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춘도 말바꿔, 홍준표 녹취-1억전달 윤씨 "회장님도 직접 확인"
김기춘 말바꿔 신뢰성 계속 떨어져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에 거론된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비서실장 재임 중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을 만난 적이 없다고 했다가 이를 번복했다. 이완구 국무총리에 이어 '거짓말' 논란이 불가피해 보인다. 김기춘 전 실장은 지난 10일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2006년 자신에게 10만달러를 건넸다는 보도가 나오자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허무맹랑하고 완전히 소설"이라며 "비서실장 재임 중에 성 전 회장을 한번도 만난 적이 없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김 전 실장은 17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2013년 11월 6일 오후 6시30분에 성 전 회장을 비롯해 이인제 새누리당 의원 등 충청도 의원 5명과 저녁을 먹었다"며 "착각을 했던 것 같다"고 말을 바꿨다. 또 "다시 기억을 되살려 자료를 보니 11월 6일은 확실히 기억이 난다"며 "그날 밥값도 내가 결제를 했다"고 덧붙였다.
'2013년 11월 6일'은 '중앙일보'가 입수한 성 전 회장의 2013년 8월~ 2015년 3월 일정표에 김기춘 전 실장과 만났다고 기록된 날 중 하나다. 그러면서도 "당시 개인적인 부탁 같은 게 전혀 없었다"며 금품 수수 가능성을 거듭 부인했다. 김 전 실장은 성 전 회장의 일정표상으로 또 다른 만남이 있었던 것으로 기록된 같은 해 9월 4, 5일에 대해선 "9월초는 기억이 가물한데 만난 것 같기도 하고 정확치 않다"고 일축했다.
롯데호텔 헬스클럽 회원들, 김기춘, 성완종 가끔 봤다
“성완종 회장도, 김기춘 실장도 본 적이 있다.” “칸막이 안에 앉으면 안이 잘 보이지 않았다.” “탈의실 안에도 누워 쉴 수 있는 방이 따로 있었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2006년 9월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을 만나 10만달러를 직접 건넨 장소로 언급한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피트니스센터(헬스클럽) 회원들은 9년 전 헬스장 구조를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이곳의 구조를 살펴보면, 2006년 당시와는 라운지의 위치가 바뀌었지만, 회원들은 “사람들의 눈을 피할 수 있는 공간이 과거에 있었다”고 설명했다.
성 전 회장은 돈을 건넸다는 장소를 ‘헬스클럽’이라고만 밝혔었다. 2006년 당시 롯데호텔 피트니스센터에는 라운지, 남녀 탈의실, 헬스장, 골프연습실, 수영장이 갖춰져 있었다.
성 전 회장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두 사람이 만난 장소는 라운지나 남성 탈의실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1979년 호텔 개관과 함께 문을 연 이 피트니스센터는 34년만인 2013년 5월에 개장 이후 처음으로 리모델링을 했다. 이곳 회원들은 리모델링 전 라운지가 4층 입구 바로 앞에 있었다고 한다. 현재 이곳에는 안내데스크가 있지만, 당시에는 한층 아래 3층에 안내데스크가 있었다고 한다. 라운지를 볼 수 있는 위치에 호텔 직원이 상주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라운지당시 라운지는 지금처럼 독립된 공간은 아니었지만 안 쪽으로 칸막이가 설치돼 있었다고 회원들은 전했다. 한 남성회원은 “4층 입구로 들어오자마자 라운지가 있었는데 라운지가 칸막이로 나뉘어 있었다. 칸막이 안에 앉으면 다른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한 안이 잘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한 여성회원은 “라운지 안에 칸막이가 있으니 자연스럽게 남녀가 구분해 앉았다. 둘러 앉아 바둑을 두기도 하고 준비된 커피나 차를 마시기도 했다”고 말했다. 탈의실에서 만난 다른 여성회원은 “리모델링 전에는 탈의실 안에도 누워서 쉴 수 있는 방이 따로 있었다”고 했다.
성 전 회장은 생전에 소공동 롯데호텔을 약속 장소로 자주 이용했다고 한다. 피트니스센터 라운지에서 ‘성완종 리스트’를 보도하는 텔레비전 뉴스를 보던 한 남성회원은 “김기춘 실장도, 성완종 회장도 헬스클럽에서 (따로) 본 적이 있다”고 한다. 롯데호텔 쪽은 “피트니스센터 직원들은 1~2년씩 순환근무를 하기 때문에, 2006년 당시 상황은 잘 모른다”고 한다.
