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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제1회 중입·고입·고졸검정고시 시험에서 소년원학생 366명 취득

posted May 15,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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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재표 기자/스포츠닷컴]

 

 

2013년 제1회 중입·고입·고졸검정고시 시험에서 소년원학생 366명 취득

 

 

 ◇법무부는 4.14.(일) 검정고시 시험에 전국 10개 소년원학교 학생 405명이 응시하였으며, 이 중 7명의 학생은 퇴원이 결정되었지만 집으로 가지 않고 소년원 출원을 미루면서까지 소년원 선생님들과 함께 공부한 끝에 합격의 영광을 안았다고 발표하였다..


  ◇가정형편 등 부득이한 사정으로 배움의 기회를 상실한 자에게 동등한 학력을 인정하고 교육기회를 다시 부여하여 자아실현과 교육평등의 이념을 실현한다는 검정고시의 근본 취지를 감안할 때 학업이 중단된 소년원생들의 검정고시 합격은 소년원학교 학업연계 만큼이나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으며 최근 3년(’10년∼’12년)간 검정고시 합격 인원 : ’10년→394명, ’11년→497명, ’12년→640명으로 매년 증가 추세에 있으며, ’12년의 경우 ’10년 대비 약 62.4% 증가하고 있다.

 

※또한, 소년원학교에 재학하고 있는 소년원생중 고입검정고시 15세 이상, 고졸검정고시 18세 이상인 경우 학력인정 검정고시에 각각 응시할 수 있도록 관련 법령에 검정고시 응시 특례조항을 두어 보다 폭넓은 응시 기회를 주고 있음

 

  ◇특히, 이번 검정고시 합격생 중에는 힘든 시험준비 과정에서 자신을 무겁게 짓눌렀던 불우한 가정환경 등을 슬기롭게 이겨내고, 미래를 준비하고자 하는 대견스러운 원생들이 많아 시험준비를 같이 했던 교사와 자원봉사자들에게 스승의 날을 맞아 ‘책임과 봉사’라는 의미를 다시 한 번 마음속에 되새길 수 있는 뜻 깊은 기회가 되었다고 전했다.

 

 

[검정고시 합격 미담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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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1】

- 아직은 앞길이 어둡기만 하지만... 그래도 희망이 생겼어요. -

 【청주소년원】
   ○ 성명(나이, 성별) : 박해민(만 17세, 여, 가명)
   ○ 비행명(처분명) : 성매매알선등행위의처벌에관한법률위반(9호처분)
   ○ 비행력 : 특수절도 등 3건
   ○ 입원일(퇴원예정일) : ’12. 12.(’13. 6.초)


  해민(가명) 학생을 처음 만난 것은 ’12년 12월 추운 겨울날 신입반에서 처우심사를 위한 면담을 위해 상담을 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첫인상은 짧은 단발머리에 동그란 얼굴, 서글서글한 큰 눈에 웃음기 없는 메마른 얼굴로 묻는 이야기에 조용조용 대답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담담하고 태연한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슬퍼보이는 학생이었습니다.

 

  해민이는 부모님과 오빠가 있는 평범한 집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해민이의 평범한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부모님의 잦은 다툼 끝에 어머니는 해민이가 여섯 살 되던 해 가출하였고, 아버지는 원양어선에 승선하여 한두 달에 한 번 집으로 돌아오는 생활을 반복하며 자연스럽게 혼자 있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재혼한 어머니의 집에서 생활해보기도 했지만 이미 재혼하여 두 명의 이부동생과 계부가 있는 집에서는 아무도 해민이에게 관심을 주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해민은 다시 아버지와 사는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던 중 잊지 못할 충격적인 사건이 생깁니다. 평소 가출과 비행을 반복하며 경찰서를 들락거리던 오빠가 해민을 성폭행한 것입니다. 그때 나이 겨우 13살, 초등 6학년 때의 일입니다. 이때의 일로 해민은 엄청난 정서적 충격을 받았음에도 오히려 다른 사람 이야기를 하듯 담담하고 태연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 모습이 더욱 슬프고 가슴 아팠습니다.

 

  이 사건으로 아버지는 해민을 오빠와 격리시키기 위해 보육원에 보냈고, 이후 보육원과 그룹홈을 전전하며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부모의 그늘을 벗어나 생활하다 보니 이를 계기로 가출, 음주, 흡연 등 일탈행위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룹홈을 나와 가출한 불량교우와 함께 어울리며 노래방도우미, 조건만남 등을 통해 생활비를 마련하였고, 일정한 주거지 없이 모텔을 전전하는 생활이 반복되었습니다. PC방에서 인터넷 채팅사이트를 통해 조건만남을 하고 성매매를 하였고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절도를 하며 경찰서를 들락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 해민은 가족에게서 받은 상처를 친구들과 함께 지내며 잊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친구들과 함께 생활하는 것이 즐겁고 누군가에게 “사랑받는 느낌이 좋았다”라며 고개를 떨구었습니다. 자신을 보육원에 보낸 아버지, 재혼한 어머니, 자신에게 잊을 수 없는 상처를 준 오빠.. 그들 모두가 밉고 싫었다고 합니다. 자신이 망가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지만 돌아가기 싫었습니다. 아니.. 돌아갈 곳이 없었습니다.

 

  해민이와 상담을 하면서 해민이가 안타깝고 마음 아팠지만, 해민이가 무엇보다 꿈을 잃지 말고, 어려운 환경을 탓하기 보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겨낼 수 있는 강한 아이가 되어줄 것을 당부하였습니다. 이곳에서 고입검정고시 준비를 하고 싶다고 하였고,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해민이의 생활반은 느티나무반, 학과목은 검정고시반에 배치되었습니다. 느티나무반에 배치된 후 담임선생님을 유독 잘 따르게 되었고 웃음기 없는 메마른 얼굴에는 조금씩 웃음꽃이 피기 시작했습니다. 인사성이 밝아 누구보다큰 목소리로 공손하게 인사하였고 담임선생님 뿐 아니라 여러 선생님들에게 착하고 성실한 아이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남이 하지 않는 일에 앞장섰고, 힘든 일에 싫은 내색 없이 자신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소년원에서 생활하는 5개월 동안 상점이 매우 많아 생활성적 또한 매우 우수하였습니다.

