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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충만-한국 현대미술의 물성과 정신성' 상하이전

posted Jun 27,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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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충만>전 상하이에서 항진하다

 

- 2014 해외문화원 권역별 순회사업 -

 

 

      포맷변환_1.jpg            포맷변환_2.jpg

       `숨 빛‘(Breath Hue-violet), 2011         장승택, Untitled-Poly Drawing G49, 2011

  

 

한국 현대미술의 정신적인 가치를 담은 미술전 <텅 빈 충만>전이 6월 27일부터 7월 18일까지 중국 상하이의 상해유화조각미술관(上海油?雕塑院美??, SPSI Art Museum)과 주상하이 한국문화원에서 개최된다. 이번 전시는 다양하고 수준 높은 한국 문화를 세계에 알리기 위해 기획된 해외문화원 권역별 순회사업의 일환으로서, 문화체육관광부(장관 유진룡, 이하 문체부)가 후원하고, 주상하이 한국문화원(원장 김진곤)이 주최, (재)예술경영지원센터(대표 정재왈)가 주관한다.

 

  권역별 순회사업, 동아시아와 동유럽을 겨냥하다

  올해 순회사업은 중국, 인도네시아 등, 동아시아 권역과 독일, 헝가리, 폴란드 등, 동유럽 권역을 대상으로 한다.

동아시아 권역은 지리적 근접성과 정치?경제적 영향력이 큰 지역으로서, 대중문화 중심의 한류가 크게 확산되어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이에 순수예술, 전통문화, 생활문화 등 다양한 영역에서의 쌍방향 교류가 전략적으로 요청된다.

동유럽 권역은 탈냉전 이후 단기간에 교류가 급진된 지역으로서, 자국의 문화예술에 대해 높은 자긍심을 지니고 있으므로 이를 존중하는 국제문화교류 전략이 필요하다.

  권역별 순회사업은 첫째, 전문가를 활용하여 수준 높은 프로그램을 국내에서 기획하여 양질의 작품을 통한 교류를 지향함으로써 국제문화교류의 전문성을 제고한다. 둘째, 문화원을 거점으로 인근 지역을 순회하고, 주재국 문화예술가와 문화기관이 협력하는 공동 프로젝트를 도입함으로써, 효율성을 제고한다. 셋째, 시장실패가 일어나기 쉬운 부문의 프로그램 공급을 통해 현지의 다변화된 수요에 부응함으로써 다양성을 제고한다.

세계인이 공감할 수 있는 한국의 미적 감수성을 선보이다

<텅 빈 충만: 한국 현대미술의 물성과 정신성>전은 한국 현대미술의 큰 축을 담당하고 있는 절제된 단색회화와 물질적 비워냄을 통해 충만한 정신세계를 담고 있는 항아리의 예술적 특질을 조명함으로써, 조선시대 선비정신과 이를 잇는 환원의적 태도를 고찰한다.

특히, 서양 미술의 주요한 경향으로 자리 잡고 있는 최소주의(미니멀리즘)와 한국 현대미술의 환원주의를 비교함으로써, 한국인의 정서적 감성이 서양과 형식을 공유하면서도 차별화된 내용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외형적인 유사성과는 달리 내용면에서는 비우면 작아지고, 작아지면 덜 채우고, 덜 채우기에 가벼워지고, 가벼워지면 충만해진다는 동양적인 생각을 담아내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고 권영우, 고 윤형근, 고 정창섭과 김택상, 문범, 민병헌, 박기원, 장승택, 정상화, 최명영, 하종현 등 11인의 회화 작품과 권대섭, 김익영, 문평, 이강효, 이기조 5인의 달 항아리 작품을 통해 외적 형식이 아닌 내적 형식으로서 내용을 담지하고, 형식 너머의 형식을 탐구하고 있는, 한국 현대미술의 대표적인 측면을 집중적으로 조망한다.

