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서받은 朴대통령, 과거사 문제선행되야
최근 꽉 막혔던 한일관계에 '해빙' 기운이 퍼지고 있는 가운데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19일 박근혜 대통령에게 친서를 통해 만남을 제의함에 따라 주목된다. 아베 총리는 이날 2020년 도쿄올림픽조직위원장 자격으로 인천아시안게임 개막식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모리 요시로(森喜朗) 전 일본 총리를 통해 박 대통령에게 "오는 가을에 개최될 국제회의의 계기에 만날 수 있기를 고대한다"고 쓰인 친서를 전달했다.
아베가 언급한 가을 국제회의는 다음 달 이탈리아에서 열리는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11월 중국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및 호주 G20(주요20개국) 정상회의 등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 언론은 이 가운데 APEC 정상회의를 유력한 양자 정상회담 장소로 꼽았다. 그동안 아베 총리는 경색된 한일관계 개선이나 한일정상회담 개최 필요성을 꾸준히 언급해왔지만, 자신 명의의 친서를 통해 박 대통령에게 회담 개최를 제의한 것은 처음이다.
연합뉴스 사진캡쳐
이를 두고 외교가에서는 내년이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인데다 오는 24일 열리는 유엔총회에서 양국 외교장관 회담 성사 가능성이 점쳐지는 등 최근 양국관계 개선 흐름에 맞춰 아베 총리가 매우 적극적인 '러브콜'을 보낸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특히 이날 대표적인 지한파 원로 정치인 가운데 한 명인 모리 전 총리를 통해 박 대통령을 예방하게 하고 친서를 들려 보낸 것은 올가을 잇따라 개최되는 국제회의에서의 한일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됐다.
모리 전 총리는 방한에 앞서 지난 16일 일본에서 유흥수 신임 주일대사를 만나 한일관계 개선과 관련한 물밑 대화를 나눴고, 이 자리에서 유 대사가 이날 모리 전 총리의 청와대 예방을 주선했다는 얘기도 있어 양국 간에 한일정상회담 성사 분위기가 어느 정도 무르익은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이날 아베 총리가 친서에서 우리 정부가 꾸준히 요구해온 정상회담 개최 전제조건, 즉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아 회담 성사가 그리 쉽지만은 않다는 관측도 여전하다.
박 대통령도 모리 전 총리에게 한일 관계 개선 필요성을 언급하면서도 "이를 위해 과거사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진정성 있는 노력이 선행될 필요가 있으며, 특히 55분 밖에 남아있지 않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생존해 계신 동안 명예를 회복시켜 드려 한일관계가 잘 발전될 수 있도록 모리 전 총리의 역할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특히 "과거 한일간 정상회담을 개최한 후 양국관계가 잘 풀리기 보다 오히려 후퇴하는 상황도 있었음을 교훈으로 삼아 사전에 잘 준비를 해나갈 필요성이 있다"며 과거사 문제 해결이 선행돼야 양국간 신뢰가 쌓일 수 있고, 이를 통해 관계 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는 원칙을 강조했다. 이는 군 위안부 문제 해결 없이는 정상회담도 할 수 없다는 그동안의 입장을 견지한 것으로 풀이된다.
아베의 '친서 러브콜'에 대해 한일정상회담 성사를 위해 그동안 줄곧 강조해온 전제조건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며 일본 정부에 재차 공을 넘긴 것이다. 이 때문에 한일정상회담이 성사될지 여부는 일본이 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얼마나 성의있는 조치를 내놓는지에 달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날 일본 도쿄에서 열린 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한일 국장급 협의가 열렸고, 우리 측이 앞선 만남에서 '4차 협의 때는 일본이 결자해지 차원에서 군 위안부 문제의 구체적인 해법을 제시하라'고 촉구한 것으로 알려져 협의 결과가 주목된다. 여기에 더해 매년 10월 중순 열리는 야스쿠니 신사의 추계대제에 아베 총리가 참배를 할지, 아니면 공물을 보낼지도 변수로 꼽힌다. 태평양전쟁 A급전범이 합사돼 있는 야스쿠니 신사는 일제 군국주의의 상징으로, 군위안부 문제와 연결고리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권맑은샘 기자 kbc7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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