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래시장 대책에 서울 상인들 분통 고조
[류재복 대기자]
서울시가 재래시장을 활성화하겠다는 취지로 시장에서 지역 특산물을 판매하는 행사에 대해 정작 정책 수혜자인 상인들이 속앓이를 하고 있다.상인들은 행사가 재래시장을 돕기는커녕 이미지를 실추시키기만 한다는 입장이지만 '슈퍼갑'인 서울시의 눈치만 보고 있다.
어떻게 된 사연일까.3일 서울시와 복수의 전통시장 상인회 등에 따르면 서울시는 작년부터 대형마트가 쉬는 매월 마지막 주 일요일 44곳의 재래시장에서 지역 특산물을 판매하는 '전통시장 가는 날'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행사의 취지는 고품질의 특산물을 재래시장들이 일제히 공동구매해 시중 가격보다 10∼30% 저렴한 가격에 팔아 시민들이 전통시장을 찾게 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 1월 판매한 영광굴비(시장당 100두름)와 5월 안동 간고등어(150손), 지난달 정남진 수미 감자(70박스)에 대해 시장 상인들은 품질이 형편없다며 분통을 터트리고 있다.가장 압권은 안동 간고등어였다.이 제품은 포장에 제조일과 유통기한, 중량표시도 없었고 제철 고등어도 아니었다.
시장 상인들의 법률 지원을 하는 시민단체인 '서민민생대책위원회'가 국립수산물품질관리원에 샘플 분석을 의뢰한 결과 3년 전인 2011년 부산에서 냉동처리된 고등어로 밝혀졌다.논란은 안동시로까지 번졌고, 안동시가 해당 업체를 식품위생법 위반 혐의로 고발해 경찰은 이 업체를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또 굴비에서는 이상한 냄새가 났고 감자는 박스 곳곳에서 썩은 감자가 섞여 있었다는 증언이 나오고 있다.
한 상인은 "감자의 20∼30%는 썩었고 분류가 되지 않아 크기가 일정하지도 않았다"며 "어쩔 수 없이 내 점포에 있던 다른 감자로 대체해 팔기도 했다"고 말했다.상인들이 특산물을 팔아 얻은 중간 마진도 없다.서울시가 서울 재래시장 상인회 대표들의 모임인 '서울상인연합회'와 함께 지역 특산물 업자를 선정해 제품을 재래시장에 배달시키면, 상인들은 서울시가 정해준 가격에 물건을 팔고 이틀 안에 대금을 연합회에 완납해야 한다.한마디로 상인들은 제품을 팔아 주기만 하는 것이다. 제품이 남으면 상인회 부담으로 모자란 금액을 채워야 한다.
재래시장이 행사에 참여하며 서울시에서 받는 지원금은 분기에 250만원에 불과하다.이마저도 전단 등 행사 홍보물 제작과 판촉용 5천원짜리 재래시장 상품권을 구입하는 데에만 쓸 수 있다.결국 상인들이 챙길 수 있는 것은 상품권인데, 이것도 상인들의 가게 판촉에 쓰기가 여의치 않다.행사에서 팔린 지역 특산물은 서울시가 지역에서 직구매하고 운송비용까지 부담했음에도 오히려 일반 시장 소매가보다 비싼 탓에 상품권을 특산물 판촉용으로 써야 하기 때문이다.
5월 판매된 간고등어는 한 손에 7천원이었다. 하지만 당시 이마트에서 판매된 400g짜리 간고등어는 두 손이 7천500원이었다.지난달 판 감자는 10㎏에 1만2천원이었다.한 상인은 "당시 시장에서 팔린 멀쩡한 감자도 10㎏에 8천∼9천원이었다"며 "어떻게 직구매 가격이 동네 시장 소매가격보다 높을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안동 간고등어는 문제가 됐지만 다른 제품에 하자가 있다는 소비자 신고는 한 건도 없었다"며 "서울상인연합회가 공동구매처를 결정하는데 연합회에 반감을 가진 일부 상인들이 불만을 제기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한 상인회 대표는 "불량식품은 4대 악으로 규정하고 단속하는데 서울시가 유통기한 표시도 없는 형편 없는 제품을 '강매'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너무 분통이 터지지만 서울시에 밉보이면 각종 지원을 받는 게 어려워져 숨죽이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