 

  저는 업무분장으로 검정고시반 운영을 맡게 되었고, 해민이의 공부를 지도하게 되었습니다. 첫 면담 시부터 해민이를 눈여겨보고 있던 터라 해민이의 공부를 지도할 수 있다는 사실이 내심 기뻤습니다. 해민은 누구보다도 열심히 공부하였습니다. 수업을 가르쳐주시는 자원봉사 선생님들의 지도를 잘 따르고, 동영상강의를 시청하며 합격을 위한 의지를 불태웠습니다. 모르는 문제가 있으면 달려와 질문하고 가장 밤늦게까지 공부하던 학생도 바로 해민이였습니다. 하지만 기초학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공부에 대한 열정만큼 수업을 따라가기 어려워하였고, 모의고사 시험을 본 날에는 열심히 한만큼 성적이 나오지 않는다며 눈물을 보이고 좌절하기도 하였습니다.

드디어 검정고시 시험 당일.

해민이는 무척 긴장하고 초조해하였지만, 지금까지 노력한 만큼 결실을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시험장에 들어갔습니다. 8시간 가까이 긴 시간 동안 시험을 치르고 나온 해민이의 얼굴은 밝았습니다.

 

“선생님! 합격이예요. 합격!!”

  다음날 해민이는 아침 일찍 가채점한 답안지를 흔들려 달려왔습니다. 평균 64점. 그리 높은 점수는 아니었지만 분명히 합격이 가능한 점수였습니다. 그리고 이번 검정고시 시험 결과 발표일... 당당히 고입검정고시에 합격을 하였습니다. 어렵게만 생각했던 검정고시 시험에 합격을 하고 나니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긴다며 기뻐합니다. 우리는 서로 얼싸안고 합격의 기쁨을 나누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기쁨도 잠시, 해민이에게 슬픈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퇴원날이 다가오고 있었지만 부모님이 해민이를 인수하지 않겠다고 이야기를 전해온 것입니다. 담임선생님이 직접 해민이의 집으로 찾아가 부모님을 설득도 해보았지만 결국 해민이의 부모님은 인수포기각서를 쓰기에 이르렀고, 해민이는 검정고시에 합격하였다는 기쁜 소식도 전하지 못한 채 눈물을 흘려야만했습니다.

 

  “자립생활관에서 생활하겠어요. 선생님. 나가서 네일아트 자격증을 취득해서 취직하겠습니다. 아직은 앞길이 어둡기만 하지만, 저 검정고시 시험도 합격했잖아요... 그래도 희망이 생겼어요”

 

  며칠을 어두운 얼굴로 지내던 해민이는 결심한 듯 이야기하였습니다. 지금은 비록 아무도 자신을 돌아봐주지 않지만, 검정고시 시험에 합격하게 되면서 열심히 노력하면 못할 일이 없다고 느꼈다고 합니다. 퇴원 후에 열심히 자격증을 취득하고 취직하여 가족 앞에 떳떳한 모습으로 보란 듯이 나타나겠다며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저는 그런 해민이의 등을 가만히 쓸어주었습니다.

 

  오늘도 해민이는 가장 밝은 얼굴로, 또 가장 큰 목소리로 선생님들에게 인사를 합니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신이 맡은 일을 묵묵히 해내고 있습니다. 저 작은 가슴에 얼마나 많은 상처가 있을지... 또 얼마나 많은 고민과 아픔이 웅크리고 있을지... 마음이 아파옵니다.
 
  지금의 의지와 열정으로 이 험한 세상에서 누구보다도 강하고 바르게 자라나기를 소망해 봅니다.

 

 

 

【사례2】

- 합격위해 한 달간 퇴원을 연기한 소녀 -

 【안양소년원】
   ○ 성명(나이, 성별) : 김정미 (만 20세, 여, 가명)
   ○ 비행명(처분명) : 보호관찰등에관한법률위반(10호 임시퇴원 취소)
   ○ 비행력 : 보호관찰등에관한법률 위반 등 5건
   ○ 입원일(퇴원예정일) : ’12. 8.(‘13. 4. 14.)


   “니가 거기서 죽어도 나는 가지 않을 거다. 그냥 화장해버리라고 할거야!”

  이 말은 다시는 이런 곳에 오지 않을 거라고 다짐하고 나갔던 소년원에 다시 들어온 후 정미(가명)가 전화를 통해 어머니로부터 들은 말이었다.

 

  부모님 슬하에 오빠를 둔 평범하고 경제적으로도 풍족한 가정에서 성장한 정미는 보통의 아이였다. 그러다가 정미가 중학생이 되던 해 부모님이 치매를 앓는 할머니 봉양문제로 다툼이 잦아지면서 어느 순간부터 집에 들어가기가 싫어지기 시작했다.

 

밖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놀다보면 시간가는 줄 몰랐고 차츰 그 시간이 늦어지다가 아예 집에 들어가지 않게 되었다. 부모님이 정미를 붙잡으려 했을 때는 이미 정미가 일명 ‘노는 재미’에 푹 빠져있을 때로 부모님의 제재가 소용이 없었다.  

 

  ‘돈이 없으면 집에 들어오겠지’라는 생각으로 부모님이 용돈을 주지 않으면 길거리에서 만난 아이들을 협박해서 빼앗은 돈으로 생활했다. 별다른 죄책감도 없이 그런 행동을 반복하였고 여러 번 용서를 받았음에도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지 않고 상습적인 가출을 반복하다가 보호관찰 준수사항을 위반하여 10호처분을 받고 처음 소년원에 입원하였다.
 
  소년원에 입원한 후 어머니는 먼 거리임에도 꾸준히 면회를 오며 정미에 대한 사랑과 관심을 보여주었다. 정미가 소년원 생활을 마치고 임시퇴원을 하였을 때 어머니는 이제는 정미가 달라졌을 거라고 굳게 믿었으나 그 믿음은 불과 한 달도 가지 않았다. 정미는 다시 가출을 하여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는 생활을 반복하였던 것이다.

   임시퇴원이 취소되어 소년원에 다시 입원한 후 정미는 어머니와 연락이 되지 않아 한동안 불안해했다. 그러던 중 담임선생님이 어머니라고 바꿔준 전화를 받고 좋아하던 것도 잠시 어머니가 더 이상 자신을 보고 싶지 않다는 말을 듣게 된 것이었다.
 
  사실 정미어머니가 그런 모진 말을 한 것은 그동안 정미가 무슨 짓을 해도 다 받아주기만 하였더니 잘못을 반성하지 않고 친구들만 찾으며 가족의 소중함도 모르는 것 같아 이번 기회에 언제까지나 부모가 기다려 주는 것은 아님을 깨닫게 해주어야겠다는 생각에 내린 힘든 결정이었던 것이었다.

