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룡 교수의 '고려 후기 한문학과 지식인'
(서울=연합뉴스) 임기창 기자 = 고려 후기 한문학 연구에는 일종의 '주류 담론'이 있다고 한다. 이른바 '신흥사대부론'인데, 거칠게 말하면 이규보-이제현-이색으로 이어지는 신흥사대부 계보를 중심으로 역사를 엮고 구성하는 접근법이다.
1970년대 이래 조선 건국세력을 모델로 설정된 신흥사대부론은 사상에서는 성리학, 계층은 민중의 현실을 이해하는 중소지주 출신 지식인, 대외적으로는 '반원친명'(反元親明)을 내건 민족적 기치 등을 핵심 원리로 했다.
'고려 후기 한문학과 지식인'을 출간한 김승룡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는 신흥사대부론을 "고려 후기 한문학 연구자들이 안은 큰 빚"으로 표현한다. 그만큼 영향력이 크다는 뜻인데, 이 교수는 이를 인정하면서도 다른 접근법을 모색한다.
"사람의 삶보다 이론이 앞서지 않았나"라는 의문을 품은 김 교수는 고려 후기 한문학의 모습이 신흥사대부론의 3가지 원리에 따른 해석을 거친 것보다는 다채로웠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그런 맥락 안에서 그는 가문·국가·민족·인문·고전·경계·여성·가난·미학의 9개 관점을 두고 당시 지식인들의 작품을 다시 들여다보며 고려 시대에 대한 재해석을 시도한다.
이를 통해 김 교수는 이규보의 '동명왕편'에서 성리학의 완고함이 아닌 다신(多神)주의적 태도를 발견하고, 삼국유사가 단절-포용, 삶-죽음, 사랑-욕망 등 다양한 요소들이 서로 부딪히며 의미를 만들어내는 '경계의 사유'를 담았음을 드러낸다.
이어 원 제국이 실질적으로 고려를 지배한 1275~1351년을 '원간섭기'로 두고 고려 후기 지식인들의 문학세계를 새로 조망하는 거점으로 삼았다.
당시 활동한 인물들은 고려 한문학 연구에서 기존 신흥사대부론의 민족적 원리에 따라 시대의 '주변'쯤으로 치부됐다.
여기서 저자는 고려 시기의 문학적 성과를 정리하고자 조선시대 편찬된 '동문선'을 언급한다. 그러면서 이런 국가적 간행물에 엄선된 인물과 작품이라면 비록 우리에게 익숙지 않더라도 그 실존 자체에 의미를 둘 필요성을 제기한다.
저자는 이런 고민을 통해 "과거의 전통을 체득하고 미래 사회의 전망을 기획하며 세상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실천한 지식인들의 구체적인 삶을 더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음을 느끼게 됐다"고 말한다.
지식을만드는지식. 696쪽. 3만8천원.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4/01/24 08:10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