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문화의 안과 밖' 강연
(서울=연합뉴스) 임기창 기자 = "우리 사회는 역사상 어느 때보다 큰 외면적 번영을 누리고 있다고 할 수 있지만, 정신적 파괴라는 점에서는 2차대전 후 독일의 시련을 능가한다고 봅니다."
한국의 대표적 인문학자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는 18일 서울 종로구 안국동 안국빌딩 W스테이지에서 열린 '문화의 안과 밖' 강연에서 "지금의 한국 사회가 사실상 '정신적 폐허' 속에 있다"며 이같이 지적했다.
김 교수는 이날 강연에서 독일의 시인 한스 카로사가 전후 독일의 참상과 함께 재건에 필요한 정신적 조건들을 그린 시 '해지는 땅의 비가(悲歌)'를 통해 정신과 문화, 기억, 문명, 공동체 등 화두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풀어냈다.
그는 "서양에서는 셰익스피어나 괴테를 읽어도 오늘을 사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하지만 한국에서 지금 심청전을 갖고 누가 효도를 말하나"라며 "마음속에 계속돼야 하는 정신적 성찰이 누가 폭격하지 않아도 다 없어졌다는 점에서 우리도 정신적으로는 전후 독일과 같은 폐허 속에 있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인간적 삶의 구체적 실현으로서 문화나 문명은 전쟁과 전체주의에 의해 없어지기도 하지만 그것을 지탱하는 정신의 빈곤이나 소멸로 내면 폭발(implosion)을 겪을 수도 있다"며 "이런 점에서 카로사의 시가 우리 상황에서 완전히 동떨어진 상황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 사회는 개인의 기억이나 역사쯤은 완전히 말소해도 상관없는 것으로 취급하고 있다"며 "옛 삶의 자취가 파괴되고 모든 것이 부정되는 곳에서 사람들이 길을 잃고 헤매는 것은 당연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거대대중화'(massification)가 진행되는 오늘날 산업사회에서도 삶과 자연, 학문 등 삶의 요소들이 균형을 이루는 '유기적 공동체'의 정신이 보전될 수 있을 것이라며 "새로운 공동체 가치의 모색과 정립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 등 국내 학자 7명이 기획한 '문화의 안과 밖' 강연은 내년 1월10일까지 1년간 매주 토요일 50차례에 걸쳐 진행된다.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4/01/18 20:05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