 

  부모님의 그런 깊은 마음을 깨닫지 못한 채 정미는 ‘어떻게 엄마가 내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 엄마가 이상해진 것 아니야?’라는 생각을 하였고 ‘엄마가 그런 식으로 나온다며 나도 엄마 안보고 혼자 살거야’라고 말하며 부모님을 원망하였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어머니가 다시 예전처럼 자신을 찾아올 거란 기대도 하였으나 시간이 지나도 부모님이 자신이 보낸 편지에 답장도 하지 않자 정미는 차츰 상황의 심각성을 깨닫기 시작했다. 자신이 그동안 얼마나 많은 실망을 주었으면 어머니가 그런 말까지 하셨을까 생각하니 자신의 행동이 부끄러웠고 내가 정말 달라졌다는 것을 보여드려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헤어디자인반에 배치된 후 평소 하고 싶어 했던 미용기술을 배워 자격증을 취득하였고 ‘놀면 뭐해?’라는 생각으로 ‘네일아트’자격 취득까지 도전하여 비교적 짧은 시간에 2개의 자격증을 취득하였다.

 

  정미의 퇴원일은 ’13. 3.16.로 정해져 있었지만 평소 어머니가 고등학교는 졸업해야 한다고 항상 강조했고 정미가 입원전 응시한 검정고시에 3과목만 합격한 것이 아쉬웠던 정미는 고졸검정고시에 재도전해 보기로 했다.

 

  소년원에서 검정고시반 편성을 위해 테스트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정미는 많은 고민을 하였다. 검정고시 시험일은 정미의 퇴원일 한 달 후로 검정고시 시험에 응시하려면 소년원에 한 달을 더 생활해야 하는데 자신이 과연 그 시간을 잘 버틸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었다. 하지만 고민은 길지 않았다. 이번 기회가 아니면 안 될 것이라는 생각에 과감하게 테스트에 응시를 하였으나 허망하게 테스트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정미는 ‘포기하라는 뜻인가? 그만둘까’도 잠시 생각하였으나 어머니에게 당당한 딸로 나설 기회를 이렇게 쉽게 포기할 수 없단 마음에 담임선생님을 찾아갔다.

 

  “선생님 저희 어머니가 제가 소년원에 입원한 후 저를 한 번도 찾아오지 않는 것 알고 계시죠? 제가 여러 번 편지를 보냈는데 답장도 안하세요. 그동안 제가 어머니 가슴에 못을 많이 박았나 봐요. 이제 그만 어머니 가슴에 박은 못을 빼드리고 싶습니다. 어머니가 제가 고졸검정고시에 합격하는 것을 항상 바라셨는데 소년원 입원전 본 시험에서 3과목만 합격했어요. 이번에 다시 시험을 봐서 어머니의 소원 하나라도 들어드리고 싶어요. 제가 검정고시반에 들어갈 수 있도록 추천해주시면 안될까요?”

 

  진심을 담은 정미의 호소로 담임선생님의 추천을 받아 검정고시 반에 편성되었다.

  검정고시를 준비하면서 정미는 초반 강한 의욕을 보이며 열성적으로 시작하였으나 중학교 진학 후 학교공부와는 담을 쌓고 지냈던 실력으로는 힘든 도전이었다. 좀처럼 오르지 않는 성적에 조급해하며 자신감을 잃고 눈물을 흘리며 나태하게 생활해 왔던 자신의 과거를 후회하기도 하였다.
 
  그런 정미에게 담임선생님은 어려운 미용기능사 자격증도 한 번에 취득한 실력이면 검정고시도 충분히 해낼 수 있다며 자신감을 불어넣어주며 격려했고 검정고시 지도 선생님은 기초가 부족하여 정미가 공부하기 힘들어하는 영어와 수학 과목은 기초부터 차근히 가르쳐주면서 정미가 수업을 잘 따라 올 수 있도록 지도해주었다.

 

  선생님들의 격려와 지도를 받으며 정미는 잃었던 자신감을 회복하였고 처음 시작할 때보다 더 강한 의욕을 가지고 학업에 열중하였다. 자신의 실력에 대한 회의감은 어느새 ‘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으로 바뀌어갔다.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어머니에게 변화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동료들과의 여가시간, 달콤한 취침시간의 유혹을 뿌리치기가 쉽지는 않았지만 어머니를 생각하며 이를 악물고 자신과의 싸움을 이겨나갔다.

   검정고시 시험을 앞두고 실력 점검차 매주 실시한 모의고사에서 조금씩 성적이 향상되었고 가끔 성적이 떨어질 때도 있었지만 이전처럼 좌절하지 않고 자신을 더 채찍질해가며 야간자율학습에 참여하였다. 다른 학생들이 잠든 시간에도 실력이 좋은 동료의 도움을 받으며 밤 12시까지 학업에 매진한 결과 검정고시 시험을 2주 앞두고 실시한 모의고사에서는 검정고시 합격점을 훌쩍 넘는 점수를 받게 되었다.

 

  그러던중 정미 어머니로부터 처음으로 편지가 도착하였다. 정미는 어머니의 믿음을 얻기 위한 자신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기뻐하였고 더욱 확고한 목표의식을 갖고 학습에 임하였다.

 

  드디어 시험일... 정미는 약간의 긴장도 있었지만 시험이 끝나면 그리운 가족품으로 갈 수 있다는 생각에 들뜬 기분이 들었다. 무사히 시험을 치르고 난 후 자신을 데리러 온 어머니를 만난 순간 정미는 마음속에 많은 말을 차마 하지도 못하고 엉뚱한 말만 늘어놓았다. 오랜만에 본 어머니의 얼굴은 이전보다 많이 늙어 있었고 그 얼굴을 계속 보면 눈물이 나올 것 같아 보고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어머니의 시선을 애써 피하려고 했다. 하지만 정미의 진심은 감출 수는 없었다. 어느새 어머니를 껴안고 그 동안 참아왔던 눈물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엄마, 미안해요. 이렇게 못난 딸을 그 동안 길러주고 지켜봐줘서...”

 

  더 이상 어머니가 마음 아파하는 일을 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정미는 어머니와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소년원에서 취득한 미용자격증을 이용하여 헤어샵 스텝으로 취업하였다. 그렇지만 스텝으로 일하는 것은 쉽지 않아 하루 종일 서서 일해야 하는  매우 힘든 일이기도 하지만 이보다는 같이 일하는 사람, 다양한 손님을 상대해야하는 것이 더욱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정미는 자신감이 있고 사회생활에 대해 여러 가지 조언을 해주는 소년원 선생님과 주위 어른들의 덕분에 힘든 생활을 잘 이겨내고 있다.

 

 

 

【사례3】

- 서울대 입학과 바리스타를 꿈꾸는 소년 -

 【서울소년원】
   ○ 성명(나이, 성별) : 정지운(만 18세, 남, 가명)
   ○ 비행명(처분명) : 성폭력범죄의처벌및피해자보호등에관한법률위반(주거침입강간)
   ○ 비행력 : 없 음
   ○ 입원일(퇴원예정일) : ’12. 3.(’13. 6.)

