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 IT·금융 융합시대 규제 패러다임 바꾼다
금융당국이 규제 패러다임을 확 바꾼다. IT(정보기술)와 금융이 융합하는 시대에 사전 규제 방식으로는 시장의 경향을 따라가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위험을 허용하지 않은 정책(No Risk Policy)에서 위험을 관리하는 정책(Risk Management Policy)으로 대대적인 전환을 하는 셈이다. 하지만 규제 방식의 변경으로 발생할 수 있는 금융 보안 문제에 대해선 아직 확실한 대책을 강구한 것은 아니다. 이에 금융당국은 진입 규제는 대폭 완화하되 보안 규제는 점차적으로 보완한다는 방침이다.
금융위원회가 27일 발표한 ‘ITㆍ금융 융합 지원방안’의 핵심 내용은 사전 규제를 사후 책임으로 바꾸고, 공인인증서 사용 의무를 철폐하는 등 기술 중립성을 통해 규제 패러다임을 바꾼다는 것이다. 또 전자 지급 수단 이용 한도가 늘어나고 전자금융업에 대한 진입장벽을 낮춰 핀테크 산업을 육성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핀테크 관련 사전 규제 모두 폐지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보안성 심의와 인정방법 평가제도 등 사전 규제를 모두 폐지하겠다는 부분이다. 지금까지 핀테크 스타트업 업체들은 2중, 3중 보안 규제 때문에 신기술을 개발해도 서비스를 제때 시장에 내놓기 어려웠다. 실제로 핀테크의 선두주자로 알려진 카카오의 경우 뱅크월렛카카오 서비스를 론칭하기 위해 관련 심의를 받느라 6개월 이상 시간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핀테크의 규제 환경이 바뀌면서 핀테크 사업자들이 신기술 개발 후 적절한 시기에 서비스를 시장에 선보일 수 있게 됐다.
그렇다고 자체 보안점검 등의 절차가 생략돼서는 안된다. 또 금융회사와의 제휴 서비스를 위해서는 소규모 핀테크 회사는 금융감독원 대신 민간에서 기술평가를 받아야 하는 숙제가 있다. 다만 당국은 금융보안원(가칭) 등이 이런 서비스를 대행해 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지만, 아직 보안원 설립이 되지 않은데다 관련 시스템을 개발하는데 다소 시간일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공인인증서 사용 의무 폐지
당국은 또 이번 정책발표를 통해 기술 중립성 원칙을 명확히 했다. 즉 공인인증서나 액티브X와 같은 특정 기술의 사용 의무를 폐지하는 것이다. 또 정보보호제품의 국가기관 인증제품 사용 의무도 모두 폐지된다. 물론 공인인증서 사용 의무를 폐지한다고 해서 당장 내일부터 공인인증서 없이 인터넷뱅킹에서 계좌이체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체 기술이 마련되기 전까지는 은행들이 보안을 위해 공인인증서를 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5월 지급결제 시 공인인증서 의무 사용을 폐지했을 때도 카드사들은 30만원 이상 결제 고객에 한해 공인인증서 사용을 유지해 왔다.
하지만 공인인증서를 대신한 새로운 기술 개발이 가능해졌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다. 업계에서는 ‘스마트 시계’나 ‘스마트 안경’과 같은 웨어러블(Wearable) 기기를 통해 지문인식이나 홍채인식 등으로 간단히 자금이체와 결제를 할 수 있는 서비스가 조만간 개발돼 보편화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 금융사고가 발생했을 때 IT 회사도 공동 책임을 지도록 하고, 전자 금융업자의 책임이행 보험 최저한도를 높인 것도 사전 규제 대신 사후 관리 책임을 높인 정책 중 하나로 꼽힌다.
전자금융업 진입 규제 대폭 완화
사후 책임이 늘어나는 대신 전자금융업에 대한 진입 장벽은 대폭 낮아진다. 우선 금융당국은 전자금융거래법상 최소자본금 요건은 50%가량 낮추기로 했다. 현재 관련법상 최소 자본금 요건은 전자화폐발행업종 50억원, 전자자금이체업종 30억원, 선ㆍ직불 업종 20억원, 전자지급결제대행(PG)사 10억원, 전자고지결제 업종 5억원, 결제대금예치 업종 10억원 등이다. 당국은 이같은 분류를 3~4개로 합치고 자본금 요건도 절반으로 줄일 방침이다.
특히 선불업, PG, 결제대금예치업에 대해서는 소규모 전자금융업 등록단위를 신설해 제한적 범위의 영업을 허용할 방침이다. 만약 선불발행잔액 30억원, 분기별 결제액 10억원 미만인 사업자를 소규모 전자금융업자로 규정하고 이들의 등록요건을 자본금 1억원 이하로 대폭 낮춰주는 것이다. 금융투자업권의 선불업 진출도 허용돼 이제는 증권사도 선불형 교통카드 등을 발행 및 관리를 할 수 있게 된다. 금융위 관계자는 “상반기 중 법 개정안을 제출하고, 하반기에 하위 법령을 개정할 것”이라면서 “인터넷전문은행이나 전자금융업 규율 재설계 등 부분은 특히 신중을 기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권맑은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