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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와의 만남> '신과 함께'로 만화 지평 넓힌 주호민

posted Feb 10,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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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 소재를 재해석…영화·일본 리메이크·뮤지컬·애니 등으로 영역 확장

 

"사람의 죄책감이나 사회모순을 촌스럽지 않게 그리려 다양한 설정 넣어"

 

(서울=연합뉴스) 김영현 기자 = 2010년 1월, '신과 함께'라는 제목의 한 웹툰이 네이버에서 연재되면서 곧바로 국내 만화계를 뒤흔들었다.

소재나 주제가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었다.

 

죽음, 저승, 귀신 등 어두운 이야기인데다 '착하게 살아야한다'는 주제도 상투적이었다. 웹툰을 좋아하는 젊은 층일지라도 쉽게 눈길을 주기 어려운 상황인 셈.

하지만 한 회, 두 회 누적되고 이 웹툰을 접한 독자 사이에 빠르게 소문이 퍼지면서 열광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첫 회인 '저승편' 1회에는 무려 4천500여건의 댓글이 달렸고, 별점을 매긴 네티즌만 2만7천명이 넘었다. '신과 함께'는 '저승편'에 이어 '이승편' ' 신화편'으로 2012년 9월 마무리됐다.

 

연재가 끝나도 인기는 식지 않았다. 누적조회수와 최신조회수에 가중치를 줘서 합산한 네이버웹툰 순위(스토리형 웹툰 부문)에서 지금도 1위다.

온라인에서 유료화로 전환한 뒤 첫 두 달의 매출은 3천500만원이나 됐고, 지금까지 네이버에서 무려 2억3천만원이 넘는 매출을 올렸다.

 

애니북스에서 출간한 책은 '저승편' '이승편' '신화편' 8권 모두 합해 17만권이나 판매됐으며, 영화로도 만들어지고 있다. '만화 왕국'으로 자존심이 대단한 일본에서조차 이례적으로 이 만화를 리메이크해 연재하고 있다.

'신과 함께'는 사람이 사후 49일간 저승에서 심판받는 과정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녹였다.

 

전승 신앙에 따르면 사람이 죽으면 저승시왕(十王) 열 명 중 일곱 명에게 순서대로 나아가 생전에 지은 죄업과 선행을 고한다. 각각 7일씩 심판을 받는데 49재를 지내는 이유도 여기에서 유래됐다.

'신과 함께'는 밋밋하게 살다가 사망한 한 소시민이 저승의 '국선변호사'와 함께 각 심판을 아슬아슬하게 통과하는 과정을 재치있게 그렸다.

 

생전에 남을 위해 쓴 돈의 규모가 클수록 능력 있는 저승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다. 저승사자들은 검은 갓과 두루마기 대신 검은 양복을 깔끔하게 입고 등장한다.

눈물이 많은 막내 저승사자는 "사람 안 죽는 날이 없으니 휴일도 없다"고 투덜거리고, 저승사자들은 일산 대화역에서 출발하는 저승열차로 영혼을 이송한다.

 

저승의 각종 관문을 통과할 때마다 다양한 운송장비들이 등장한다.

평생 남을 위해 산 할머니는 괴물이 가득한 강을 건널 때 최신형 전투함을 타고 건너지만, 조폭은 튜브를 탄 채 독사에게 물어뜯기는 등 곳곳에서 기발한 아이디어가 반짝인다.

 

결국 책은 '죄를 지었으면 죗값을 치르는 게 저승'이라는 다소 평범한 메시지를 준다. 다만 이처럼 단순한 명제를 따뜻하고 유머러스하면서도 감동적인 이야기로 끌어올린 것은 전적으로 작가의 몫이다.

깊은 성찰이 느껴지는 책을 썼지만 저자의 나이는 예상 외로 젊다. 올해 33세인 주호민 씨다.

4년 전 '신과함께'를 쓸 때는 20대에 불과했다.

최근 홍익대 인근 만화카페에서 만난 주 작가는 동글동글한 인상에 둥근 안경 그리고 '빛나는 헤어스타일'이 인상적이었다. 외모만 놓고 본다면 스님이 곧바로 연상되니 종교신화 소재 만화작가로는 '적격'인 셈이다.

 

주 작가는 일찍이 무속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신과 함께'를 그리게 된 결정적 계기다.

KBS 1TV '인간극장'에서 무속인이 된 연예인의 이야기를 접하고 만화로 그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재미있게 그릴 자신이 없다고 판단해 무속인이 모시는 신으로 눈을 돌렸고 한국 신화까지 파고 들었다.

 

주 작가는 "저승편은 자연스럽게 한국인이 보편적으로 느끼는 죄책감이나 그런 죄를 짓게 하는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다루게 됐는데 그게 사람들의 공감을 얻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지옥이야기이니 권선징악이라는 주제를 피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며 "이 소재를 촌스럽지 않게 다루려고 여러 설정을 넣었다"고 덧붙였다.

 

'이승편'에는 가택신(家宅神)이 등장한다. 거주 가족의 건강과 안녕을 지키며 저승사자가 찾아오면 나서서 싸우기도 한다.

가택신을 내세운 데는 '용산참사'가 도화선이 됐다. 평소 재개발 문제에 관심이 많던 차에 용산참사가 터지자 가택신과 강제이주를 엮어 만화로 그린 것이다.

