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재복 대기자]
베트남전에 참전했다가 고엽제 후유증으로 고생하는 이들의 친목 도모와 상부상조·자활
등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고엽제전우회'가 각종 정치 현안 관련 집회를 주최하며 회원들을 동원한 정황이 내부 공문(사진)을 통해 드러났다.
국가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는 고엽제전우회는 관련 법에 따라 정치활동이 금지돼 있다. 하지만 이들은 세월호 '맞불 홍보', 교육감 직선제 폐지
운동 등에 수시로 동원되는가 하면, '육영수 여사 40주기 추모식' 등의 행사에도 지시를 받고 참석했다.
김기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1일 고엽제전우회 서울지부가 각 지회에 내려보낸 공문을
공개했다. 서울지부는 7월25일 '세월호 관련 업무 지시'를 통해 "유가족을 돕는다는 명분으로 해서는 안 될 일을 야권 및 특정 집단이 요구하며
국회를 마비시키고 있다. 또 국민 혈세로 복지포퓰리즘을 일으켜 국가를 어렵게 하고 있다. 관련 자료를 배포하니 회원에게 배부하고 국민들에게
올바른 사건의 진상을 알려달라"고 했다.
공문에 첨부한 관련
자료는 한 인터넷매체에 실린 기사로 "세월호 특별법의 골자는 사망자 전원 의사자 처리, 공무원시험 가산점 주기 등이다. 이 법이 통과되면 재벌
부럽지 않은 특권층이 생겨난다. 종북 좌파의 반국가행위에 다름 아니다" 등 사실과 다른 내용들이 많다.
6·4 지방선거에서 진보 교육감들이 대거 당선되자, 서울지부는 7월에 '교육감 직선제 폐지촉구
서명운동 지시' 공문을 내려보냈다. 공문은 "직선제로 지지율 33% 전후에 불과한 좌파 인물을 대거 당선시키고 학생들에게 이념 교육을 주입하는
망국적 교육의 원흉이 됐다. 또 전교조 출신 교육감이 당선되는 등 폐해가 초래됐다"며 직선제 폐지 촉구 운동에 적극 협조를 지시했다. 공문은
"서명록은 한 줄도 빠짐없이 채워서 7월29일까지 지부에 도착시켜 달라"고 당부했다.
서울지부는 또 '종북세력 척결' 등을 이유로 시국사건 집회를 수시로 열며, '7월28일 오후 1시
서울중앙지법 앞. 지회장 포함 20명. 복장은 행사복' 등 지회별로 '동원'해야 할 인원 수와 옷차림까지 명시해 내려보냈다. 8월에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의 내란음모 사건 항소심에서 일부 무죄가 선고됐을 때는 서울 서초동 법원청사 근처에서 사법부 규탄대회를 일주일 내내 개최한다는
공문을 보냈다. 이 공문에서는 '서울·경기지부 각 500명. 지회장 포함 20명. 13개 지부×120=1560명. 합계 2560명. 복장 군복'
등이 적혀 있다. 또 대전·충남북·광주·전남북·부산·경남·울산·인천·강원·대구·경북지부에서 각 100명씩 조를 짜 규탄대회에 참석하기로 했다.
규탄대회 일정은 오는 12월 말까지 짜여져 있다.
고엽제전우회는
또 지난 8월 육영수씨 40주기 추모식(8월15일)을 앞두고 회장단·시도지부장·지회장 등 300여명에게 현충원 추모식 참석을 지시하기도 했다.
이들은 집회 등에 참석하면서 각 지방자치단체와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등에서
회원들의 병원 이송을 위해 제공하거나 자체 구입한 구급차(스타렉스 승합차 203대)를 동원했다.
이에 대해 박근규 고엽제전우회 상임부회장은 "이적단체와 종북좌파 세력들이 있다 보니 우리가 안보
차원에서 하는 것이지 정치 활동은 아니다. 세월호 문제 역시 순수 유가족이 아닌,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정치 활동을
차단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또 "집회 참여는 자유 의사로 하는 것이지 강요하는 것은 없다"고 해명했다.
국가보훈처는 김 의원실에 제출한 답변자료에서 "정치활동으로 오인될 소지들은 자제해 나가도록
지도하겠다"고 했다. 김 의원은 "고엽제전우회가 회원들을 정치 개입 소지가 있는 집회에 조직적으로 동원하는 것은 명백한 위법이다. 보훈처의
관리감독 문제를 국정감사에서 추궁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