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모리대 "1907년도 원본에 대해선 아는 게 없다"
혜문스님 "친필본이 원본 되는 거 아닌가"
(애틀랜타·서울=연합뉴스) 김재현 특파원·설승은 기자 = 미국 애틀랜타의 에모리대에 보관된 윤치호(1865~1945)의 애국가 가사 친필본이 애초 알려진 구한말이 아닌 애국가가 대중화된 광복 후에 가족들 요청으로 작성된 것으로 확인됐다.
윤치호가 1907년 만들었다는 애국가 가사 원본 또는 초본이 아니기 때문에 윤치호의 애국가 작사설을 뒷받침하는 사료로 보기에는 무리라는 지적이 나온다.
에모리대 관계자들은 17일(현지시간) 도서관에서 연합뉴스 특파원과 만나 "우리가 소장하는 윤치호의 애국가 친필본은 사람들이 말하는 1907년도 원본(very original one)이 아니다"라며 "친필본 앞면에는 '1907년 윤치호 작사'로 적혀 있지만 뒷면에는 '딸의 요청(request)을 받고 1945년 작성했다'고 영어로 쓰여 있다"고 밝혔다.
귀중본 자료실의 로즈매리 매기 실장은 "윤치호의 유족들은 1997년 우리 학교에 친필본을 기증할 때 1945년에 윤치호가 딸의 부탁을 받고 쓴 것이라고 분명히 말했고, 우리가 가진 정보는 이것이 전부"라며 "1907년에 작성됐다는 원본이란 것에 대해 우리는 전혀 아는 게 없다"고 말했다. 진저 스미스 도서관 대외협력국장은 "다만 1945년도 친필본이 윤치호가 쓴 것인지는 복수의 검증을 거쳐 사실로 확인됐다"고 덧붙였다.
일레인 저스티스 대변인은 "1945년도 친필본은 학칙에 따라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외부에 사진촬영을 허용한 적이 없다"며 "따라서 (한국 언론에) 공개된 친필본 사진이 에모리대에 있는 1945년도 것이라면 우리가 기증을 받기 전에 누군가 찍은 것이 돌아다니는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윤치호 유족이 2000년대 초까지 기증한 물품에는 애국가 가사가 수록돼 1908년에 출판된 '찬미가'라는 책, 유족이 애국가 가사를 새겨넣은 흰색 티셔츠, 윤치호에 관한 신문 기사 스크랩북이 포함돼 있다.
해당 기사에는 6·25 전쟁 후 윤치호의 유품이 대부분 연세대에 기증된 것으로 나와 있다.
이에 앞서 '문화재 제자리 찾기'의 혜문 스님은 17일 기자회견에서 윤치호의 애국가 작사설을 뒷받침하는 가사 '원본'이 에모리대에 보관돼 있다며 이달 말 민주당 안민석 의원 등과 함께 에모리대를 방문해 환수 의사를 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혜문 스님이 말하는 '원본'이 윤치호가 광복 후에 작성한 것으로 확인됨에 따라 이 문서가 어떤 역사적 가치가 있는지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한 재미 사학자는 "애국가 작사자가 윤치호냐 아니면 다른 사람이냐를 가르는 결정적 자료는 1907년 원본 또는 초본의 존재 여부"라며 "애국가가 이미 온 민족에게 알려진 시기에 지탄을 받던 친일파 인사가 자식에게 자필로 써준 것이 온 국민이 공들여 환수할 가치가 있는 중요 문화재인지 의문이 간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혜문 스님은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작사가가 쓴 친필본이 원본이 되는 것 아닌가"라며 "정확히 말하자면 친필본의 원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1907년도 원본의 존재 여부와 관련해선 "그런 건 없을 것"이라며 "일제강점기인데 애국가를 자기가 적었다 하고 하면 당장 잡혀가지 않았겠나"라고 반문했다.
환수 가치에 대해서는 "애국가를 자필로 적은 문서가 이것(에모리대 소장본)이 유일할 거라서 의미가 있다는 것"이라며 "애국가 작사가로 추정되는 사람이 다수인데 이들도 친필본은 남기진 않았고, 1907년 윤치호가 편찬한 찬미가 출판본에도 애국가가 수록됐지만 이것도 그가 직접 쓴 게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나도 애국가를 윤치호가 혼자 지었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며 "윤치호, 안창호를 비롯한 다수의 민족지사가 공동 창작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4/01/18 15:38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