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의 질긴 인연이 권력의 부침 속에서 재조명되는 순간이었다. 두 정치인 모두 지난 정부에서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실력자였다. 이 전 의원은 6선의 중진인 데다 국회 부의장까지 지내 국회에서도 입지가 탄탄했다. 게다가 이 전 대통령의 친형이어서 '만사형통'(모든 것은 형으로 통한다)이라는 얘기가 나올 만큼 막강한 권력을 누렸다.
17대 국회때 초선이던 정 의원도 당에 아무런 뿌리가 없던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 대통령 만들기에 나섰던 거의 유일한 인물이었다. 마침내 2007년 정권 교체에 성공하고 나서는 '왕의 남자'로 통하며 국정을 쥐락펴락하는 듯했다. 서로 나눠 가질 수 없는 권력의 속성상 양측간 '암투'도 치열했다. 정 의원은 대통령직 인수위를 꾸리고 조각하는 과정에서 깊숙이 개입했지만 얼마 되지 않아 튕겨져나갔다.
그러자 정 의원은 2008년 6월 이 전 의원과 그의 보좌관 출신인 박영준 당시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을 겨냥해 '권력 사유화' 발언을 하며 권부를 발칵 뒤집어 놨다. 이 전 의원과 정 의원의 악연은 그해 제18대 총선 공천 과정에서도 불거졌다. 당내 이 전 부의장의 불출마를 요구하는 '55인 파동'의 선봉에는 정 의원이 섰다.
이명박 정권이 끝나가면서 권력을 향유했던 이 전 의원과 정 의원의 말로는 모두 좋지 않았다. 정권 창출의 '동지'였다가 '정적'으로 갈라선 두 사람은 공교롭게도 '저축은행 금품수수' 사건에 함께 연루돼 기소되면서 영어의 몸이 됐다. 박근혜 정부 출범 직전인 2013년 1월 구속 기소 중이던 이 전 의원에게는 실형 2년이 내려지고, 불구속 기소 상태였던 정 의원은 법정 구속된 것이다.
한편, 정 의원이 무죄 확정 판결을 받고 나면 18대 국회때부터 관심을 가져왔던 외국어고 개혁 등을 포함한 개혁적 목소리를 내면서 적극적인 정치 행보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쇄신파의 중심축으로 부상할 것이라는 예상도 있다. 정 의원측 관계자는 "재판 절차가 모두 끝난 게 아니기 때문에 계속 준비할 것"이라면서 "그동안 조용히 의정활동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