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이 83㎝… ‘거대 청자의 빛’
이화여대박물관에서 ‘청자전’이 열리고 있다. 전시장 맨 마지막에 마련된 ‘실패한 청자가 눈에 띈다. 도자기는 불의 세기에 따라 무수한 실패작이 나올 수밖에 없는데, 하물며 높이 1m에 가까운 청자라면 가마 안에서 주저앉기 십상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완벽한 형태로 당당히 자태를 드러낸 완성작의 의미가 빛날 수밖에 없다. 이화 창립 131주년 기념 소장품 특별전인 이번 전시에서는 완, 주자, 향로, 매병 등 기종별로, 음각 양각 투각 철화 상감 등 장식기법별로 탁월한 유물들이 총출동했다. 무엇보다 1958년 박물관에 입수된 전북 부안군 유천리 가마터에서 수습한 청자와 파편들을 대량 공개해 의미가 크다.
유천리 청자가 공개되기는 83년 이후 처음이다. 이번에는 그때 미처 정리하지 못한 파편을 재정리하고 수리·복원했다. 유천리는 고려시대 전남 강진과 쌍벽을 이루던 가마로 왕실에 공급되는 물품을 생산했을 것으로 보인다. ‘유천리표 청자’는 특히 크기에서 타 지역 생산 청자를 압도한다. 고려청자로는 현존 최대 크기인 높이 83㎝ 청자상감용무늬의 대형 매병이 나와 시선을 사로잡는다. 보통 고려청자 매병의 배가 넘는 높이다.
메우지 못한 파편 구멍이 듬성듬성 있지만 거친 파도 무늬에 용이 새겨진 대형 복원 청자를 보노라면 고려청자에서는 결핍된 것으로 여겨졌던 크기에 대한 열망이 오롯이 느껴진다. 13∼14세기 원의 영향을 받아 점점 커졌던 고려청자의 대형 기종은 매병 장고 등 다양하다. 과형병(오이무늬)은 아담한 사이즈의 세련된 기형인데, 유천리에서 출토된 것은 뻥튀기 한 듯 큼지막해 흥미롭다. 큰 면적에 대나무 연꽃, 정원에서 서(書)·화(畵)·락(樂)·무(舞) 등 4가지 즐거움을 누리는 문인들의 모습을 차례차례 돌아가며 새겨 넣은 멋들어진 풍류 매병도 이 전시회에서 만날 수 있다.
권병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