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대 재생산 가능한 경제·소프트웨어 원조에 집중"
(보고타=연합뉴스) 고미혜 기자 = 국제개발협력 사업 현장 하면 전기도, 수도도 들어오지 않고 주민들이 기아에 허덕이는 오지의 빈곤국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고층 빌딩들이 서 있고 거리에 고급 유럽차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콜롬비아의 수도 보고타는 오지에 우물을 파고 학교를 짓는 것이 국제개발협력의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잘 보여주는 곳이다.
9일 이곳에서 만난 한국국제협력단(KOICA) 콜롬비아 사무소의 김창섭(51) 소장은 "경제규모가 어느 정도 갖춰진 콜롬비아에서의 경우 하드웨어보다는 소프트웨어에 초점을 맞춰 원조 사업을 진행한다"고 설명했다.
2009년 문을 연 콜롬비아 사무소에는 현재 김 소장과 조혜원 부소장, 봉사단원 관리요원, 인턴과 현지직원까지 모두 14명이 근무 중이다. 또 보고타, 카르타헤나를 비롯한 콜롬비아 각지에 15명의 봉사단원과 2명의 중장기자문단이 파견돼 있다.
커피와 마약, 축구 등의 키워드가 먼저 떠오르는 콜롬비아는 2012년 국내총생산(GDP)이 3천787억 달러로 세계 31위, 중남미에서는 브라질, 멕시코, 아르헨티나에 이어 4번째다.
그러나 여전히 인구의 40% 가까이 빈곤층일 정도로 빈부격차가 극심한 데다 전체 산업 중 제조업의 비율이 10%로 제조업 기반이 매우 취약해 성장에 한계를 갖고 있는 구조다.
특히 극빈층의 상당수가 접근이 어려운 밀림지역이나 내전으로 인해 치안이 극도로 불안해 여행제한지역으로 묶인 곳에 거주하고 있어 이들에 대한 직접적인 원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에 따라 이곳에서 KOICA를 통한 우리 정부의 원조도 사회적 형평성을 높이고 제조업 기반을 강화하는 등 보다 장기적인 방향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김 소장은 "국제사회에서도 '원조 효과성'에서 장기적인 '개발 효과성'으로 무게중심이 옮겨가는 상황에서 콜롬비아의 경우 '확대 재생산'이 가능한 경제 분야에 대한 원조가 주로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중 대표적인 사업이 중소기업 생산경쟁력 강화 사업. 2011년부터 2014년까지 총 300만 달러가 투입되는 사업으로 콜롬비아 전체 민간기업 중 96%에 해당하는 중소기업의 역량을 키워 장기적인 성장으로 이끌기 위한 것이다.
특히 KOICA는 콜롬비아 정부가 클러스터를 통해 중소기업의 생산성을 높이는 마스터플랜을 수립하는 데 도움을 주고 이렇게 수립된 마스터플랜을 바탕으로 보고타, 메데진, 칼리 등 주요 도시에서 시범사업까지를 운영할 계획이다.
"콜롬비아 중소기업 역량 강화는 우리에게도 장기적·무형적인 이익이 있습니다. 특히 지난해 우리와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했기 때문에 콜롬비아 전체의 산업 파이가 커지면 국내 기업의 진출도 유리해질 것입니다."
개발도상국간의 협력인 남남협력 역시 활발히 벌이고 있는 콜롬비아는 우리나라와 중남미 다른 개도국을 잇는 중요한 삼각협력 파트너이기도 하다.
우리가 전기, 컴퓨터, 자동차, 자동화 등 분야에서 콜롬비아에 직업훈련 기술을 전수하면 콜롬비아가 코스타리카, 페루, 볼리비아, 에콰도르 등 중남미의 다른 개도국 관계자들에게 다시 전수하는 식이다.
"이미 선진국과 저개발국의 기술 격차가 있기 때문에 중간수준의 국가를 포함한 삼각협력은 국제사회에서도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문화나 언어적인 측면에서도 강점이 있죠. 같은 언어를 쓰는 중남미 지역의 경우 콜롬비아를 통한 간접 원조가 효과가 클 수 있습니다."
콜롬비아에 대한 우리 정부의 원조는 콜롬비아가 중남미 유일의 6·25 참전국이라는 데 따른 보은과 우호의 의미도 있다.
1천150만 달러를 투입해 내년 완공 예정인 한·콜 우호재활센터가 그 대표적인 사업. 이곳에서는 내전으로 부상한 상이용사들의 사회 적응 프로그램이 운영될 예정이다.
"콜롬비아의 한국전 참전용사들은 자부심도 강하고 모임도 활성화돼 있습니다. 이곳 한인들의 체육대회에 참전용사도 함께할 정도로 한인사회와도 교류가 활발하죠. 우호재활센터는 참전용사만을 직접적인 대상으로 하지는 않지만 그들의 참전에 대한 감사의 의미로 그들이 속한 사회에 기여한다는 측면이 강합니다."
지난해 4월 콜롬비아에 부임한 김 소장은 그전에 몽골, 방글라데시 사무소장을 지내는 등 아시아 지역에서 주로 근무했다.
그는 "콜롬비아의 경우 다른 지역에 비해 경제발전 수준이 높아 자기 의견이 강한 편"이라며 "문화적인 측면에서도 다른 지역보다 더 많은 이해가 요구된다"고 말했다.
현장 경험이 풍부한 ODA 전문가로서 김 소장은 어느 지역에서든 "상대의 눈높이에 맞는 원조"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 사람들의 문화를 존중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어차피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고 진정한 효과를 내려면 그들의 마음을 움직여야 하니까요. '주는 대로 받으라'는 우월적인 입장이 가장 경계해야 할 태도이죠."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07/09 14:27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