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치의, 허위진단서 3건 발급…1만달러 수수
류회장, 회삿돈 87억 빼내 2억여원 부인 입원비 사용
(서울=연합뉴스) 김연숙 기자 = 서울서부지검 형사5부(부장검사 김석우)는 '여대생 청부살해사건'의 주범 윤길자(68·여)씨에게 허위진단서를 발급하는 대가로 돈을 주고받은 혐의로 윤씨의 주치의 박모(54)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유방외과 교수와 윤씨의 남편 류모(66) 영남제분 회장을 16일 구속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박 교수는 윤씨의 형집행정지와 관련, 3건의 허위진단서를 발급하고 류 회장으로부터 미화 1만달러를 받은 혐의(허위진단서 작성·행사 및 배임수재)를 받고 있다.
류 회장은 박 교수에게 허위진단서 발급을 부탁하면서 돈을 건네고 회사자금 87억여원을 빼돌려 이중 2억5천만원을 윤씨의 입원비로 사용한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횡령 및 배임증재 등)를 받고 있다.
검찰 조사 결과 박 교수는 2008∼2012년 윤씨가 원하는 시기에 병원에 입·퇴원할 수 있도록 하고 형집행정지를 위한 '맞춤형' 진단서를 작성한 것으로 드러났다.
박 교수는 특히 2010년 7월 7일 '상태가 매우 호전됐다'는 취지의 진단서를 발급했다가 류 회장의 요구에 따라 하루만에 '당뇨, 압박골절, 백내장 등으로 건강상태가 극도로 좋지 않아 수감생활이 불가능하다'고 재발급하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내분비내과·신경외과 등 협진의들은 '윤씨의 상태가 안정돼 더 이상의 치료가 필요하지 않다'는 소견을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2002년 여대생 하모(당시 22세)씨를 청부살해한 혐의로 2004년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윤씨는 2007년 7월부터 올해 5월까지 3번의 형집행정지 처분을 받았고 이를 총 15번 연장했다.
윤씨는 이 기간 세브란스병원에서만 38차례에 걸쳐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다.
-
- 영장실질심사 출석 영남제분 류모 회장(자료사진)
박 교수는 그 중 23회의 입원에 직접 관여하면서 외래진료나 응급실을 거치지 않고 윤씨를 바로 입원시키는 특혜를 제공했다. 또 형집행정지 만료 기간이 다가오면 검찰의 연장심사에 대비해 윤씨를 입원시켰다가 연장 결정 후 바로 퇴원하는 행태를 반복했다.
그는 윤씨의 암 재발 가능성을 강조하기 위해 이례적으로 34개의 외국문헌까지 인용해 장문의 논문식 소견서를 작성하기도 했다. 병명도 점차 늘어 2012년 발급한 최종 진단서에는 병명이 12개까지 기재됐다.
검찰은 서울동부지검 소속 의사출신 검사를 파견받아 진료차트 등 5천여쪽의 의료기록을 분석하는 한편 협진의와 간호사 20여명을 불러 진단서를 조사했다.
검찰 관계자는 "박 교수가 발급한 진단서 29건이 대부분 과장되거나 오해를 유발할 수 있는 내용이지만 법리상 허위성이 명백한 3건에 대해서만 혐의를 적용했다"며 "나머지 진단서에 대해서도 대한의사협회 차원에서는 충분히 징계를 받을 소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류 회장은 상장법인인 영남제분과 그 계열사에서 87억원을 빼돌려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또 부인의 입원비 2억5천만원을 회사 법인카드로 결제한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 관계자는 "형집행정지 업무에 관한 규정이 정교하지 못해 이번 사태가 촉발된 점에 대해 사과드린다"며 "과거 이 사건의 형집행정지 허가나 연장 절차에 문제가 있었는지 대검에서 경위를 점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세브란스병원 관계자는 박 교수와 관련, "기소가 됐기 때문에 박 교수를 대기발령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며 "하지만 규정상 교원은 본인 의사에 반한 징계를 할 수 없도록 돼 있기 때문에 법원의 최종 선고가 나오기 전까지 사실상 징계는 어렵다고 본다"고 말했다.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09/16 17:30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