 

  지운(가명)은 소년원에 오기 전 그저 평범한 학생이었다. 아버지는 10년 전 회사에서 무거운 물건을 나르던 중 불의의 사고로 허리를 다치셔서 직장을 잃고 집에 누워 계시며, 어머니께서 일용직으로 생활비를 버셨다. 같은 고교에 재학중인 둘째 동생은 연년생으로 지운과 거의 친구나 다름없는 관계로 서로 의지하고 어려운 일은 터놓고 얘기하며 해결하는 친구같은 형제였다. 밑으로 막내 동생은 지운이가 어머니 대신 귀저기까지 갈아주며 그저 귀엽게만 느껴지던 동생이었다.

 

   “선생님, 저는 언젠가는 성공할 것이라는 의지를 가지고 있었어요. 그래야 가난한 우리집도 저로 인해서 행복의 꽃을 피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까요.”
   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지운은 어려운 형편임에도 열심히 공부하여 학교에서 중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하고 있었고 친구관계는 잘 노는 친구, 게임 잘하는 친구들과 어울리면서도 노는 것에만 관심 갖지 않고 꾸준히 공부도 하는 그런 애였다고 스스로 말하였다. 그렇게 줄곧 당당하게 말하던 지운이가 “그럼 어떻게 이곳에 들어오게 되었지?” 라는 질문에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그렇게 잠시 동안 정적이 흘렀고 다른 질문으로 넘기려던 찰나에 조용히 말을 꺼냈다. “저는...이 곳에... 성비행으로... 왔어요.....” 그 말을 듣고서야 왜 지운이가 답하기를 꺼려했는지 이해가 갔다. 요즘 사회의 큰 이슈로 떠오른 성비행이라는 꼬리표는 솔직한 지운에게도 말하기를 꺼려 할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지운이가 성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때는 중학교 때였다고 한다. 친구를 통해 처음 음란영상을 접한 지운에게는 그저 성은 호기심이었다고 한다. 그러다 고교에 들어가면서 지운이가 접하는 음란 영상은 수없이 많아졌고 하루는 음란 영상을 보다 그 영상을 따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자신도 모르게 귀가하는 여학생을 뒤따라가게 되었고, 그것이 지운이가 이곳 소년원에 입원을 하게 만든 돌이킬 수 없는 엄청난 사건의 발단이 되었다. 결국 죄를 저지른 지운은  주거침입강간이라는 무서운 죄목을 꼬리에 달고 서울소년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순간의 충동을 참지 못해 되돌릴 수 없는 죄를 저지른 지운은 자신 스스로도 자신을 용서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었다고 말했다. 끝이 없는 나락에 떨어진 것처럼 삶을 포기하려 했던 지운은 소년원 입원 바로 다음날 불편한 몸을 이끌고 면회를 오신 아버지의 말씀에 자신에게 변화가 왔다고 조용히 말하기 시작했다.

 

   “애야, 너는 어찌해도 용서 받지 못할 끔찍한 죄를 지었단다. 하지만 여기서 자책하며, 낙담하면서 허송세월을 보낸다면 너는 구제불능의 쓰레기 같은 놈이 되는거야. ”

  그때서야 지운은 스스로 또다시 죄를 저지를 뻔했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말을 꺼냈다.

 

   “저는 아버지가 오셔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나서야 비록 제가 이곳에 남들은 상상도 못할 큰 죄를 짓고 왔지만 그 죄로써 낙담, 자책, 포기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사회에 또 다시 큰 죄를 짓는 것이므로, 죄를 반성하며 스스로를 변화시켜 앞으로 사회에 진 빚을 갚는 것이 사회에 보답하는 길임을 깨달았어요.”

 

   그렇게 그 날 지운은 꼭 성공할 것이고 지금의 자신이 아무리 밑바닥 낭떠러지에 있다고 해도 포기하지 않고 올라서고 또 올라설 것이며, 지금 이곳에서의 반성의 시간을 결코 잊지 않겠다고 다짐하고선 울면서 아버지께 약속드렸다고 했다.

 

   “아버지 저 여기서 열심히 공부해서 꼭 서울대에 가겠습니다.”

  ‘서울대’라는 말은 지운에게 그저 대한민국 최고 명문대학이라는 의미가 아니었다고 한다. 지운에게는 세상에 진 빚을 갚기 위한 꿈이었고 더 이상 말로만 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실천이었다.

 

   곧이어 직업훈련반인 제과제빵반으로 배치되었다. 배치되고 얼마 안되어 지운은 ITQ 파워포인트 등 소년원에서 신청할 수 있는 건 다 신청해서 자격증을 따냈고, 모범적인 생활로 상점도 한 달에 30점 이상씩 받기도 하며 하루하루 전력을 다해 앞만 보고 달렸다.

 

   ‘꿈을 위해, 가족을 위해, 사회에 진 빚을 갚기 위해 아무리 힘들어도 견뎌야 돼!’

   지운은 매일 반복되는 소년원 생활에서 계속 숨막히는 답답함을 느끼면서도 자신의 목표를 위해 이를 악물고 참았다고 한다. 그러다 지운이의 인생에 중요한 기회가 찾아왔다. 제과제빵반에 바리스타 자격증 교육과정이 신설되었는데 지운이도 평소 관심이 있던 터라 지원하게 되었다. 바리스타 자격 취득을 위해 필기공부를 하던 중 재미가 붙으면서 커피 전문가가 되는 것이 자신의 목표가 되었다고 한다.

 

  왜 커피가 목표가 되었냐는 물음에 지운은 눈을 반짝이며 당당히 말했다.
  “어려우니까요. 커피는 아무리 공부해도 끝이 보이지 않는 것 같아요. 마치 새로운 세계를 눈앞에 보는 것 같아요. 그래서 더욱 재미있어요.”

 

   그렇게 지운은 바리스타 필기시험 합격을 위해 마땅히 공부할 장소가 없음에도 낮에는 수 십 명의 동료들이 붐비는 생활실에서 시끄러운 TV 소리를 등지고 벽을 보며 공부했고, 밤에는 취침시간에 희미한 취침등에 책을 비춰가며 몰래 공부하였다. 그 결과 만점에 가까운 점수로 필기시험을 통과했다. 그렇지만 바리스타의 길은 멀고도 험했다. 지운은 ‘눈병’이라는 뜻하지 않은 복병을 만나게 되었다.

 

   “필기시험에 합격하고 이제 한 달 후 실기시험만 합격하면 되는데 하늘은 냉정하게도 제게 눈병이라는 시련을 겪게 하였고 저는 눈병으로 한 달여간을 실기  연습도 하지 못한 채로 치료를 위해 건강실에서 요양을 하는 신세가 되었죠” 그렇게 지운은 흐르는 눈물을 참으며 다음 시험을 기약하게 되었다.

