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전직 기자출신으로 영국 정부 관료로 활동하다 경질된 마틴(스티브 쿠건). 러시아 역사를 다룬 책을 쓸지 말지를 놓고 고민하던 중 수녀원에 의해 아들을 미국으로 강제 입양 보내야 했던 필로미나(주디 댄치)의 이야기를 듣는다.
필로미나를 만나고 나서 '이야기'에 대한 확신이 선 그는 신문사 고위 간부를 설득하는 데 성공, 필로미나와 함께 미국으로 떠난다. 오랜만에 취재 실력을 발휘하던 마틴은 필로미나의 아들이 미국 정부의 법률자문가로 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나 아들이 동성애자였고 에이즈로 수 년전 사망했다는 사실을 인지하면서 필로미나는 취재를 거부하고, 필로미나의 이야기를 기획 특집용으로 쓰려고 했던 마틴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간다.
'필로미나의 기적'은 궁핍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돈을 받고 수천 명의 아이를 이민 보낸 아일랜드의 슬픈 역사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전직 BBC 방송 기자 마틴 식스의 '잃어버린 아이'가 원작이다.
죽음을 앞둔 작고 늙은 아일랜드 할머니가 강제 입양 보낸 아들을 찾으려고 벌이는 여행기가 절절하다. 비행기에서 먹는 오렌지주스가 공짜인지도 모르고, 호텔 뷔페는 처음인 양 좋아하는 필로미나의 모습은 아이 같으면서도 어떤 서글픔 같은 감정을 자아낸다.
냉소적인 기자 마틴에게 끊임없이 조잘대는 모습은 귀엽고, 아일랜드 여성이지만 '참을 인'(忍)자를 가슴에 품고 사는 듯한 모습에선 어딘가 우리네 어머니의 얼굴이 겹치기도 한다.
"단 하루도 아들 생각을 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는 필로미나가 세상의 부조리를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이는 명문대를 나온 기자 출신 마틴이 수녀들의 몰염치에 분노를 터뜨리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영화는 이야기의 유기적인 흐름과 캐릭터의 대비를 통해 입양문제를 자연스럽게 비판한다. 물 흘러가듯 유유히 이야기를 짠 '더 퀸'(2006)의 스티븐 프리어스 감독의 세심한 연출력과 각본의 힘도 돋보인다.
영국의 명배우 주디 댄치가 만들어가는 필로미나의 모습이 정겹다. '007' 시리즈에서 제임스 본드의 상관인 'M'의 강철같은 같은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주로 영국 코미디 영화와 드라마에 잘 나오는 스티븐 쿠건은 이번에 기자 출신 독설가로서의 면모를 보여준다. 그는 제작·주연·각본의 1인 3역을 맡았다.
영화는 제70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각본상을 받았으며 올해 아카데미영화상에서 작품상 등 4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4월 10일 개봉. 12세이상관람가. 상영시간 98분.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4/03/26 07:02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