롯데호텔 헬스클럽 회원권이 있는 김 전 실장은 피트니스센터 이용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금품수수 의혹은 “절대 그런 일이 없다”고 거듭 밝혔다. 그는 16일 한 언론과의 통화에서 “학교 가듯이 매일 헬스장에 가지 않고 틈날 때마다 간다. 그런데 (성 전 회장이) 날짜를 특정하지 않고 9월에 나한테 돈을 줬다고 주장한다. 돈을 건넸다는 날이 구체적으로 언제인지 분명히 해야한다. 그래야 그날 국회 본회의가 있어서 내가 헬스장에 못갔다거나 헬스장에서 실제 운동을 했다고 답변드릴 수가 있다”고 했다.
홍준표 녹취--1억전달 윤씨 "회장님도 직접 확인"
한편, 홍준표건은 “회장님도 (홍준표 경남지사에게 전화를 걸어) 직접 확인하지 않았습니까?” 성완종(64ㆍ사망) 전 경남기업 회장이 홍준표 경남지사에게 1억 원을 건네며 그 전달자로 지목한 윤모 전 경남기업 부사장이 성 전 회장과 만나 이같이 말하고, 대화 내용을 녹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16일 사정당국에 따르면 성 전 회장은 숨지기 직전 수행비서 출신인 이모 경남기업 부장과 함께 수술을 받고 투병 중인 윤씨를 서울소재 A병원으로 찾아가 “건넨 돈을 홍씨에게 전달한 게 정말 맞냐”고 재확인했다.
윤씨는 성 전 회장이 1억원 전달 여부를 묻는 질문에 손동작을 크게 취하며 “회장님도 직접 확인하지 않았습니까”라고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성 전 회장은 윤씨를 통해 1억원을 전달한 직후 홍 지사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확인’ 통화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성 전 회장을 잘 아는 한 인사는 “성 전 회장이 돈을 함부로 쓰지 않기 때문에 쓴 돈은 이처럼 꼭 확인하는 버릇이 있다”고 했다.
윤씨는 성 전 회장의 방문 당시 대화를 녹취했으며 이런 사실은 두 사람 만남에 동석한 성 전 회장의 비서 이씨도 목격한 것으로 전해졌다. 문제는 홍 지사가 금품수수 사실을 부인하는 상황에서 두 사람의 이 같은 대화내용이 홍 지사에게 결정적으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윤씨가 1억원을 홍 지사에게 전달하지 않고도 자신의 혐의를 벗기 위해 전달했다고 허위 증언하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윤씨는 자신이 배달사고를 내지 않았다는 정황을 강조하기 위해 녹취 파일을 검찰에 제출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씨가 자신의 의혹을 벗기 위해 검찰 조사에서 홍 지사에게 1억원을 전달한 과정을 구체적으로 증언할 가능성도 높다. 홍 지사는 이날도 “성완종씨가 저한테 돈을 줄 이유가 없다”며 “(성 전 회장이)2013년 선거법 위반 사건을 봐달라고 할 때 내가 곤란하다고 거절한 적이 있다”고, 청탁을 거절한 탓에 ‘성완종리스트’에 올랐다는 취지로 말했다. 그러나 이처럼 홍 지사와 윤씨의 공방이 불가피해진 상황에서 성 전 회장과 윤씨의 대화 녹취록은 홍 지사를 옭아맬 카드가 되고있다.
성 전 회장은 자신이 금품을 제공한 여권 실세들을 메모지에 남기기 위해 한모 전 경남기업 부사장, 이씨와 회의를 한 직후 윤씨를 찾아간 것으로 전해졌다. 성 전 회장이 다른 정치인들에게는 자신이 직접 돈을 건넸지만 홍 지사의 경우 윤씨를 통한 사실을 기억해 내고, 혹시 있을 배달사고 가능성을 확인한 것으로 풀이된다. 성 전 회장은 이후 ‘홍준표 1억’을 포함, 정치인 8명의 이름과 금액을 적은 문제의 메모지를 작성했다. 앞서 성 전 회장은 3인 회의에서 금품을 건넸던 정치권 인사를 일일이 재확인하며 폭로 대상을 선별했고, 한씨는 당시 상황을 녹취해 최근 검찰에 제출했다.
윤씨는 신문기자 출신으로 2012년 경남기업 부사장으로 취직했으며, 선친에 이어 성 전 회장과 밀접한 사이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새누리당 대표 경선 때 서청원 의원 캠프의 공보특보를 지냈고, 2010년과 2011년 한나라당 대표 경선에서는 홍준표 의원 캠프를 도왔다. 여당의 경선자금과 대선자금에 대해 모두 잘 알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수사의 또 다른 뇌관이 될 수도 있다.
권맑은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