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범·나인뮤지스·엘씨나인 등 뮤비 19금 판정
청소년들 온라인서 쉽게 접해..기획사들 책임론도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두 패거리가 등장해 집단 격투를 벌인다. 벽돌을 상대의 머리에 집어던지고 망치로 어깨를 찍어내린다. 손으로 날아오는 병을 깨고 상대의 배를 발로 짓밟는다. 화면에는 피가 흠씬 튀긴다.(그룹 엘씨나인의 '마마 비트')
#윗옷을 벗고 근육질 상반신을 노출한 남자가 여자와 함께 침대에 눕는다. 남자는 여자의 짧은 치마에 손을 갖다대고 여자의 긴 손톱은 남자의 등을 할퀴고 지나간다.(박재범의 '웰컴')
아이돌 가수들의 뮤직비디오가 위험 수위다. 방송사 심의에서 선정성과 폭력성을 이유로 '19금(禁·청소년관람불가)' 판정을 받은 뮤직비디오가 잇따르고 있다.
신인그룹 엘씨나인(LC9)의 소속사인 내가네트워크는 데뷔 앨범 타이틀곡 '마마 비트'(MaMa Beat)의 뮤직비디오를 기획 단계부터 '19금'으로 촬영했다. 소속사는 "하나의 작품으로 봐달라"지만 폭력 수위가 높아 이들은 '폭력돌'이란 수식어도 붙었다.
또 박재범의 싱글음반 수록곡 '웰컴'(Welcome)의 뮤직비디오는 '나의 침대 온걸 환영해 환영해 베이비(baby) (중략) 이불 덮지 말고해 말고해 레이디(lady), 불도 끄지 말고 해 난 니 몸을 봐야해~' 등 선정적인 노랫말과 함께 낯뜨거울 정도다.
이뿐만이 아니다.
걸그룹 나인뮤지스의 미니앨범 타이틀곡 '와일드'(Wild) 뮤직비디오도 19금 판정을 받았다.
소속사인 스타제국 관계자는 "높은 수위의 장면이 담겨 있진 않지만 멤버들의 몸매가 드러나는 의상과 채찍, 권총, 면도칼 등의 소품들이 문제가 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3집을 발표한 그룹 2PM도 타이틀곡 '하.니.뿐.'의 뮤직비디오에 당초 상당한 수위의 장면을 담을 계획이었다. 그러나 소속사인 JYP엔터테인먼트가 뮤직비디오 편집 과정에서 수위 조절을 해 '15세' 등급을 받았다.
JYP엔터테인먼트는 "이번 앨범은 2PM이 마초적인 '짐승돌'을 넘어 여성들이 이성으로 느낄 진짜 남자로 돌아왔다는 콘셉트여서 사랑 고백 가사에 맞춘 성인 버전 영상을 담으려 했다"며 "그러나 촬영 당시의 야한 장면들을 걷어내고 수위 조절을 했다. 원본을 공개했다면 '19금' 등급을 받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흐름은 시장에서 콘텐츠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과열 양상을 띠는 분위기다. 아예 기획사들이 의도적으로 아이돌 가수들의 영상물을 '청소년관람불가' '성인용'으로 찍어 논란거리를 만들려는 의도도 다분하다.
한 신인 아이돌 그룹 기획사의 관계자는 "노이즈 마케팅의 일환"이라며 "신인의 경우 방송 출연 기회가 적은데다가 윙카를 타고 전국을 돌며 팬들을 만나고 거리에 홍보 현수막을 붙이는 등 각종 프로모션을 해도 별 반응이 없다. 콘텐츠는 쏟아지는데 이슈가 돼 살아남으려는 고육지책"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19금 딱지가 붙은 청소년관람불가 뮤직비디오를 청소년들이 온라인에서 손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점이다. 누리꾼 사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일부 누리꾼들은 엘씨나인의 뮤직비디오에 대해 '19금 딱지 붙여놔도 대중매체로 얼마든지 접할 수 있는데 생각들이 있는건지'(sk*******), '학생들이 따라 하는 아이돌이 싸우고 죽이려드는 영상을 찍다니. 청소년 막장 폭력 비디오, 학교폭력 일진 레슨 비디오'(cro****) 등의 비판 글을 올렸다.
걸그룹 나인뮤지스 |
그로인해 일차적으로 기획사들의 책임론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높다.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윤정주 소장은 "신인 그룹일수록 여성은 섹시 코드, 남성은 폭력과 섹시 코드의 자극적인 내용으로 주목도를 높이려는 경향이 강하다"며 "대중문화를 이끄는 첨병에 선 기획사들이 생각해내는 게 고작 섹시와 폭력 밖에 없다. 싸이가 '강남스타일'로 히트한 건 재기발랄한 아이디어였다. 기획사 스스로 상상력의 빈곤과 다양성의 결여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반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울YMCA 시청자시민운동본부 한석현 팀장도 "아이돌 그룹 멤버 중에는 미성년자도 있고 이들의 뮤직비디오는 청소년들이 즐기는 콘텐츠란 점에서 제작자들의 기본 마인드에 문제가 있다"며 "하나의 작품이라지만 노래를 홍보하는 수단으로서의 역할이 큰 만큼 노이즈 마케팅을 의도하지 않는다면 19금 뮤직비디오를 제작할 필요성은 떨어진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K팝이 글로벌 콘텐츠로 성장한 시점에서 심의에 과도한 잣대를 들이대거나 온라인에 19금 콘텐츠를 공개하는 것 자체를 제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윤정주 소장은 "성인들이 소비하는 콘텐츠의 온라인 공개를 문제 삼기 힘들다"며 "지상파 방송과 인터넷 등 매체의 성격에 따라 다른 등급의 콘텐츠를 제공하고 청소년들이 성인용 콘텐츠에 접근할 수 없는 장치를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재 음반기획사들은 케이블채널에서 뮤직비디오의 '풀' 버전, 지상파 방송 3사에서는 1분-1분30초로 편집한 버전으로 심의를 받고 있다.
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가 지난해 8월부터 인터넷에 공개되는 뮤직비디오에 대한 사전 등급 심의를 시행했지만, 방송사 심의를 거칠 경우 영등위 심의를 따로 받지 않아도 돼 대부분 방송사 심의에 의존하고 있다.
영등위 관계자는 "대부분의 기획사가 영등위 심의가 아닌 방송사 심의를 받고 있어 인터넷에 공개된 뮤직비디오가 방송 심의대로 등급 분류 표시를 이행하는지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한석현 팀장은 "기획사들은 매체 성격에 따라 다른 버전의 영상을 만들어 호기심을 유발하는 측면이 강한데 온라인 버전에 한해서는 더 강화된 심의 장치를 만드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