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신호경 기자 = 대한의사협회(의협)가 원격의료 도입과 낮은 수가(의료서비스 대가) 등 정부 의료정책 전반에 반발하며 강행한 10일 집단휴진이 다행히 큰 피해와 혼란없이 마무리됐다.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에 속한 의사들의 호응이 거의 없었던데다, 동네 의원급의 휴진 참여율조차 20% 남짓(정부 집계)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24~29일로 예고된 2차 집단휴진에는 응급실 인원 등 필수 의료인력까지 참여할 것으로 알려져 자칫 2000년 '의약분업' 사태 이후 14년만에 '의료대란'이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파국이 현실이 되면 정부나 의협 모두 "국민 건강을 외면한 채 힘 겨루기만 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운 만큼, 남은 10여일동안 적극적으로 접촉을 시도하며 대화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 정부, 원격의료법안 국무회의 상정 '보류'…1차 휴진기관 선별 처벌도 검토
6월 지방선거를 앞둔 정부와 여당 입장에서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의료서비스가 마비되는 사태는 반드시 피해야할 최악의 시나리오다. 따라서 정부도 이번 집단 휴진 사태와 관련, "법에 따른 엄중한 대응"을 강조하면서도 협상과 대화의 여지를 완전히 거두지 않는 분위기이다.
일단 정부는 이번 의-정 충돌의 주요 배경 중 하나인 원격의료 도입 관련 법안 처리를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정부는 지난 6일 차관회의에서 원격의료를 허용하는 내용의 의료법 개정안을 통과시켰고, 당초 일정대로라면 11일 국무회의에 상정·의결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원격의료 도입에 반대하는 의협의 집단휴진이 10일 강행되는 등 논란이 커지자 현 시점에서 무리하게 법 개정을 밀어붙이지 않고 속도 조절에 나선 것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상정이 무산되거나 무기한 연기된 것은 아니고, 적어도 이번 주에 서둘러 처리하지는 않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적어도 2차 집단휴진 전까지 정부가 의료법 개정안 처리를 강행할 확률은 매우 낮은 상황이다.
10일 1차 집단 휴진에 참여한 의원들에 대한 15일간 업무정지 등 행정처분 범위도 사전 경고 당시와 달리 축소될 전망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2차 집단 휴진이나 향후 정부와 의협간 대화 가능성 등까지 생각하면 과연 1차 휴진 의원들을 모두 행정처분 대상으로 삼는 것이 바람직한지 정부 안에서도 여러 의견이 논의되고 있다"고 전했다. 정부가 1차 휴진 의원들 모두에 행정처분을 내리는 등 강경태도를 고수할 경우, 오히려 의사들의 반발을 불러 2차 휴진율만 높여주는 '부작용'을 우려한다는 얘기이다.
따라서 1차 휴진 의원에 대해서는 주동자급을 포함, 증거와 의도가 매우 뚜렷한 경우에 한해 '선별' 처분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당인 새누리당도 대화 중재를 위해 의협 등과 물밑 접촉에 적극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의협과 새누리당 국민건강특별위원회는 1차 집단 휴진을 막기 위해 물밑 논의를 통해 중재를 시도한바 있다.
◇ 의협, 개원의·봉직의 입장차이·낮은 휴진 참여율 등 '부담'
의협 입장에서도 실제로 2차 집단 휴진을 '성공적'으로 이끌기에는 여러가지로 부담이 큰 상황인 만큼, 집단 행동에 앞서 대화로 수가 결정체계 개선 등 실익을 챙기는 게 유리할 수 있다.
무엇보다 현재 내부에서조차 쟁점에 대한 의견이 하나로 잘 모아지지 않고, 따라서 회원들의 휴진 동참율도 높지 않다는 게 의협의 가장 큰 고민이다. 실제로 10일 1차 휴진에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 소속 의사들은 거의 호응하지 않았고, 동네 의원들의 참여율(정부 집계 20.9%·의협 집계 49.1%)도 절반을 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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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정위 의사협회 현장조사
- (서울=연합뉴스) 신준희 기자 = 11일 오전 서울 이촌로 대한의사협회 본부에 마련된 파업상황실을 찾은 공정거래위원회 조사관(맨 오른쪽)이 의협 집단휴진과 관련 현장조사를 벌이고 있다. 공정위는 집단휴진 결정과 실행 과정에 위법 사항이 있었는지를 집중적으로 조사할 방침이다. hama@yna.co.kr
현재 9만여 의협 회원 가운데 3분의 1은 직접 의원 등을 경영하는 개원의, 또 다른 3분의 1은 병원·종합병원·상급종합병원 등에 고용돼 월급을 받는 의사(봉직의)들이다.
정부와의 갈등 요인 가운데 '저(低)수가' 문제의 경우 의사들 사이에 큰 이견이 없다. 개원의나 봉직의 가릴 것 없이 자신들이 제공한 의료 서비스에 비해 건강보험이 지급하는 대가인 의료수가가 너무 낮다며 '현실화', 즉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개원의들의 경우 지난 2011년 설문 조사 결과, 1천32곳 의원 가운데 68%가 현 건강보험제도에 불만을 드러냈고, 20%만 "현재 수입에 만족한다"고 답했다.
하지만 의협이 또 다른 주요 파업 이유로 거론하는 원격진료와 의료법인의 영리 자법인 설립은 의사들 사이에서도 입장과 견해가 엇갈리는 부분이다.
대체로 개원의에게 원격진료와 의료법인 관련 규제 완화는 혜택이 없거나 오히려 불리한 변화이다. 일단 지금은 의원급으로 원격진료 가능 기관을 제한하고 있지만, 점차 규제가 풀리면 결국 원격진료 시설 투자 여력이 충분하고 장기 관리가 필요한 수술 건이 많은 대형 병원들에 더 환자가 몰릴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종합병원 등 대형 병원 소속 의사들로서는 '대면 진료' 등의 원칙적 명분만 아니라면 딱히 반대할 이유를 찾기 어렵다.
의료기관의 영리 자법인 설립도 병원 소속 의사들로서는 기회가 늘어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자법인의 수익이 모법인인 의료기관으로 더해지면 소속 의료진의 처우가 개선될 수 있고, 자법인의 부대사업으로서 의료 신기술 연구·개발(R&D)이 활발해질 가능성도 있다.
지난 2000년 집단 휴진 당시 개원의들의 초기 참여율이 90%를 웃돌고, 대학병원 소속 의사들까지 외래를 휴진하며 동참했던 것과 비교해 전혀 다른 상황인 만큼 '투쟁'을 지루하게 오래 끌수록 의협 입장에서도 유리할 것이 없다는 얘기이다.
여기에 2차 집단 휴진을 강행할 경우, 업무정지나 면허 취소 등 '무더기 행정 처분'이라는 눈에 보이는 손해 뿐 아니라 "의사들이 환자 생명을 볼모로 밥그룻 싸움에 열중한다"는 여론의 질타도 감수해야한다.
노환규 의협회장 역시 지난 10일 1차 집단 휴진 당일 기자 간담회를 통해 "대화로 해결하지 않아 여기까지 왔다. 국민을 불안하게 하지 않고 대화를 통해 해결하길 원한다"며 정부와의 협상 의지를 내비쳤다.
아울러 의협은 현재 민주당 등 정치권과도 접촉하면서 대화를 통한 해결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주목된다.
shk999@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4/03/11 13:51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