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대법판결 무시 '미신고 해산명령' 남발
세월호 추모 집회마다 발동… “정권 보호 악용” 비판
[류재복 대기자]
경찰이 세월호 참사 가족과 일반 시민의 평화적인 추모 집회에 대해 '미신고집회'라는 이유로 해산명령을 남발하고 있다. 최고 사법기관인 대법원을 포함한 여러 법원의 "평화로운 집회·시위를 막아선 안된다"는 판결을 무시하는 것이다. 경찰이 정권 보호를 위해 '미신고집회 해산명령'을 악용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경찰은 지난 2일 청와대 앞을 목적지로 삼은 세월호 가족들의 '삼보일배'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원천 차단했다. 평화적인 행사였다. 가족들은 청와대를 향해 절만 했을 뿐, 구호도 외치지 않았고, 깃발도 들지 않았다. 하지만 경찰은 3차례 경고방송을 내보냈다. 경찰은 "미신고집회를 하고 있으니 집회·시위법에 따라 지금 즉시 해산하라"고 명령했다.가족들은 청와대 근처에도 가지 못한 채 경찰 병력에 막혀 4시간 동안 제자리에서 절만 해야 했다.
세월호특별법 제정 촉구 국민 서명지도 전달하지 못했다.경찰은 지난 5~6월 세월호 참사 추모 촛불집회마다 미신고집회 해산명령을 발동했다. 해산명령 경고방송을 내보내며 집회 이후 시민들의 평화적인 행진도 막았다. 두 달간 7명을 구속하고, 348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평화적인 침묵시위를 하던 '가만히 있으라' 시위 참가자들은 광화문 일대 거리를 행진하다 무더기로 연행됐다.
'토끼몰이'식 진압 작전을 벌인 경찰은 길 가던 시민, 고교생까지 끌고갔다.강신명 경찰청장이 서울청장에 재임할 때다. 그는 지휘 책임자로서 시민사회 비판을 받았다.경찰의 해산명령 발동은 사법기관 판례들과 전면 배치된다. 대법원은 지난해 판례에서 "미신고집회라도 공공질서에 명백한 위험이 없다면 해산명령에 응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처벌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사전에 신고하지 않아도 공공질서를 명백히 해치지 않는 평화로운 집회는 최대한 폭넓게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다.서울 지역의 한 부장판사도 "아무런 폭력이나 물리력이 동원되지 않고, 집회 참가자들이 인도를 벗어나지 않아 교통 방해도 없는 경우라면 단순히 미신고집회라는 이유를 들어 해산명령을 한 것은 적법하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위법한 해산명령에 응하지 않은 행위 역시 죄가 되지 않는다는 판례가 무수히 많다"고 했다.헌법재판소 관계자는 "헌법은 집회·시위의 신고제만 규정할 뿐, 허가제는 금지하고 있다"며 "미신고집회 해산명령은 경찰이 법원 판단도 무시한 채 자기 입맛대로 법 조항을 해석한 것으로 사실상 집회를 허가제로 운영하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미신고집회 해산명령으로 세월호 집회·시위를 차단하는 이유에 대해 명확한 답을 내놓지 않고 있다.한 경찰 관계자는 "청와대 인근이라 특별경비구역이라는 점을 감안한 행정적 조치로 볼 수 있지 않겠냐"고 말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결국 경찰이 정권을 보호하기 위해 '틀린' 법 해석을 갖다 쓰고 있는 꼴"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