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식 세탁소' 출간
(서울=연합뉴스) 백나리 기자 = 사람들은 누구나 크고 작은 열망을 갖고 산다. 이 회사만 때려치우면 뭐라도 될 것 같은 매일의 소망부터, 버릴 수 없는 어떤 가치에 인생을 던지겠다는 거창한 결심까지 저마다 열망은 색이 다르고 무게도 다르다.
이 열망이 훼손될 때 악을 쓰며 저항하는 게 정상인 것 같지만, 그래야 애초에 열망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었겠지만, 열망이 찢어지는 걸 우리는 그냥 놔두기도 한다. 정미경은 새 소설집 '프랑스식 세탁소'에서 열망에 틈이 생길 때 비로소 드러나는 인간의 누추하고 복잡한 마음을 들어 올린다.
표제작에서는 두 이야기가 서로 휘감으며 진행된다. 거동할 수 없는 어머니의 다그침에 요리를 시작하고 어머니가 죽어버린 뒤엔 사랑도 떠나보내며 요리에 매진하는 르와조의 이야기와 망해버릴 것 같은 복지재단을 다시 살리려 고군분투하는 한 복지재단의 젊은 이사장 이야기다.
두 인물은 어느 순간 열망을 훼손당한다. 르와조가 일궈낸 레스토랑 '프랑스식 세탁소'에 붙었던 별 세 개가 두 개로 내려앉는다. 께름칙한 수단까지 불사하며 되살리려 애썼던 복지재단에 감사가 들어오고 기자의 취재가 시작된다.
르와조도, 젊은 이사장도 열망의 훼손을 직감한다. 하지만 대응하는 방식은 딴판이다. 한 사람은 가장 극단적인 방식을 택해 저항하고 또 한 사람은 회피와 책임전가, 혹은 처세라고 부를 만한 방식을 택해 비켜서 버린다.
열망이라는 것이 이렇게 사람을 잡거나 혹은 사람을 너절하게 만든다면 열망이라는 것에 우월한 지위를 주는 것이 이상한 일일지 모른다. 사람들은 저 편한 대로 열망을 말했다가 저 편할 때 열망을 팽개치고 또 어느새 제 입맛에 맞춰 열망을 입에 올리는지도 모른다.
단편 '남쪽 절'에선 만들고 싶은 책만 만들겠다며 독립한 출판사 편집자가 대필 작가의 양심선언으로 한풀 꺾인 베스트셀러 작가를 찾아가 굽실거린다. 이번 책이 잘되면 다음엔 만들고 싶은 책을 만들 수 있다고 변명하지만, 그 변명하는 마음의 누추함을 누구보다 저 자신이 가장 잘 알 것이다.
이렇게 열망과 누추함 사이를 오가는 인물들의 민얼굴을 지켜보기가 불편한 일이다. 작가는 소설집 맨 뒤 '작가의 말'에 "시차를 두고 쓰인 소설들을 읽다 보니 하나같이 아프고 어둡고 쓸쓸하고 막막하고도 불안하다. 그건 아마도 내가 누구보다 더 환하고 온기 있는 삶을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걸 누군가는 알고 있을까"라고 적었다.
창비. 284쪽. 1만2천원.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05/17 15:13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