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택배 15년 착취 못 참겠다"
대리점주 서울중앙지법에 15억원 소송
[류재복 대기자]
국내 2위 택배회사인 현대로지스틱스(옛 현대택배) 옛 대리점주들이 "본사가 일방적으로 삭감한 운송수수료를 달라"며 서울중앙지법에 15억원대의 소송을 냈다. '남양유업 밀어내기' 사태로 불거졌던 본사와 대리점주들 간의 '갑·을 전쟁'이 택배업계로 확대되고 있다.
"고통 분담하자더니 수년째 착취"
소송자 대표 이모(53)씨 등은 25일 현대로지스틱스를 상대로 15억5034만9517원의 부당이득금 및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서울중앙지법에 냈다. 1996년부터 2012년 사이 서울, 대구, 제주 등지에서 대리점을 운영했던 이번 소송 참여자들은 "사측이 98년 1월 외환위기의 고통을 분담하자며 대리점에 돌아가는 수수료를 일방적으로 인하했다"고 주장했다. 보통 택배 건당 25∼30%였던 운송수수료가 회사의 '가격 후려치기'로 평균 2∼3% 포인트가량 인하됐다는 것이다.
비용을 빼고 나면 남는 게 없는 경우도 있었다. 본사와 맺는 위탁계약서에 '사측이 일방적으로 운송수수료를 조정할 수 있다'는 조항이 들어 있어 대리점주는 '울며 겨자 먹기'로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2005년 대리점주 4명이 이 위탁계약서가 약관규제법에 위배된다며 공정위에 제소했지만 사측은 "수수료를 일방적으로 조정하지 않겠다"며 자진시정해 공정위 심리가 종료됐다. 이씨는 "사측은 운송수수료를 강제하는 부분만 시정했을 뿐 처우는 나아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앞서 2003∼2008년에 사측과 일부 대리점주는 미지급 운송수수료를 둘러싸고 4건의 소송을 주고받았다. 이때 법원은 '98년 1월부터 재계약 체결 전'까지의 수수료만 지급토록 판결했다. 사측과 대리점은 통상 2년마다 재계약을 하는데 이를 양측 간 '합의'로 인정했기 때문이다.그러나 이번 소송에 참여한 대리점주 출신들은 98년부터 재계약 이후 퇴직 전까지 받지 못한 수수료를 모두 사측이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당시 사측의 보복이 두려워 대응을 못하다가 퇴직한 이후에야 힘을 모아 소송을 제기했다"고 말했다.소송을 맡은 오창훈 변호사는 "갑의 횡포 아래서 맺은 재계약을 공정한 합의로 보기 어렵다"며 "이에 따라 소송액을 정했다"고 밝혔다. 현대로지스틱스 관계자는 "국내 택배시장 단가 하락의 여파로 대리점과 택배기사 인력난이 지속되는 악순환이 반복돼 시장 자체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라며 "일부 대리점주들의 주장일 뿐 대리점에 불리한 수수료 변경은 없었다"고 해명했다.
'롱런' 대리점 없는 이유는
대리점주들은 사측의 '갑질'이 계약서 밖에서도 계속됐다고 주장했다. 재계약 시에는 사측이 신규 사업자와 경쟁을 붙여 단가 인하를 유도하기도 했다. 한때 500여 대리점 가운데 매출 1위를 차지하기도 한 이씨는 "재계약을 할 때마다 본사는 '사장님 아니어도 대리점 하려는 사람이 줄을 섰다'는 식의 협박으로 수수료를 조금씩 낮췄다"며 "겉으로는 매출이 좋아 보이지만 실수익은 좋지 않았는데 내부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이 현혹됐다"고 말했다.그러다 보니 장기간 영업을 계속할 수 있는 대리점은 거의 없었다.
오 변호사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으로 전체 688개 대리점의 65%가 영업 3년이 되지 않은 대리점이며 5년을 못 넘긴 곳도 80%나 됐다.수수료는 내려가고 유류비·인건비는 올라가자 대리점 운영은 점점 힘들어졌다. 그러다 보니 경영난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대리점주가 잇따랐다. 96년부터 광주의 한 영업소를 운영했던 정모 소장은 2004년 경영난으로 중국 도피 끝에 자살했다. 2002년에는 경기도의 한 대리점주 아내가, 2006년에도 경기도의 다른 대리점주가 경영난을 이유로 목숨을 끊었다.
2012년에는 경영난으로 '투잡'을 뛰던 경남의 한 대리점주가 새벽 배송을 하다 과로로 인한 교통사고로 사망했다.소송자 대표 이씨는 "지금도 피해가 계속되고 있지만 본사의 보복이 두려워 함부로 나서지 못하는 대리점주가 많다"며 "이번 소송에는 퇴직자들만 참여했지만 법원 판결이 나면 현직 대리점주들도 소송을 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