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불후의 명곡' 스타.."새 앨범 준비"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검정 모자를 눌러쓴 낯선 얼굴의 청년은 무대에 오르며 긴장된 기색이 역력했다. 지난 6일 KBS 2TV '불후의 명곡-전설을 노래하다'의 '해바라기 편'에 첫 출연한 가수 문명진(36)이다.
해바라기의 '슬픔만은 아니겠죠'를 부른 그는 얼굴을 찡그리고 어깨를 들썩이며 감정을 온몸에 실었다. 알앤비(R&B) 창법으로 진성과 가성을 수려하게 오간 그의 무대가 끝나자 반향은 엄청났다.
'알앤비 교본' '고수의 재발견' 등의 호평이 쏟아졌고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위도 찍었다. 10년 만에 지상파 방송 출연이란 점도 감동을 배가시켰다.
그는 지난 2001년 데뷔해 '상처' '하루하루' 등의 곡을 히트시켰지만 대중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 지 오래였다. 지난 2011년 서태지와아이들 출신 이주노가 MBC TV '라디오 스타'에 출연해 "노래를 기가 막히게 하는데 얼굴이 외국인 갱 같다"고 언급해 반짝 화제가 된 적이 있을 뿐이다.
여세를 몰아 그는 지난 18일 '불후의 명곡'의 100회 특집 '들국화 편'에서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로 407표를 얻어 우승을 차지했다. "태어나서 처음 받아보는 상"이라며 "어머니가 제일 좋아하실 것 같다"는 소감이 잔잔한 여운을 줬다.
최근 문명진을 전화로 인터뷰했다. 그는 다음달 2일 가수 백지영과 배우 정석원의 결혼식에서 부를 축가 연습을 하고 있었다.
"평생 한 번 있는 소중한 자리이니 축가여도 연습을 해야…. 하하."
'들국화 편'에서 우승한 소감을 묻자 그는 그때 기분을 지금 다시 상기하기엔 무리가 있을 것 같다고 솔직하게 답했다.
"꿈꾸는 것 같았어요. (우승이 결정되자)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만 가지 감정이 들더군요. 처음에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는 '울지마, 울지마'였어요. 아버지가 3년 전 암투병을 하다 돌아가셨는데 그때 이후 눈물이 많아졌거든요. 툭하면 울어서 안 울려고 노력 중이에요."
들국화의 1집 곡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를 연습하면서도 눈물이 났다고 했다. 삶이 지치고 힘든데 그래도 아침이 밝아온다는 내용의 가사가 자신의 이야기 같았기 때문이다. 그는 "나에게 얘기하는 노래 같았다"며 "때론 출연진이 선호하는 곡이 겹치면 '뽑기'를 하는데 다행히 내가 원하던 이 곡은 뽑기 상황이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그간 TV에 노출되지 않은 데는 자의(自意)도 있었다. 10여년 전 방송 출연 현장에서 받은 마음의 상처 때문이다.
"10여년 전 케이블 채널 음악 프로그램에서 (업타운 출신으로 '하루하루'를 작곡한) 정연준 형과 함께 듀엣 할 기회가 있었어요. 그런데 형이 개인 사정으로 오지 못하자 PD가 '돌아가라'고 하더군요. 전 인지도가 없는 신인이어서 혼자 출연시키는 게 무의미하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그 일이 상처가 돼 '방송은 이런거구나. 앞으로 하지 말아야지'라고 마음을 먹었죠."
이후 소속사와 계약을 할 때도 '방송에 일체 출연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이번 '불후의 명곡' 제의가 왔을 때도 거절하고 싶었다고 한다.
"처음엔 제안을 거절했어요. 방송에 비칠 제 모습을 상상해보니 추하고 초라할 것 같았죠. 허니패밀리의 멤버 주라와 함께 상의했는데 '어쩌면 언제 다시 돌아올지 모르는 기회다' '더이상 지금보다 밑으로 떨어질 일은 없다'는 생각에 마음을 고쳐먹었죠."
스스로 자부하는 건 음악을 놓지 않고 살았다는 점이다. 보컬 레슨을 하며 돈을 벌었고 간간이 싱글도 내고 OST 곡도 불렀다. "싱글 시장이 좋아졌으니 홍보가 안 돼도 느낌 좋은 곡을 발표하는데 만족했다"며 "지난 2011년 처음으로 누구 간섭없이 발표한 '잠 못 드는 밤에'가 가장 아끼는 곡"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는 적은 나이가 아닌 아들에게 다른 일을 찾아보라고 늘 걱정했다. 그때마다 어머니와 트러블이 있었다고 한다.
그는 "처음 얘기하는데 신기한 건 내 가슴 한쪽에는 항상 '난 한방이 있어'란 생각이 있었다"며 "분명히 '내 차례가 올 거야'란 확고한 신념이 가슴 한구석에 있었다. 그걸 놓지 않고 버텼다"고 강조했다.
바람대로 10년 만에 재조명 받는 기회가 왔지만 여러 감정이 교차하는 듯 보였다.
"좋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해요. 방송 출연을 싫어했는데 10년간 해온 음악이 방송 한 번에 회자됐으니까요. 또 음악인 문명진으로만 인사드리고 싶은데 사람들이 동정하는 느낌도 싫고요. 마치 '인간극장' 같잖아요."
돌이켜보면 데뷔를 한 건 우연이었다. 그는 열일곱 살 때부터 6년간 송탄의 미군 부대 클럽 등지에서 DJ로 일했다. 물론 가수에 대한 열정도 크지 않았다. 그때 랩을 하던 동생이 정연준에게 오디션을 본다고 해 따라나섰다가 엉겁결에 오디션을 봤다. 그리고 정연준의 소개로 한 음반기획사 대표를 만났다. 그 대표는 다음날로 현금 500만원이 든 봉투를 건네며 "계약하자"고 했다.
그는 가슴 아픈 기억도 꺼냈다. 사연을 털어놓으며 잠시 말문을 잇지 못하기도 했다.
"1집 때 매니저가 이후 이 일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하다가 손가락 네 개가 절단되는 사고를 당했어요. '만약에 내 음반이 잘 됐으면 그 친구가 사고 없이 잘되지 않았을까'란 미안한 마음이 있어요. '해바라기 편' 출연 때 제가 눈물을 보였는데 1집 때 사장님 생각도 나고 매니저도 떠올라 울컥했어요."
힘든 환경을 딛고 다시 음악 하는 재미를 느끼기 시작한 그는 지금 새 앨범을 준비하고 있다. 작곡가들로부터 곡을 받고 있는데 이제 슬픈 노래는 그만하고 싶다고 웃었다.
그는 "그간 힘든 환경이어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폭이 좁았고 때론 사람들에게 이용당해 병적으로 경계와 의심이 많았다"며 "그래서 10년간 음악인으로 제대로 살지 못했는데 모두 좋게 평가해줘서 부끄럽다. '더 노력했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좋은 노래와 무대 매너로 인사드릴 수 있었을텐데'란 후회도 한다. 그래서 정말 열심히 해보고 싶다"고 강조했다.
앞으로도 '불후의 명곡'에서는 트레이드 마크가 된 모자를 계속 쓰고 나올 예정이라고도 했다.
"머리가 삭발이고 뒷통수에 문신도 있어요. 평소 모자를 즐겨 쓰니 트레이크 마크로 밀고 나가려고요. 하하."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05/23 06:35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