  상하이 미술관과 우리 작품이 절묘하게 어우러지다

  상하이의 상해유화조각미술관(The Shanghai Oil Painting and Sculpture Institute, 上海油?雕塑院美?? 주소; ??? 金珠路 111?近虹?路)은 2010년 중국의 대표적인 현대건축가 왕안(Wang Yan)이 설계해 개관한 미술관으로, 건축 전문잡지 아치데일리(ArchDaily)에서 상하이의 주요 건물 12곳 중 하나로 선정한 건축물이다. 여러 가지 건축적 제한요소들을 활용해 오히려 부지의 단점을 장점으로 살려낸, 층고가 넓고 높은 미술관으로서, 한국 현대미술의 대표적 경향인 단색회화의 환원주의적 성격을 잘 드러낼 수 있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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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평, 달 항아리,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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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범, Slow, Same, Slow #2205, 2003

 

 

<붙임> 전시 도록 서문

 

한국의 모던이즘, 또는 모더니즘적 전통

 

글 정준모(큐레이터, 미술비평)

 

달 항아리를 보며

 

멀리서 보면 둥글지만 가까이서 보면 모양이 찌그러지고 일그러진 달 항아리는 한국미술의 전통과 역사를 그리고 미학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게다가 투명한 유약의 우윳빛 색은 가히 색이 없는 듯하지만 드러나지 않는 자신의 색을 분명하게 지니고 있다. 그런데 이 항아리의 또 하나의 특징은 단순하게 보고 즐기는 완상용이 아니라 생활에서 사용하는 생활 속의 그릇이라는 것이다. 조선시대 후반 즉 19세기에는 접시와 함께 가장 많이 생산되던 생활도구였으며 지위와 부에 관계없이 반상을 가리지 않고 집집마다 한 두 개씩 놓고 쓰던 도자기다.

 

지름이 40cm가 넘는 원형의 백자 달 항아리는 우리나라 고유의 양식으로 고도의 기술을 요한다. 형태를 만드는 과정에서 흙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주저앉거나 허물어져 버린다. 그래서 큰 대접을 각각 만들어 마주보고 붙이는 방식으로 만든다. 위와 아래 부분으로 각각 반씩 나누어 만들어 초벌구이를 하기 전에 이 둘을 연결하여 초벌과 재벌구이를 하기 때문에 중간에 이음 자국이 보이는 경우도 있다. 이때 자연스럽게 서로 붙은 자리가 무게와 불을 때어 소성과정을 거치면서 수축하게 되고 그리하여 비정형의 원형이 탄생하는 것이다. 특히 도자기의 경우 소정과정에서 흙의 끝 부분부터 수축을 하면서 어떤 경우 마치 풍선의 중간부분을 실로 묶어 놓은 것같이 살짝 들어간 자국이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현대미술을 이야기한다면서 웬 도자기 또는 달 항아리 이야기냐고 반문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달 항아리를 보고 있노라면 한국의 70년대 중후반부터 지금까지 한국현대미술의 큰 흐름을 이루고 있는 일련의 서구미술의 경향과 형식적, 내용적으로 매우 닮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한국의 현대미술의 한 경향인 ‘단색회화’는 또한 미국이나 유럽의 5~60년대에 시작된 모노크롬(monochrome)회화나 조각과 형식적인 측면에서 매우 유사하다. 그리고 이런 형식적 유사성으로 인해 내용과 상관없이 모노크롬 화화의 일부나 또 다른 한 유형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하지만 마치 달 항아리가 재질에서는 서양의 도자기와 일치 할지 모르지만 그 기법이나 색채 그리고 내용 면에서 다르듯이 한국의 단색회화도 모노크롬과 외형적인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1960년대 들어 예술의 본질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이 반복되면서 서양의 모노크롬은 색채로 드러나는 인간의 감수성을 배제하는 하드에지 페인팅(hard edge painting)이나, 형태와 색채의 극단적인 절제를 통해 감정을 배제하고 이성의 극단을 표현한 미니멀 아트(minimal art) 등으로 나타난다. 이들의 특징은 감정의 정점, 비 물질화를 통한 물질의 기화, 무의미한 단색 화면을 통한 무의 세계는 너무나 완벽하게 감정을 배제한 순수한 경지를 표현하고 있다고 평가를 하지만 반면에 지나친 결벽증에 의한 삭막한 공백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한국의 단색회화는 반이성적이라는 점에서 모노크롬과 다르다. 따라서 그들 회화는 물질을 정신세계로 승화시켜 자연으로 회귀하려는 중성적 논리를 지녔다. 그래서 색채는 흰색을 주조로 하지만 은근하고 미세한 미묘한 뉘앙스를 지니는 중간색을 사용하는 것이 다르다. 또한 서구의 모노크롬은 평면보다는 조각이 더 적극적인 동시에 이들이 조각적, 입체적, 환경적인 측면이 강한 반면에 한국의 단색회화는 평면적인 속성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달 항아리의 조각적, 입체적 면모와 비교해 보면 그 차이를 짐작 할 수 있다.

