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또 하나의 약속' 연출로 8년 만에 복귀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주변의 만류가 많았습니다. 과연 투자받을 수 있겠느냐? 어떤 배우가 출연하겠느냐? 설사 다 만든다고 해도 극장에 걸 수 있겠느냐? 우려가 많았어요. 하지만 주변의 걱정을 다 고려하다 보면 영화는 못 만들죠. 일단 시나리오부터 쓰자고 생각해 시나리오를 썼고, 그 시나리오를 배우들에게 주니 배우들이 하겠다고 하면서 여기까지 오게 됐습니다."
다음 달 6일 개봉하는 '또 하나의 약속'을 만든 김태윤 감독은 영화를 만들게 된 과정을 이렇게 소개했다. 지난 21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의 한 카페에서 가진 인터뷰 자리에서다.
'또 하나의 약속'은 우리 사회에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대기업을 비판적인 시선으로 조명한 장편 영화다. 삼성전자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사망한 고(故) 황유미 씨의 실화를 소재로 했다.
김 감독은 지난 2011년 6월 언론을 통해 고인의 아버지 황상기 씨 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행정소송 판결 기사를 접했다. 시나리오 작가로서 이 이야기에 관심을 뒀던 그는 황씨를 직접 만난 후 영화로 만들기로 했다. "우리 사회에 필요한 이야기였고, 당시 자괴감에 빠져 있던 자신에게도 필요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출발이 좋았던 건 아니다.
캐스팅까지는 그럭저럭 굴러갔지만, 지인들의 예상대로 투자받기가 대단히 어려웠다. 그의 말처럼 "뛰어난 감독도 아니었고, 소재도 민감했던" 탓이다. 결국, 시민의 성금을 모으는 제작두레 방법밖에 없었다.
김 감독은 팟캐스트 방송에 나가서 홍보도 하고, 이곳저곳을 뛰어다녔다. "너무나 힘들게" 모은 종자돈 1억 2천만 원으로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최대한 아껴서 찍었으나 돈은 금방 떨어졌고, 그때마다 "기적처럼" 시민의 모금과 개미투자자들의 실탄 지원이 있었다.
제작진은 제작두레 등 시민 모금 운동과 개인들의 직접 투자로 15억 원을 모금했다. 순제작비(10억)는 물론 프린트와 광고(P&A) 비용을 포함하는 총제작비 전액을 모았다. 제작두레 방식으로 제작비 전액을 모은 상업영화는 '또 하나의 약속'이 유일하다.
"편집과 사운드 믹싱 등은 외상으로 했어요. 부산영화제에서 완성본을 상영했는데 반응이 괜찮았고 작년 연말, 우리 영화에 투자했던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시사회를 열었는데 반응이 좋았습니다. 그 이후부터 개미 투자자들이 모였고, 결국 제작비를 웃도는 금액을 모았습니다."
영화에서 삼성그룹은 이야기의 주요 동력이다. 삼성은 우리나라의 성장동력을 견인하기도 했지만, 경영권 편법 승계 논란, 떡값 검사라는 말이 회자했던 '안기부 X파일 사건', '삼성 비자금 사건' 등 각종 논란의 중심에 섰던 그룹. 한국사회의 빛과 어둠을 동시에 드러내는 기업이다.
영화에서 진성그룹은 백혈병으로 딸을 잃은 한상구(박철민)가 산재신청을 하지 못하도록 온갖 회유와 겁박을 한다. 하지만 주 팀장(이경영)처럼 묵묵히 자기 일을 하는 성실하고 책임감 강한 인물도 진성에 근무한다.
"삼성을 '절대악'으로 그리려 하진 않았습니다. 자기네 공장에서 백혈병 환자가 나오길 바라는 사장이 존재할까요? 그곳이 삶의 터전인 사람들도 있습니다. '절대악'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뭐가 되나요? 그래서 주 팀장처럼 병에 걸려도 회사에 다니는 사람이 있고, 회사의 발전을 위해서 법정에 나오는 캐릭터도 있는 거죠. 애초 사건을 덮으라고 지시하는 상관을 등장시키려고 했는데, 좀 작위적인 것 같아서 시나리오에서 뺐습니다."
'잔혹한 출근'(2006)을 연출하며 충무로에 입성한 김 감독은 그동안 '인사동 스캔들'(2009), '용의자 X'(2012) 등 주로 장르 영화의 각본을 쓰며 생업을 이어갔다. 그러나 요즘은 장르영화보다는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영화들에 더 끌린다고 한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장르영화의 시나리오를 쓰는 게 재미가 없더라고요, 또 장르영화는 잘하는 사람들이 워낙 많은 분야이고요.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사회적인 이야기에 끌립니다. 다음 영화요? 이번 영화가 잘돼야 다음 영화를 찍을 수 있겠죠."(웃음)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4/01/22 07:00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