 

   ‘바리스타..커피...나의 꿈, 나의 존재의 이유’

 

   시간은 흘러 11월이 되었고 바리스타 실기시험을 12월에 다시 볼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하지만 역시 이번에도 하늘은 제게 또 다른 시련을 주었어요.”

   그것은 바로 한 달 동안 바리스타 실기 시험 외에 제과기능사시험과 ITQ 엑셀 시험도 봐야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 달이라는 짧은 시간에 세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아야하는 상황을 겪게 된 지운에게 선생님과 동료들은 차라리 한 가지에 전념하라고 충고를 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운은 고민 끝에 생각했다.

 

   ‘서울대라는 목표도 정했고 또 최고의 바리스타가 되겠다는 목표도 정했는데 겨우 이 자격증 세 가지 앞에 무릎을 꿇는다면 내가 앞서 정한 목표들도 무너지는 것이다.’

   이렇게 마음을 다잡은 후 하루 네 시간만 자며 공부하는 지옥의 한 달을 보낸 결과 기적처럼 3가지 자격증, 즉 바리스타 실기, 제과기능사, ITQ엑셀 이 모두를 우수한 성적으로 따냈다고 했다. 이에 좀 더 욕심을 내어 ’13년 3월에는 제빵기능사 시험도 응시해서 따냈다.

 

  소년원에서 취득할 수 있는 자격증을 모두 취득한 지운은 드디어 서울대에 가기 위한 첫 단계로 고졸검정고시를 시작했다고 한다. 소년원에 오기전 고교를 비교적 성실히 다녔기에 어느 정도 기본은 있었지만 서울대에 들어가려면 고졸검정고시는 만점을 받아야 된다며 지독하게 공부에 몰입했다. 그 결과 생활실에서는 ‘정지운’하면 ‘소년원의 돌연변이 공부벌레’라는 별명까지 생길 정도가 되었다. 지금도 다른 학생들에게 지운에 대해 물어보면 ‘지독한 공부벌레’ 라는 말이 먼저 나올 정도였다. 검정고시 지도 선생님도 열정적인 지운이의 모습을 대견하게 여기며 정성을 다해 가르치며, 결전의 날을 준비했다.

 

  드디어 2013년 4월 14일이 되어 시험을 봤고 평균 96.5점이라는 높은 점수로 합격하게 되었다. 만점을 목표로 했던 지운은 조금은 아쉬웠지만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을 했다.

   “선생님, 저 이제 6월 말이면 이곳을 떠나 사회로 돌아가게 될 것 같아요. 제가 만일 이곳에 왔을 때 낙담하고 자책하며 생활했다면 아마도 저는 한참 뒤에나 퇴원했을 것이고 퇴원하고서도 목표 없이 방황하며 실패자의 삶을 살았을 거예요. 하지만, 소년원에서의 삶은 저에게 재도전의 기회를 주었어요. 제게는 바리스타와 서울대라는 두 가지 목표가 생겼으니까요. 퇴원하게 되면 커피기술을 익히기 위해 커피숍에 취직해서 커피도 배우고 서울대를 가기 위해 수능시험도 준비할거에요. 지난번에 소년원에 견학을 온 서울대 출신 사법연수원 형, 누나들을 만나는 기회가 있었는데 그 분들께 제가 커피숍을 다니며 서울대를 가기 위해서 공부도 할 생각인데 가능하냐는 질문에 당연하다고 지금 서울대에는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해서 온 학생들이 많다고 대답해주셨어요. 그래서 저는 누가 뭐라고 해도 제 꿈을 이뤄낼 거예요.”

 

   지운은 또 다시 말을 꺼냈다.

   “선생님, 저는 또 한 가지 제가 가진 최고의 꿈이 있는데 그 꿈은 바로 행복한 가족을 만드는 거예요. 이런 꿈이 있는 저는 제 생에서 가장 기쁘고 모든 것이 감사해요.”
  
  그 말 한 마디에서 교사들은 지운이가 정말 많이 성장했음을 느꼈다고 한다. 앞으로도 지운에게 시련이 닥칠 것이다. 하지만, 지운은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고 언젠가는 자신의 꿈을 이루어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볼 것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사례4】

- 소년원학교 자매 이야기 -

 【안양소년원】
   ○ 성명(나이, 성별) : 신은정(만 13세, 여,가명), 신은지(만 16세, 여,가명), 자매
   ○ 비행명(처분명) : 특수절도등, 공갈미수(각 10호처분)
   ○ 비행력 : 신은정 - 없음, 신은지 - 특수절도 등 4건
   ○ 입원일(퇴원예정일) : ’12. 7.(’13. 8.)


 

   “언니 이제는 나쁜 과거는 다 잊고 열심히 살아가자. 나도 착한 동생이 되도록
노력할게...“
  
  은정(가명)이가 소년원에 입원하게 된 계기는 “절도와 폭력” 때문이었다. 처음 비행을 시작하게 된 나이는 11살 때이며, 항상 의지하고 지내던 할머니가 건강이 편찮으셔서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는데 늘 곁에 계시던 할머니가 곁에 없다는 불안감과 허전함에 가출과 비행을 일삼게 되었다.
 
이번에 저지른 ‘절도’ 비행은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아이의 호기심과 배고픔 때문에 발생하게 되었다.

 언니, 오빠와 가출을 한 상태의 은정에게는 돈과 음식, 지낼 곳이 없었기 때문에 근처 사찰에 들어가 120만원 현금과 아파트 주차장에 주차 되어있던 자동차를 훔치게 되었다. 원래 자동차를 훔칠 생각은 없었으나 차량내 금품 절취를 위해 문이 열린 차안에 들어갔는데 열쇠가 꽂혀 있는 것을 보고 충동적으로 차까지 훔치게 된 것이다.

 

  ‘폭력’사건은 노숙자 아저씨를 상대로 일어났다. 그 아저씨는 은정과 은정이 친구에게 술과 담배를 사주고는 성추행을 하려했고, 그 사실을 전해들은 은정의 남자친구가 은정과 함께 노숙자 아저씨를 찾아가 함께 폭력을 저지르게 되었는데, 화를 참지 못하고 남자친구가 근처에 있던 유리병을 들고 노숙자 아저씨를 위협하고 폭행하여 이번 비행에 이르게 되었다.
 
  처음 우리 학교에 온 은정은 영어 알파벳과 수학의 기초연산, 구구단조차 모르는 학생이었다. 초등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않아서 기본조차도 모르는 학생이었지만 담임선생님과 멘토 아빠 그리고, 같은 반 학생들의 도움으로 기초부터 다시 천천히 배우기 시작했다.
 