 

따라서 굳이 형식적인 유사성을 든다고 하면 라이만(Robert Ryman, 1930~ )의 질감이 다른 갖가지 종이를 사용해서 촉감이 시각적으로 느껴지는 흰색의 화면이나 만조니(Piero Manzoni, 1933~1963)의 털이나 솜의 질감을 가진 흰색 파이버글라스 작품처럼 평면을 넘어 평면의 변화를 주려했던 작품들에서 형식적인 유사성, 친연성을 찾아 볼 수 있다.

 

하지만 서구의 모노크롬이 형식에 전통적인 회화적 방법론을 부정함으로서 절대정신을 구현하고자 했다면 한국의 모노크롬은 속이 빈 달 항아리처럼 완벽한 외형 즉 형식도 아니고 내용도 비어있는 그래서 사용하는 이가 물을 붓던, 기름을 넣어두건, 곡식을 담던 사용하는 사람에서 그 내용을 채우도록 방임한다는 점에서 그 성격이 확연하게 다르다.

 

하지만 지금까지 한국의 단색회화는 서구의 현대미술에 대한 수용의 과정에서 나타난 일련의 변종 또는 한국적인 수용의 성과라는 입장이나 또는 수용과 저항 사이에서 문화적 정체성을 찾는 과정에서 생성된 일련의 성과물로 치부되어 왔다. 따라서 이 전시와 글은 지금까지 한국의 70년대 미술을 단순하게 착종과 이식 그리고 변종으로서가 아니라 한국 현대미술의 가장 큰 특징이자 주도적인 미술의 한 경향인 단색회화를 ‘시각적 촉감’과 ‘시간’이라는 측면에서 조금 더 세세하게 집중적으로 읽어보고자 한다.

 

한국의 단색회화 또는 모노크롬의 특징

 

한국의 단색회화를 한국에서는 고도의 정신적인 세계의 구현으로 소박하고 단아한 한국의 선비문화를 통해 설명하고 이해하려했다. 또한 다색주의의 반대적 개념으로 탄생한 서구와 달리 한국의 단색회화는 한국 고유의 자연관과 물질관에 바탕을 둔 독창적 장르라고 생각을 해 왔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한국의 단색회화는 크게 보면 하나의 운동이고 경향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 속에는 다양한 양식들이 존재한다

.

그 형식들을 살펴보면 평면에 그리는 행위의 결과물인 일루전을 지지체와 일체화 시키는 경향과 표면 자체의 물성을 극대화시키거나 반복되는 패턴을 통해 표면을 더욱 표면이게 하는 경향, 반면에 안료를 지워감으로써 평면에 대한 회복과 질료의 비물질화를 시도하는 경향, 평면을 찢어 내든가 뚫어 입체적인 소통을 시도하거나 한지에 관심을 가지고 스며드는 수묵화의 침윤의 방법을 원용하거나, 그리는 행위의 반복을 통해 평면에 대한 자각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한편 그린다는 자체의 표현성을 지워가는 경우로 구분하고 있다.

당시 한국화단의 단색회화 열풍은 대단한 것이었다. 그래서 소위 ‘집단개성’화 하는 경향으로 나아갔다. 이 시기 한국은 현대미술의 열풍기였다. 따라서 당시 한국의 단색회화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외형적으로는 무채색 계열의 단색회화가 대종을 이루지만 매우 상이한 형식과 방법론을 동원해서 각각 단색에 도달하고 있는 것을 발견 할 수 있다. 특히 단색화라는 목적지에 도달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 지점에 도달하는 방식이나 재료, 기법은 매우 다양하다는 사실이다.

 

당시는 한국사회가 산업화의 기틀을 마련하고 막 농업국가에서 나아가려던 때이다. 이즈음 한국사회는 정치경제, 사회, 문화를 막론하고 서구화를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중시했고 따라서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라는 이런 흐름에 동참한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했다. 마찬가지로 서구 동시대 회화의 큰 줄기인 모노크롬과 형식적인 유사성을 지닌 단색회화의 흐름에 다양한 팔로워가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로 거의 모든 회화형식과 기법으로 단색회화에 도달하려는 경향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한국현대미술의 큰 특징이자 흐름인 단색회화를 보다 분명하게 규명하고 정의하기 위해서는 모노크롬 집단을 지금까지 거시적으로 보던 방식을 지양하고 보다 미시적이고 분석적인 시각과 집중하는 입장이 필요하다.

