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완종, 허태열7억, 김기춘10만달러 전달, 죽는 날 새벽 경향신문과 인터뷰
‘이명박 정부’를 겨냥했던 ‘사정’의 태풍이 성완종 경남기업 전 회장(새누리당 전 의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여타 정치권 전반으로 번지고 있다. 성 전 회장이 9일 목을매던날 새벽 경향신문과의 마지막 인터뷰를 통해 2007년 당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대선후보 경선을 전후해 당시 박근혜 후보 캠프에 경선자금 등을 전달한 사실을 유언처럼 남겼기 때문이다. 이를 경향신문이 보도했다. 성 전 회장이 생전 전·현 정부 주요 인사 등 정치권 전반에 걸쳐 친분을 맺어왔다는 관측과 맞물려 메가톤급 파괴력의 판도라 상자인 ‘성완종 리스트’가 열려버린 것이다.
성 전 회장은 이날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2007년 대선후보 경선 당시 박근혜 정부 초대 비서실장을 지낸 허태열 전 의원(70)에게 경선자금을 건넸다고 밝혔다. 성 전 회장은 당시 박근혜 캠프 직능총괄본부장이던 허 전 의원을 서울 강남 리베라호텔에서 몇 차례 만나 7억원을 건넸다고 했다. 액수와 장소까지 적시했다. 성 전 회장이 전날 기자회견에서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때 허태열 전 의원 소개로 박근혜 (당시) 후보를 만났고, 박 후보 당선을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뛰었다”고 밝힌 것의 증거를 제시한 셈이다.
성 전 회장은 박 대통령이 2006년 9월 앙겔라 메르켈 총리를 만나러 독일에 갔을 때도 박 대통령 측에 돈을 건넸다고 주장했다. 대상은 당시 박 대통령을 수행했던 김기춘 전 의원(전 비서실장)이었으며, 금액은 미화 10만달러였다고 한다. 성 전 회장 인터뷰대로라면, 박근혜 정부 전직 비서실장들이 모두 연결고리가 된 것이다. 성 전 회장은 새누리당 친박 핵심으로 통하는 ㄱ의원 등 다른 친박들과도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성 전 회장이 자원외교 문제가 불거진 이후 친박 핵심 인사들에게 구명운동을 벌이고 다녔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성 전 회장은 이명박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국가경쟁력강화특별위원회 자문위원을 지내면서 당시 실세들과 친분을 맺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때 쌓은 인맥 등이 자원외교 문제와 관련해 특혜로 이어진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받기도 했다. 성 전 회장은 노무현 정부 때도 두 차례나 특별사면을 받는 등 당시 실세들과도 가깝다는 말을 들었다.
‘억울함’ 호소, 극단적 선택 징후 보여
성 회장 주변에서는 그가 이미 극단적 선택을 할 징후를 보였다고 말하고 있다. 검찰 수사로 경남기업이 세 번째 워크아웃에 들어가면서 사실상 ‘회생 불가능’ 상태에 빠지고, 자신마저 구속 위기에 처하자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뜻이다. 성 회장의 한 지인은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됐다’고 상심한 상태에서 검찰 수사가 한국석유공사 등 사업 관계자와 주변 인물들로 뻗어갈 조짐을 보이자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불안정한 감정이 실제 행동으로 표출된 적도 있다. 3일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은 뒤 귀가할 때는 대기하고 있던 취재진을 뿌리치며 신경질적인 모습을 보였고, 8일 기자회견 말미에는 “자원개발 사업 실패로 인해 피해를 본 국민들에게 목숨을 걸고라도 보답하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달 초 모친의 기일에는 친동생과 함께 충남 서산의 모친 묘소를 찾아 통곡한 것으로 전해졌다.
‘마지막 카드’였던 기자회견이 여론의 호응을 얻지 못하자 극단적 선택을 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올 수밖에 없게 되었다. 성 회장은 특히 8일 기자회견에서 ‘2007년 대선 후보 경선에서 박근혜 당시 후보를 도왔다’고 주장한 것은 참모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직접 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성 회장의 한 지인은 “8일 기자회견을 마친 뒤 한숨도 자지 않고 박 대통령 측의 반응을 기다리다 새벽에 결심을 굳히고 외출한 것 같다”고 말했다. 성 회장은 최근 여권 고위 인사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거절 의사를 전달받거나 전화 통화 자체를 거부당한 적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여권, 노코멘트
청와대와 여권은 논평을 삼갔다. 새누리당 김영우 수석대변인은 “유서 내용이나 정황이 알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그저 안타까울 뿐”이라고 밝혔다. 일각에선 이명박 정부를 겨냥한 사정 칼날이 ‘부메랑’으로 돌아온 것 아니냐는 말도 나왔다. 친이계 인사들은 “하늘에서 떨어진 정부인 줄 아느냐”며 ‘폭로거리’가 있음을 시사했는데, 이런 경고가 현실화됐다는 해석도 있다. 9일 새벽 ‘어머니 묘소에 묻어달라’는 유서를 쓰고 잠적한 성완종 경남기업 전 회장이 끝내 숨진 채 발견됐다. 그는 이날 오전 10시30분 서울중앙지법에서 영장실질심사가 예정돼 있었지만 결국 법정에 나가지 않고 죽음을 택했다. 극단적인 결정을 내리면서도 성 전 회장은 “꼭 좀 보도해달라”고 경향신문과 전화 인터뷰를 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김기춘·허태열 “그런 일 없다” 전면 부인
한편, 성완종 경남기업 전 회장으로부터 억대의 돈을 받은 것으로 지목된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76)은 9일 “그런 일 없다”고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허태열 전 비서실장(70)도 “그런 일은 없었다”고 밝혔다. 김 전 실장은 이날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2006년 10만달러를 전달받았느냐’는 질문에 “그런 일 없다. 더 이상 드릴 말씀이 없다”고 했다. 김 전 실장은 ‘성 전 회장 주장이 거짓인가’라는 확인에도 재차 “그건 내가 알지 못하겠다. 그런 일은 없다”고 부인했다.
허 전 실장도 이날 경향신문 기자와 만나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 현금 7억원을 건넸다’는 성 전 회장 주장에 대해 “그런 일은 일절 모른다. 노코멘트 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허 전 실장은 “사실관계를 떠나서 그런 일을 모르지만, 이러쿵저러쿵 사실관계를 말한다는 게 망인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적절치 않다”며 “그래서 노코멘트 하는데 그런 일은 없었다”고 거듭 의혹을 부인했다. 김 전 실장은 2006년 9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수행해 벨기에와 독일을 다녀오기도 했다. 성 전 회장은 이때 김 전 실장에게 10만달러를 전달했다고 주장했다.
10일 아침 이 보도를 접한 많은 시민들은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죽음에 혀를 차거나 애도를 표하고 있다. 또 한 친박 지지자는 "무슨 말을하겠느냐? 그토록 박대통령을 지지하고 열심히 뛰었는데,,,"라며 허탈해 했다. 하지만 모두의 공통점은 검찰이 "한치의 오차도 없고 철두철미하게 자원비리를 수사해서 성역이 있을 수 없고 지휘고하를 막론하고 관피아, 정피아의 적폐들을 뿌리 뽑아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권맑은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