  신입 때 은정은 욕설의 뜻조차 모르고, 욕설이 나쁜 것인지도 몰라서 모든 사람들에게 아무렇지 않게 욕을 하는 학생이었다. 규칙을 지켜야 한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고 규칙을 왜 지키는지 조차 알지 못하였다.

 

   그런 은정이가 이렇게 우리 학교에 적응하고 중입검정고시에 합격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숨은 공로자가 있었는데 바로 은정이, 은지의 멘토 아빠인 노오섭 사장(박준뷰티랩 산본점)이셨다.

 부모님께서 면회를 자주 오지 않는 자매를 위해 노오섭 사장님은 매주 월요일마다 멘토 아빠로서 면회를 오셨고, 좋은 말씀과 격려,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이 때문에 은정이, 은지는 점점 심리적으로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또한 중등반 현장 체험활동에도 같이 가주시고 자매를 데리고 가정관까지 이용해 주셨다. 은지가 공부하고 있는 헤어디자인반 현장체험활동에도 매번 은정을 데리고 가주셨고, 보호자 좌담회 때 오지않은 부모님을 대신해 같이 해주시는 등 누구보다 두 자매를 아껴주셨다.

 

  검정고시 선발 과정에서 은정은 기초가 너무 부족했던 터라 선생님들은 은정이가 검정고시반 선발 고사를 본다고 해도 통과하지 못하겠다고 판단하시고 테스트를 보지 않고 반에 편성해주셨다. 그 후에 검정고시 야간자율학습을 단 한 차례도 거르지 않았고, 같은 반에 중입검정고시에 합격한 언니가 있는 호실로 가서 공부를 하고 싶다는 의지를 보여주어 당직 선생님들도 흔쾌히 허락해 주셨다.

 누구보다 더욱 열심히 노력하는 학생이었기에 선생님들과 학생들이 모두 한마음으로 은정을 도와주었다.
 
  은정은 우리 학교에서 가장 어리기 때문인지 누구보다 열심히 하려고 노력하였고, 언니들의 귀여움도 한 몸에 받았다. 이제는 어리광도 부릴 줄 아는 귀여운 학생이 되었고 언니들과 싸우지도 않고 순진한 그 나이 또래 모습으로 생활하고 있다.
 
  ’13년 4월 제1회 검정고시 결과 은정은 중입검정고시에, 은지는 고입검정고시에 각각 합격하였다. 은정과 은지 자매는 의지할 곳이 없어 오랜 기간 가출을 하였고 비행을 저질러왔다. 결국 자매가 함께 소년원에 오게 되었지만, 이제는 둘의 상처와 아픔을 어루만져주고 그들 또한 서로를 의지하며 미래를 위해 준비하고 있다.


 

 

【사례5】

- 군인 장교를 꿈꾸는 소년 -

 【부산소년원】
   ○ 성명(나이, 성별) : 김재영(만 16세, 남, 가명)
   ○ 비행명(처분명) : 특수강간(10호처분)
   ○ 비행력 : 공갈 등 2건
   ○ 입원일(퇴원예정일) : ‘12. 3.(’13. 6.말)

 


  재영(가명)의 어린 시절은 평범하지 못했다. 재영은 태어나서 16년을 줄곧 경기도 여주에서 살았다. 여주에 살면서 이사를 3번이나 했는데 처음 7세까지 살았던 곳은 “고개 밑”이라는 마을이었다. 그 마을은 교회가 1개 있고 집들이 15개 정도 밖에 없는 촌 동네였다.

 

  그 마을에 살 때 재영의 아버지는 도자기 공장에서 일을 하셨고, 어머니는  재영이가 4살 때 이혼을 하였기 때문에 같이 산 기억이 없었다. 아버지가 출근을 하시면 윗집의 외할머니 집에서 어머니가 오셔서 돌봐주시곤 했다.

 그러다가 아버지의 퇴근시간이 다가오면 도망가듯 가시곤 했다고 한다. 그때 재영은 정상적인 가정을 본 적이 없어서 그것이 평범한 줄 알았다고 한다. 그것이 부모님의 이혼 때문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시간이 흘러서 재영이 유치원에 갈 나이가 되었는데 당시 몇 살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날은 재영이 처음으로 유치원에 가는 날이었고 아버지 품을 처음으로 떠나는 날이기도 했다.

 처음엔 두려워서 한 참을 울었다. 유치원에 적응할 때 쯤 알게 된 게 하나 있다고 한다. 재영이의 가정이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항상 아버지가 유치원에 재영이를 데려다 주셨는데 친구들은 어머니가 데려다 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재영은 유치원 선생님께 가서 말했다.

 

  “선생님, 저는 왜 엄마랑 같이 안 살아요? 네? 네?”라고 말이다. 선생님은 재영이가 안쓰러웠는지 “아빠한테 가서 아빠, 우리는 왜 엄마랑 같이 안 살아요? 저는 아빠랑 엄마랑 같이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라고 말하라고 했다고 한다. 그리고 아빠랑 엄마랑 잠시 싸워서 같이 안사는 거니까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만 하면 반드시 같이 살 수 있다고 재영이를 달래주셨다.

 그때 선생님이 달래주시려고 한 이야기를 전적으로 믿었다. 그러니까 정말 희망이 보이고 상상만 해도 행복했다고 한다.

 

  그날 저녁 용기를 내서 아빠한테 울면서 선생님이 가르쳐준 대로 얘기했다. 재영은 아빠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잘 나지는 않지만 분명한 것은 변한 것이 없었다고 한다. 이때부터 재영은 어른들은 “거짓말쟁이”라며 싫어했다. 괜한 일로 아빠한테 떼를 쓰다가 매를 맞기도 했다.

 

  초등시절 학교생활은 어린 시절의 응어리로 쌓인 기억들과 아픔들 때문에 힘들었다. 그래도 재영은 초등시절 책 읽기를 정말 좋아했는데 특히 역사책을 좋아했다. 어느 날은 앉은 자리에서 6시간 동안 책을 읽기도 했다. 재영은 고구려, 백제, 신라, 고려, 조선시대까지 왕들의 재위기간을 외우고 왕들의 업적들까지 외웠다.

 재영이는 전쟁이야기를 정말 좋아해서 장군들이 전략을 짜고 적을 무찌르는 책을 읽을 때면 책에 늘 취해 있었다.