 

시각적 촉감

 

통상 한국의 단색 화가들은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한국의 전통 자연관을 바탕으로 수묵화와 서예의 정신인 여백, 관조, 기, 정중동, 무위자연, 풍류 등 등 총칭해서 ‘한국의 정신적 가치’를 내면화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가치란 한국의 전통사상과 정신의 모두를 거느리는 넓은 의미의 가치이다. 따라서 한국 단색회화를 이해하고 이야기 하는 범주를 너무 확대하는 나머지 오히려 더욱 더 모호하고 실체가 없는 언어의 향연으로 치달아가는 경향이 있다.

 

그런 점에서 필자는 한국의 단색회화의 가장 중요한 특징의 하나로 ‘시각적 촉감’을 상정한다. 대개의 사람들은 시각과 청각을 통해 외부의 정보의 받아들이는 때문에 촉감에 대해서는 그렇게 민감하지 않다. 하지만 촉감이란 원래 ‘외부의 자극이 피부 감각을 통하여 전해지는 느낌’으로 사물과 직접적인 접촉이나 만남을 통해 전달되는 감각이지만 시각적 촉감은 미술에서 중요한 요소의 하나이다. 왜냐하면 시각적 화면 고유의 물질적 재질감은 그림을 그림으로서 표현된 대상의 재질감으로 대체되어 나타나기 때문이다. 즉 유리잔을 그린 그림에서 유리잔의 질감을 느끼는 것은 시각적 촉감의 하나이다. 따라서 이는 미술의 중요한 요소인 양감과 함께 촉각적, 시각적인 효과를 배가 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단색회화에서의 시각적 촉감은 회화의 기본인 지지체와 그 위에 그린다는 행위를 통해 드러나는 물감, 안료의 물성에 의해 드러나는 질감을 눈으로 보면서 느끼는 것이다. 즉 손으로 만져보는 등의 촉감을 통하지 않고 시각적으로 공간적 환영을 보는 것이 아니라 화면의 질감, 그 자체를 느끼는 것이다. 따라서 본다는 것은 사물이나 그려진 감상의 대상으로서의 회화작품을 보는 것이 아니라 화면에 눈을 둠으로서 화면 그 자체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관객들은 이러한 시각적 촉감을 얻기까지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요한다. 왜냐하면 통상적으로 아무것도 그리지 않은 때문이다. 특정한 사물이나 대상을 그리고 있지 않아 일루전이 없는 때문에 화면자체에서 촉감을 느끼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치 각기 다른 유백색의 달 항아리 표면에서 각각 다른 질감과 촉감을 느낄 수 있는 것처럼. 같지만 미세하게 다른 그리고 그 미세함에서 커다란 다름을 찾아내거나, 그 다름을 확인하는 일이야 말로 시각적 촉감을 만끽하는 것이리라.

 

단색회화는 보지만 볼 수 없는, 보이지 않는 그림이다. 하지만 지지체 자체를 보는 순간 그 화면을 지지하고 있는 지지체 자체의 시각적 질감이 하나의 그림으로 완결된 작품이 된다. 평소와 같은 시각적인 체험을 통해 우리는 아무 것도 보지 못하지만 그동안 보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했던 것을 시각적 촉감을 통해 얻게 되고 알게 되는 것이다. 재현된 어떤 사물이나 대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보는 순간 사물이나 대상을 떠 올리거나 이미지에 더 이상 방해받지 않고 순수하게 화면에서 드러나는 지지체의 질감을 통해 본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와 보는 이의 감정적 일체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 서구의 모노크롬 회화와 다른 점이다. 마치 소리를 듣고 음색을 통해 악기를 알 수 있는 것처럼.

