
권맑은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