 

  초등학교 1,2학년 때는 학교에 적응을 제대로 못했는데 그 이유는 소소한 것을 챙겨주시는 엄마가 없기 때문이었다. 3학년이 되어서는 주변에 친구가 많이 생겼다. 그 친구들은 모두 재영이와 비슷하게 자라온 친구들이었다. 편부, 편모, 계부, 계모 등 가정환경이 다양하였다. 부모한테 받아야 할 보살핌을 ‘의리’라는 명분으로 친구들끼리 채우고자 했다. 초등학교 다닐 때 제일 싫었던 날은 부모와 같이 해야 하는 운동회였다. 정말 너무 싫어서 6학년 때는 운동회 도중에 학교를 나오기도 했다.

 

  중학생이 되어서는 자신과 비슷한 친구들을 더 많이 사귀게 되었고 그들은 모두 어른들을 경계하고 싫어했다. 재영이와 친구들은 항상 몰려다니며 놀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쁜 짓도 하게 되었다. 그런 그들을 선배들이 알았는지 가만히 두지 않고 ‘자신들도 당했다’며 거의 매일 때리고 돈을 빼앗았다.

 

  중 1학년 때는 이렇게 선배들 눈치를 보느라 공부를 하지 못했다. 2학년이 되어서는 선배들로부터 맞는 것은 줄었지만 돈을 뺏기는 것은 여전했다. 그들은 몇 번 선생님께 신고도 해보았지만 변하는 것은 없었다. 재영이는 더 어른들을 불신하게 되었고 나중에는 자신들이 동생들을 괴롭히고 있었다. 2학년 때는 1년 동안 당한 것을 동생들에게 하고 3학년 때는 습관이 되어 있었다.

 그렇게 동생들을 괴롭힌 것이 쌓여서 학교에 적발되었고 조사과정에서 이번 비행까지 밝혀져 유치장 등을 거쳐 여기 소년원에 오게 되었다.

 

  10호 처분을 받고 서울소년원을 거쳐 이곳 부산소년원까지 와서 연소반에서 동료와 싸우고 7일간 근신을 받는 등 적응에 많이 힘들어 했다. 그래도 주위에 좋은 동료들이 있어서 많은 도움을 받으면서 생활할 수 있었다.

 

  재원중 책을 통해서 많은 것을 깨닫기도 하였지만 무엇보다도 지금의 선생님의 도움이 없었으면 변하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재영이는 무엇보다 지금의 선생님을 통해서 어른들을 싫어하는 자신의 마음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했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부산소년원에 와서 컴퓨터 관련 자격증 2개, 자동차 정비기능사 1개, 한자 관련 자격증 1개 등 총 4개의 자격증을 취득한 상태이고 현재는 ‘덴트’라고 하는 좋은 기술을 배워 익히고 있는 중이다.

 

  재영이가 이번 검정고시 준비로 처음에 시작한 것이 영어였는데 알파벳부터 다시 외우고 집에서 보내온 영어책으로 독학을 했단다.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너무 많아서 이해될 때까지 몇 번이고 읽어보았다.

 절실함이 있어서 그런지 지치지 않고 부할 수 있었다. 수학은 기출문제만 계속 풀다 보니까 어느 순간부터 조금씩 이해가 되었다. 나머지 암기과목들은 책들을 한 번씩 정독하고 자신만의 방법인 독서를 통해서 공부했다. 사회 같은 경우는 앨빈 토플러의 ‘부의 미래’라는 책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고 국사는 한국사 만화책 전 10권을 통해서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검정고시 공부를 하면서 큰 깨달음을 얻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말 중에 ‘공부는 콩나물과 같은데 콩나물에 아무리 물을 많이 준다고 해도 콩나물이 그 물을 다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콩나물 키우는 통에 있는 구멍으로 대부분 다 새어버린다. 그런데 어느 날 와서 보면 콩나물이 자라고 있다. 공부도 마찬가지로 아무리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어도 사람들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런데 어느 날 와서 보면 조금씩 변해가는 모습이 보인다.‘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이 말을 듣고 재영은 자신도 한 번 변해보고 싶은 마음으로 공부를 했단다.

 

  공부를 해보니까 쉽게 이루어지는 것은 쉽게 없어지기 때문에 어렵게 배우려는 생각으로 꾸준히 하다보면 어느 순간부터 되더라는 것이다.

 

  재영은 시험을 한 달 앞두고는 취침시간에도 잠을 자지 않고 공부를 했다. 이렇게 독하게 만든 것은 절실함 때문이었다고 한다.

 가족들에게 변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은 그 절실함, 다시 새사람이 되고픈 그 마음이 자신을 졸리지도 않게 만들었다. 취침시간에 공부하는 것은 엄연히 규칙 위반임에도 불구하고 선생님들은 재영이의 행동을 눈감아 주시기도 했는데 그땐 너무 너무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이제 퇴원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재영이의 꿈은 군인이 되는 것이다. 그동안 군인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아보았기 때문에 만약 군인이 된다면 하사관보다는 장교가 되고 싶다고 한다. 퇴원 후 오전에는 일을 하며 저녁에는 공부를 계속하다 대학교에 입학할 생각이다.

 

  다만 일과 공부를 병행하는 상황속에서 잘 버틸지가 걱정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꿈이 있고 그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자신감과 열정이 있다. 그리고 자신을 믿고 지지해주는 가족이 있고 새사람이 되고 싶다는 절실함이 그 누구보다 강하기 때문에 그의 미래는 밝다.

 

 

【사례6】

- 요리연구가 ‘에드워드 권’을 꿈꾸며 -

 【대구소년원】
   ○ 성명 : 권희진(만 17세, 남, 가명)
   ○ 비행명(처분명) : 보호관찰등에관한법률위반(10호처분)
   ○ 비행력 : 절도 등 2건
   ○ 입원일(퇴원예정일) : ’12. 11.(’14. 2.말)


 

  저는 1995년 경남 창원에서 태어났습니다. 사실 어릴 적 기억 속에는 어머니의 모습이 없습니다. 유아기 때 별거, 5살이 되던 해, 이혼을 하였고 그 후 아버지와 단둘이 2년 정도 살았습니다. 아버지가 직업 군인인 관계로 남의 손에서 자란 적도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사랑이 필요한 저는 7살 때 지금의 새어머니를 만났습니다. 처음 어머니를 만났을 기억이 너무나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여느 때처럼 유치원을 마치고 집을 갔는데 맛있는 냄새가 집안에 가득하였고 평소와 다르게 아버지도 계셨습니다. 그 때 환하게 웃으며 절 반겨 주셨던 어머니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 당시 저는 저 분이 내 엄마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어머니가 생기고 차츰 시간이 지나자 그런 마음은 사라져 버리고 태어나 처음으로 반항을 하다 회초리도 맞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동네 친구들과 어울리며 밖으로 맴돌다 보니 가족과도 점점 거리가 멀어졌습니다.