 

스스로의 회화

 

조각가 J.맥클라겐(John Harvey McCracken, 1934~2011)은 합판으로 만든 사각형 막대에 광택페인트를 칠해 합판 고유의 질감을 철판처럼 다른 느낌으로 변모시킨다. 이처럼 한국의 단색 화가들은 그림의 바탕이 되는 지지체로서의 평면을 전혀 다른 새로운 평면으로 치환시킴으로서 그림을 위한 지지체가 아니라 그림 그 자체를 또 다른 지지체로 탈바꿈 시킨다. 마치 페인트로 합판을 철판처럼 만들어 버리듯. 그림이 그려져야 할 지지체가 바로 지지체인 동시에 그림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그리기보다는 지지체를 가지고 또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는 지지체 자체를 탐구한다. 권영우는 부드럽지만 잘 찢어지지 않는 한지를 문질러 지지체와 하나로 만들어간다. 윤형근은 그림의 바탕이 되는 지지체에 붓질을 가하지만 붓질보다는 화면 즉 지지체와 일체화 한 흔적을 중시한다. 정창섭은 한지의 원료인 닥 펄프로 한지위에 한지를 쌓아올려 나간다. 하지만 이런 행위의 반복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지는 한지이다. 정상화는 물감을 쌓아 올리고 다시 뜯어내기를 반복하면서 그 틈과 틈을 메꿔 나간다. 물감은 쌓아 올라가지만 여전히 지지체로 남아있다. 하종현의 그리기를 잠시 멈추고 캔버스 뒷면에서 물감 밀어 올린다. 지지체 뒤에서 그리고 앞을 보는 다소 역설적인 방법을 구사한다. 하지만 그에게 캔버스는 여전히 캔버스 일 따름이다. 최명영은 재현적 회화의 한계와 모순 그리고 회화의 비 실재성을 자각하고 실재로서의 회화, 실재하는 회화를 추구한다. 그는 물질과 비 물질, 회화와 회화의 조건으로서의 평면사이에서 물감은 물질이 되어 하나의 오브제로서의 지지체로 현전한다. 문범의 평면은 평면이면서 동시에 질료로 가득한 평면인 동시에 덩어리로서의 입체이다. 회화의 한계를 넘어 그의 작업은 시간과 함께 스스로 자신의 조건 즉 지지체로서의 평면에서 입체로 바로 나아간다. 그렇게 하여 시각적 일루전의 착시현상을 빌지 않고도 스스로 작품로서의 자격을 획득한다. 반면에 김택상은 문범과는 반대로 쌓아 올린다. 지지체인 프레임 없는 천 위에 맑은 물이나 다름없는 매우 농도가 낮은 물감을 부어놓고 증발하기를 기다린다. 그리고 이를 계속해서 반복하다보면 어렴풋하게 자신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질료로서의 물감이 지지체인 화면과 흡수되면서 질료와 지지체가 하나로 통합된다. 장승택은 일견 매우 치밀한 계산 끝에 작품이 완성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의 작업은 얇은 필름지-폴리스티렌·폴리에틸렌·폴리프로필렌·염화비닐수지-에 각각 작업을 해서 이를 반복해서 중첩시켜 평면의 깊이를 보여준다. 그의 평면은 평면이 아닌 깊이를 지닌 역설적인 평면으로 마치 위치는 있지만 크기는 없는 점과 같다. 크기가 없는 점이 눈에 보이는 것처럼 그의 평면은 기하학의 점과 같은 존재인 동시에 점이 아닌 것처럼 평면인 동시에 지지체임을 증명한다. 박기원은 드로잉을 통해 평면을 더욱 평면적인 것으로 만든다. 화면의 깊이를 제거한 반복되는 연필 선은 평면이지만 되려 공간의 본질, 공간의 원형을 인식하게 해 주어 역설적으로 평면을 돋보이게 해 준다. 최소한 부피와 화면의 높은 순도는 ‘근본적인 내부로의 접근’을 허용한다. 민병현의 사진도 평면이다. 사진은 인화과정을 통해 상을 얻는다. 하지만 그 상은 실재하는 상이 아니라 실재하는 상을 옮겨놓은 평면에 옮겨 놓은 허상이다. 민병헌의 이러한 사진의 평면적 약점을 지적한다. 그의 사진은 사진이 얼마나 허구에 찬 일루전의 세계를 인가를 까발리는 동시에 평면과 이미지가 공존하는 새로운 사진의 존재방식을 제시한다. 이처럼 이번 전시에 참여하는 작가들은 조건 또는 바탕이 아닌 존재로서의 평면에 대한 지속적으로 관심을 보여 왔다. 그들은 새로운 독특한 방식을 통해 평면으로서의 회화의 한계상황과 평면구조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표출한다.

