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이슬기 기자 = 전직 버스기사 이모(67)씨는 서울의 모 버스회사에서 25년간 일하다 2009년 퇴직했다.
퇴직 후 먹고 살 일이 막막했던 이씨는 일용직을 전전하다 버스 기사 시절 경험을 떠올렸다. 버스 안에서 안전사고가 발생해 사고·보험 처리를 하게 되면 해당 버스기사의 무사고 경력도 깨지고 징계도 받는 상황이 머리를 스쳤다.
이씨는 이 점에 착안해 달리는 버스 안에서 일부러 넘어져 버스 기사로부터 치료비를 뜯어내기로 '작심'했다.
이씨는 2012년 4월 19일 오전 8시께 성동구 왕십리로 소재 코스모타워 시내버스정류장 앞에서 권모(59)씨가 몰던 263번 시내버스에 올라탔다.
버스는 정상적으로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으나, 이씨는 버스에서 돌연 구르듯이 넘어졌다. 무릎이 아프다는 표정을 짓고 다리를 주무르면서 한동안 일어나지 않았다.
놀란 승객 두어 명이 다가와 부축하자 이씨는 본색을 드러내며 "어떻게 할거냐. 경찰서에 사고 접수하겠다"며 버스기사 권씨를 윽박질렀다.
결국 치료비 명목으로 15만원을 뜯어내는 데 성공했다.
이씨는 이처럼 서울 성동구와 인천 등지에서 달리는 버스 안에서 고의로 넘어지는 수법으로 버스기사를 협박해 2012년 4월부터 최근까지 모두 11차례에 걸쳐 230여만 원을 받아냈다.
이씨의 반복된 범행은 버스 내 CCTV에 적나라하게 찍히면서 덜미를 잡혔다.
경찰 관계자는 "사고 접수를 하면 기사들이 회사에서 징계처분을 받거나 수당을 못 탈뿐 아니라 아직도 어렵기 때문에 치료비를 주고 쉽게 합의한다는 사실을 악용한 범행"이라며 "인근 마을버스 기사를 상대로 추가 범행이 있는지 더 수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성동경찰서는 이씨를 상습공갈 혐의로 14일 구속했다.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4/03/14 12:06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