 

  초등 2학년 때 또래의 친구들보다 덩치가 커서 친구들에게 폭력을 일삼았고 그 일로 학교에서는 전학을 요구하여 지리산 청학동 서당에서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가족의 소중함을 깨달았고 제가 저질렀던 행동들을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3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12살 되던 해에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후부터 마음먹고 공부에 열중하다보니 반에서 1등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의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기뻤습니다. 같은 해인 2006년에 국가공인 한자자격시험에서 공인 2급 자격증도 취득하였습니다.

  중학 2학년 때부터 사춘기로 인해 흔히 말하는 학교 ‘일진’에 가입하여 음주와 흡연을 하게 되고 가출까지 하였습니다. 친구들과 밤새 놀다 오전 늦게 등교하던 중 아버지에게 붙잡혀 많이 맞기도 하고 앞으로 그러지 않겠다고 각서도 썼지만 번번이 아버지와의 약속을 어겼습니다.
 
  그런 아버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에 대한 반항심은 갈수록 커져만 갔고 17살이 되던 해에는 반항심이 최고조에 이르렀습니다.

 고교 입학식에 가지도 않고 보름 만에 자퇴후 혼자 독립하고 싶은 마음에 또 다시 가출하였습니다.

 가출 후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하여 번 돈을 유흥비로 모두 탕진하고 돈이 떨어지면 또 아르바이트를 하는 등의 생활이 반복되다가 결국 길거리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러다 결국 해서는 안 될 일을 저질렀습니다. 죄책감도 없이 남의 물건과 돈에 손을 대는 범죄를 저질렀고 그로 인해 4주간 부산소년원에 위탁되어 생활하다 장기보호관찰(2년) 처분을 받고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으나 잘못된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또다시 가출 등으로 방황하였습니다.
 
  경찰의 불심검문에 붙잡혀 10호 처분을 받아 ’12년 11월 대구소년원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전에 부산소년원 위탁 담임선생님으로 계셨던 이용성 선생님을 다시 뵙게 되었습니다. 부끄러운 마음이었지만 선생님께서는 저를 보시고 웃으시며 “이곳에서 자격증 등을 많이 따고 생활 잘 할 거라 믿는다.”라고 격려해 주셨을 때 저는 잘못된 습관을 고치고 평소 결심하고 있던 고졸검정고시에도 꼭 합격하리라 다짐했습니다.

 

  고졸검정고시에 관심을 가진 저는 검정고시반 선생님에게 시험응시에 대해 질문을 드리면서 자신감 있게 “검정고시시험 정도는 이곳 소년원에서 1등을 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자 선생님께서는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학생이 되어라”라며 격려해 주셨습니다. 그 때 다시 한 번 다짐하였습니다. 검정고시 합격은 물론최선의 노력을 다해서 대구소년원에서 꼭 1등으로 합격을 하겠다고...

 

  검정고시 응시 선발시험에서 총 50명 중 4등으로 합격하여 검정고시 준비반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3년 만에 공부를 다시 시작하니 모르는 것들을 많았지만 공부를 하면서 하나씩 알아갈 때마다 즐겁고 신이 났습니다.

 한 달에 한 번 실시되는 첫 모의고사 시험에서 1등을 하면서 스스로가 대견스럽고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선생님들의 지도와 저의 노력으로 최종 모의고사 시험에서도 1등을 하면서 마음의 여유와 자신감이 확고해졌습니다.
 
  2013년 4월 14일 검정고시 시험일, 넓고 넓은 강당에서 떨리는 마음으로 시험지를 받아 문제를 풀어 나갔습니다. 선생님들과 외부 자원봉사 선생님들의 열정어린 지도가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선생님들께 당당하게 1등을 하겠다던 약속을 지킬 수 있을지 염려도 되었습니다.

 

  이번 검정고시에서 실수가 많았다고 걱정했었는데 생각과 달리 평균 92점이 나왔고 ‘학교 수석’이라는 수식어도 생겼습니다. 지난 3개월간 검정고시를 열심히 공부했던 시간들이 낳은 결과였습니다.

 목표한 바를 이루니  ‘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담임선생님과 많은 선생님들이 약속을 지킨 저를 보고 칭찬과 격려를 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제가 1등을 할 수 있었던 건 항상 저를 믿고 응원해 주신 선생님들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제아였던 제가 열심히 노력하면 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 주셨기 때문입니다.
 
  목표하였던 고졸검정고시를 합격하였지만 이제부터가 제 인생의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는 ITQ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열심히 컴퓨터 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철없고 잘못된 행동으로 소년원에 왔지만 이곳 생활이 저의 인생의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소년원에 오지 않았다면 친구들과 어울려 나쁜 행동을 반복하며 불안한 생활을 지속하였을 것입니다.

 

  저는 꿈과 목표가 생겼습니다. 새로운 것들을 하나씩 배우면서 모든 분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생활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지난 3년간 가방을 들고 학교에 가는 모습이 보고 싶다고 하신 부모님! 이번 검정고시 합격을 기회로 내년에 대학에 입학하여 부모님께 당당히 학교에 다니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한 입학이 아니라, 저의 꿈을 이루기 위해 한 발짝 다가서는 출발점이 대학 입학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호텔조리학과에 입학하여 요리의 기초부터 차근차근 이론과 실기를 배워 한식, 양식 요리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한식과 양식의 절묘한 조화를 통한 퓨전음식을 개발하여 퓨전음식계 최고 요리사가 되는 것이 저의 목표이자 꿈입니다.

요리사의 직업에 매력을 느낀 것은 누군가가 제 음식을 먹고 힘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행복하고, ‘빅마마 이혜정 요리연구가’처럼 우리 몸에 좋은 음식을 만드는 것이 존경스러웠기 때문입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해외 유학도 가고 싶습니다. 외국인의 입맛에도 맞고 한국인의 입맛에도 맞은 요리법을 연구할 수 있는 기초와 경험을 쌓기 위해서입니다.

 저는 부족함이 많은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소년원에서 배우고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요리사‘에드워드 권’도 고교 중퇴후 전문대학에 진학하였으며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고 합니다. 저는 그 분을 롤모델로 삼고 제 꿈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지금도 한결같이 저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저에 대한 걱정으로 늙어가시는 부모님에게 저도 한결같은 노력과 사랑으로 보답해 드리고자 합니다.

 늦을 수도 있지만 이제서라도 부모님에 대한 감사함을 깨닫고 다시 할 수 있다는 마음을 가지게 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저에게 가족의 소중함과 부모님의 사랑을 일깨워 주신 소년원 선생님들, 제 꿈을 이루기 위해 응원을 아끼지 않는 부모님, 형제같은 우애를 느끼게 해준 제과제빵반 친구들에게 모두 감사합니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 계속해서 보여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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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표 기자 su1359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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