 

시시각각 그리고 시간

 

모노크롬 회화 즉 단색회화는 한국에서 1970년대의 주류미술로 자리를 잡았다. 오늘도 한국현대미술의 대표적인 경향으로 인정받는다. 이들 단색회화는 물질의 비 물질화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여기서 비 물질화란 “물질을 무화된 구조로 이끌어나가는 정신성”이라고 말하면서 서구의 모노크롬 회화나 미니멀 아트와 차별화를 시도한다. 바로 국제적인 조형양식과 한국의 독자적인 미술양식을 창조했다는 이식과 착종의 논리이다. 그리고 여기에 의하면 서구의 모노크롬이 사물 그 자체로의 환원이라는 개념으로 나아갔다면 우리 단색회화는 비 물질화를 통한 정신성을 추구하고 이를 실현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결과적으로 한국의 단색회화는 평면이라는 회화의 기본조건으로 환원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정신성으로 접근함으로써 단색회화는 평면이라는 구조적 형식과 동양적 정신성이라는 내용의 문제를 동시에 해결함으로서 자주성과 독창성을 획득하고자 했다. 하지만 회화에 있어서 정신성이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또 그 정신의 실체는 무엇이며 물질을 통해 물질을 극복함으로써 정신성을 구현되고 얻어지는 것일까. 여기서 물질은 정신성의 대척점에 있는 용어일 뿐 물질을 극복하면 정신성이 구현된다는 이야기는 논리의 비약이다. 그런 점에서 이상의 결론은 지역적이며 민족적인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 물질 중심의 서양과 정신중심의 동양이라는 이분법적 사고의 결과물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객관의 리얼리티를 추구했던 서구의 미술과 달리 동양예술에서는 주객이 융합되는 체험을 그려내는 원칙으로 삼았고, 여기에 작가의 고결한 인품이 더해져야 훌륭한 작품이 나온다고 믿었던 결과이다.

 

하지만 이는 서구미술과 동아시아의 미술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을 간과한 결과이다. 동서양의 풍경화를 비교해 보면 그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난다. 서양 풍경화는 마치 창밖 풍경을 바라보듯 거리를 두고 그린 그림이라면 동아시아의 풍경화인 산수화는 그림의 대상이 되는 풍경 속에 들어가 앉아 그리고 그 안에 들어가 보는 그림이다. 따라서 서구의 모노크롬은 그리는 이도 보는 이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결국 서구의 회화는 사물의 리얼리티를 통해 사물의 본질을 보여주거나 자신 또는 자아의 실체를 드러내고자 했다면 동아시아와 한국의 회화는 일관되게 대상과 작가가 융합되고 그림과 관객이 일체화하는 체험을 그려내고자 했다. 또한 동양의 풍경화는 이상향인 무릉도원을 그린 가상현실의 세계이다. 서구의 모노크롬 회화가 회화의 본질 또는 근원적인 실체에 질문과 이에 대한 답이라면 동아시아의 전통은 고정불변의 실체는 없다는 것이다. 모든 존재와 사물과 현상은 유동적이며 변하는 것으로 따라서 본질을 추구하기보다는 과정에 있는 진행형이다.

 

따라서 한국의 단색회화는 모노크롬이나 미니멀한 회화와 달리 본질을 추구하기보다는 꾸준하게 과정을 탐색한다. 따라서 작품은 결과물이나 완성품이 아니라 지속되는 과정에서 잠시 휴지기에 있는 것이다. 따라서 단색회화는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를 향해서 움직이는 것이며 시간에 따라 움직이고 운동에 따라 변화하는 과정의 산물이다. 따라서 단색회화는 사물의 본질이나 자아의 정체성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작품과 작가, 작품과 관객, 작가와 관객의 관계이다. 결국 단색회화는 시간이 경과하면서 행위의 흔적이 중첩되고 퇴적된 평면이자 시간의 축적이자 현재라는 한 순간에 존재하는 실존인 동시에 찰나인 것이다.

 

텅 빈 충만

 

따라서 한국의 단색회화는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움직이는 것이며 변화하는 것이다. 그 변화의 과정 속에서 잠시 우리 눈에 드러나는 존재인 셈이다. 그리고 작품은 그 존재의 순간을 박제화 함으로서 작품으로 드러난다. 매우 이율배반적인 셈이다.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영원하지만 순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때문에 서구적인 관점에서 보면 동아시아의 전통회화나 단색회화는 모두 회화의 범주에 들어갈 수 없다. 하지만 이런 단색회화가 한국인의 정서를 반영하고 사유공간에 존재한다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과정으로서의 예술을 이해해야만 한다. 물론 서구의 프로세스아트(Process Art)와는 형식적인 측면에서 유사하지만 과정의 한 단면 또는 과정의 순간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는 다르다.

