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침체·전세난도 원인…정부 '정책실패'도 작용한 듯
(서울=연합뉴스) 홍정규 기자 = "중산층을 두텁게" 하겠다는 정부의 정책 구호와 달리 중산층·자영업자 가계가 어려워지고 있다.
경기 침체 탓에 이들의 소득은 제자리인데, 금융당국의 대출 억제 정책으로 연 30%대 고금리 대출은 늘었다. 천정부지로 뛴 전세보증금을 마련하려는 전세자금대출 부담도 증가해 다중채무·고령층 자영업자의 부실 위험이 커졌다.
결국 중산층·자영업자의 어려움이 상당 부분 정부의 '정책실패'에서 비롯한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다분하다.
한국은행은 31일 국회에 제출한 '금융안정보고서'에서 "중소득(소득 3~4분위)·중신용(신용도 5~6등급)의 채무부담이 증가하고 있다"며 "금융기관의 위험관리가 중·저신용자에 집중됨에 따라 이들의 가계부채 잔액이 감소했다"고 진단했다.
이는 금융위원회가 2011년과 2012년에 잇따라 내놓은 '가계부채 연착륙 종합대책'과 '제2금융권 가계대출 보완대책'의 시행 때문이라고 한은은 설명했다. 정부의 대출 억제에 따른 '풍선효과'로 대부업체 대출에서 중신용 계층의 비중은 2010년 말 13.5%에서 지난해 말 16.0%로 커졌다.
특히 자영업자는 대부분 중소득·중신용 계층에 속했다. 즉, 중산층 자영업자의 어려움이 가장 큰 것이다.
소득 3분위 자영업자의 원리금상환부담비율(DSR·경상소득에서 원리금상환액이 차지하는 비율)은 지난해 말 18.2%로 임금근로자 평균(11.7%)의 1.5배를 넘었다. 자영업자의 1인당 대출은 지난 3월 말 평균 1억2천만원으로, 임금근로자 1인당 대출(4천억원)의 3배에 달했다.
자영업자는 부채의 규모가 클뿐더러 부채의 질도 나쁜 것으로 분석됐다.
한은이 은행의 가계대출을 분석한 결과 자영업자 대출은 만기에 한꺼번에 갚는 일시상환방식의 비중이 39.3%로 임금근로자(21.3%)보다 컸다. 특히 자영업자 대출의 20.4%가 2013~2014년에 만기를 맞는다.
자영업자가 금융기관에서 가계대출과 기업대출 명목으로 돈을 끌어온 중복대출의 잠재부실률(총 대출금에서 연체 대출금이 차지하는 비율)은 2010년 말 3.4%에서 지난 6월 말 4.1%로 높아졌다. 은행과 제2금융권 여러 곳에서 돈을 빌린 다중채무 자영업자의 연체율은 2010년 말 0.84%에서 지난 3월 말 1.34%로 높아졌다.
중산층·자영업자의 어려움에는 전세가격 상승과 주택가격 하락, 업종의 편중 현상, 베이비부머 세대의 은퇴 등도 작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소득 3분위의 가계부채 가운데 전·월세대출 비중은 13.6%(담보대출)와 7.1%(신용대출)로 다른 소득분위보다 높았다. 한은은 "전세가격 상승 등에 따른 주거비용 증가가 중소득·중신용층의 가계수지 악화 요인으로 작용할 우려가 크다"고 설명했다.
지난 3월 말 기준으로 4대 시중은행의 자영업자 주택담보대출 가운데 집값 하락으로 담보인정비율(LTV)이 60%를 넘는 대출의 비중은 40.1%로 임금근로자의 LTV 60% 초과 대출 비중(17.5%)보다 훨씬 크다.
올해 들어 자영업자는 줄었지만, 베이비부머 세대의 은퇴로 50대 이상 자영업자는 매월 3만명씩 늘었다. 이 때문에 2011년부터 올해 3월까지 베이비부머 자영업자의 대출은 전체 자영업자 대출의 30% 안팎에 이를 것으로 추정됐다.
더구나 베이비부머 자영업자의 업종은 음식·숙박업과 도·소매에 편중되고 규모도 영세해 돈을 벌어 이자를 갚는 데 버거울 것이라고 한은은 진단했다. 연령대별 1인당 이자부담비율은 60세 이상이 12.9%로, 20대(8.3%)의 약 1.5배에 달한다.
한은은 "금융당국은 자영업자 대출의 만기연장에 대한 모범규준을 마련하고 상업용 부동산담보대출 관련 LTV 규제의 단계적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며 "자영업자와 대기업 가맹점의 상생 관계를 강화하는 방안과 자영업자 관련 통계체제 정비도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10/31 12:00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