 

'신과 함께'는 영화 '만추'의 김태용 감독 연출로 영화로도 만들어지고 있다. 2015년 개봉 예정이며 뮤지컬, 애니메이션 등에서도 제의가 이어지고 있다.

일본 리메이크는 2011년부터 '영간간'에 연재되고 있는데 3월 완결되며 올해 안에 한글판으로 출간된다.

주 작가는 "원작에 없는 여자 검사, 저승 가이드 등이 나오고 그림체도 더 세련돼져 흥미롭다"며 "다만 원작에 강했던 한국적 정서가 좀 사라져 아쉽다"고 말했다.

 

 

 

전통 이야기를 독특한 감각으로 빚어내는데 남다른 재능을 드러낸 주 작가는 최근 민담을 소재로 '제비원 이야기'라는 웹툰 연재를 시작했다. 경상북도문화콘텐츠진흥원의 후원으로 경북 안동지역 민담과 전설을 각색했다.

주 작가는 "'신과 함께' 이후 전통적 콘텐츠를 재해석하는 재미를 알게 됐다"며 "내 상상력으로 개별 신화를 연결하는 과정이 재미있다"고 설명했다.

 

강풀, 윤태호 등과 함께 국내에서 손꼽히는 웹툰 만화가가 됐지만 주 작가의 초년은 상당히 고달팠다.

'맹꽁이서당' '아기공룡 둘리' 등 명랑만화를 즐겨보며 자란 그는 애니메이션과에 진학했다. 그런데 휴학하고 군대를 다녀왔더니 과가 없어지는 황당한 상황을 겪었다.

 

그는 "2000년대 초에 우후죽순처럼 애니메이션과가 생기고 없어졌다"며 "아세아항공직업전문학교라는 곳을 다녔는데 과가 없어져 중퇴하고 방황했다"고 돌아봤다.

2005년 군대이야기를 소재로 한 첫 작품 '짬'을 연재하면서 만화가가 돼야겠다고 결심했다.

 

"그 책으로 독자만화대상 신인상을 받았어요. 독자가 자체적으로 뽑으며 작가에게는 통보도 하지 않는 상이었어요. 그런데 저에게는 정말 의미가 있었어요. 개근상 말고 제 인생에서 주도적으로 무언가를 해서 상을 받아본 게 처음이었거든요."

와중에 네이버로부터 연재해보는 게 어떠냐는 제안이 들어왔다.

 

주 작가는 2008~2009년 젊은이들의 취업 도전기를 담은 '무한동력', 지난해 7월부터 지난달까지 연재한 육아일기 형태의 '셋이서 쑥' 등으로 이야기의 지평을 넓혀갔다.

대부분은 자전적 이야기다.

주 작가는 "자전적 이야기는 치유의 기능이 있다"며 "보는 사람이 쉽게 공감하고 지나간 기억을 곱씹으면서 옛날 일을 반성도 하게 된다"고 말했다.

 

웹툰이 인기를 얻으면서 관련 시장도 상당히 성장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지금처럼 사람들이 만화를 많이 보는 시절이 거의 없을 정도다. 하지만 만화가의 처우는 여전히 크게 개선되지 않은 게 현실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아직 원고료가 과거 수준에 머물고 있다"며 "네이버는 유료 수익 창구를 만들고 있지만 다른 곳은 이런 시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또 "만화의 양이 훨씬 더 많아지고 조금 더 많은 연재처가 있어야 한다"며 "전문가를 소재로 한 만화도 더 나와야 우리 만화가 더욱 발전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콘텐츠를 제공한 이가 정당한 대가를 받는 게 당연하다는 판단에 콘텐츠 유료화에 앞장서고 있다. 완결된 웹툰을 두세 달 뒤부터 유료화하는 작업이다.

 

그런데 욕을 많이 먹는다. 공짜로 만화를 즐기던 독자들의 저항이 만만치 않고, 무료라도 좋으니 만화를 알리는 게 더 시급한 신인들은 유료화에 소극적이다.

주 작가는 "원고료는 제작비 개념이라 화실 운영 등으로 다 나가버리게 되니 진짜 돈은 콘텐츠를 팔아서 벌어야 한다"며 "무료로 노래를 듣고 공짜 영상을 즐기던 사람들이 이제는 결제한 뒤 콘텐츠를 사고 있듯 만화 유료화 문제도 차차 시간이 해결해 주리라고 믿는다"고 기대했다.

 

만화가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강풀, 윤태호, 양영순 등이 만든 회사 누룩미디어에 '영입 1호 작가'로 스카우트돼 몸담고 있다. 누룩미디어는 만화가들이 창작에 집중할 수 있게끔 저작권 관리, 해외 진출 등을 처리해주며 지금은 소속 작가 수가 20~30명으로 늘었다.

 

데뷔 후 줄곧 창작에 매달려온 그는 '제비원 이야기'를 끝으로 당분간 쉬기로 했다. 여행 등으로 재충전하면서 차기작을 구상할 생각이다.

"지금까지 제 만화를 돌아보면 결국 인간의 관혼상제를 그렸던 것 같아요. 조금 더 연구하고 고민해서 제 작품을 시간 순서대로 늘어놓았을 때 한 사람의 일생을 볼 수 있는 로드맵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cool@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4/02/10 07:00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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