 

이런 문화적 차이로 인해 서구의 사고로는 ‘텅 빈 충만’이라는 역설적인 말을 이해 할 수 없다. 비워야 채울 수 있다는 말은, 떠나야 돌아올 수 있다는 말과 같다. 가득 차 있는 경우 어떤 것도 담을 수가 없다. 넘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로운 것을 계속 담기위해서는 계속해서 내다 버려야 한다. 마치 용량이 가득 찬 컴퓨터 하드에 새로운 문서나 파일을 저장하려면 필요 없는 것들을 삭제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때문에 한국의 단색회화는 합리적이고 개념적이기 보다는 관념적이다. 중요한 것은 마음이고 생각이며 감성이기 때문이다. 동아시아에서 합리적이란 관념 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모든 것은 정지한 것이거나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과정으로 현재 진행형이다. 그래서 움직이고 변화한다.

 

다시 한국의 달 항아리로 돌아가 보도록 하자. 달 항아리는 움직이기 않되 움직인다. 또 모양도 시시각각 변화한다. 왜냐하면 보는 사람이 보는 방향에 따라 모양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는 달 항아리가 도자기임에도 불구하고 좌우 대칭이 맞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또 달 항아리의 유백색 피부는 자연광 아래서 보는 것과 인공조명아래서 볼 때와 그 색이 다르다. 흐린 날의 백색과 맑은 날의 백색은 완연하게 다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달 항아리가 놓인 환경과 조건에 따라 또 보는 이의 기분과 마음에 따라 다른 표정을 짓는 것을 알 수 있다. 말 그대로 천의 얼굴을 가진 셈이다. 이렇게 달 항아리에서 보는 순간순간의 시간의 절단면을 경험할 수 있듯이 한국의 모노크롬 회화도 시간의 단면을 보여준다.

 

달 항아리의 형태가 주는 매력은 크다는 것이다. 크고 우람해서 무언가 풍성한 느낌, 당당한 느낌을 준다. 비록 속이 비었을망정 가득하다. 여기에 약간은 일그러진 찌그러진 모습이 그 당당함을 상쇄시켜준다. 너무 잘 난 것 같지만 빈틈이 있어 여유로움이 묻어난다. 슬쩍 기대거나 어리광을 부려도 받아 줄 것처럼 넉넉하다.

 

이런 달 항아리의 모양은 도공이 만들어 준 것이 아니다. 달 항아리 스스로가 만든 것이다. 너무 커서 둘로 나누어 이어 붙이면서 스스로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약간 찌그러진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도자기가 가마에 들어가 구어지면서 다시 줄어든다. 즉 만든 이의 마음대로 달 항아리의 모양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도공의 힘으로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는 순간이 도래하는 것이다. 이때 달 항아리는 불과 만나 스스로 자신의 모양을 결정짓는다. 사람이 만들고 자연이 완성시키는 셈이다. 이렇듯 한국의 단색회화도 시간이 경과하면서 작가의 행위 또는 일이 지지체 위에 축적되면서 스스로 자신의 모습을 갖추어 진다.

 

여기에 비어있는 달 항아리에 무엇을 담을 것인가는 순전히 도공의 마음이나 필요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보고 쓰는 이의 몫이다. 달 항아리에 무엇이 담겨있는 지 궁금해 하고 상상하는 것도, 무엇을 담을 것인지 곰곰 생각하는 것도 도공의 몫이 아니라 보는 이의 몫이다. 이는 한국의 단색회화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결론은 내용은 네 것이다. 당신의 몫인 셈이다. 따라서 단색회화의 주인은 당신이다.

 

- 전시 개요 -

 

? 전시 제목: <텅 빈 충만-한국 현대미술의 물성과 정신성>전

? 전시 기간: 2014년 6월 27일∼7월 18일

? 전시 장소: 상해유화조각미술관(SPSI Art Museum), 주상하이 한국문화원

? 참여 작가

- 회화: 권영우, 김택상, 문범, 박기원, 윤형근, 장승택, 정상화, 정창섭, 최명영, 하종현

- 사진: 민병헌

- 도자: 권대섭, 김익영, 문평, 이강효, 이기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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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표 기자 su1359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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