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 미국판 스파이크 리가 메가폰 잡아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한국영화 가운데 해외에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은 아마도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2003)일 거다. 칸영화제에서 우리 영화로는 처음으로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이 영화는 두 남자의 복수 과정을 화려한 미장센(화면구성)과 폭력적인 소재로 담아낸 수작이다.
영화는 결국 할리우드로까지 넘어갔고, 미국의 거장급 감독인 스파이크 리의 손을 거쳐 미국판 '올드보이'로 탄생했다. 박 감독에겐 다행스러운 일일까? 스파이크 리 감독의 올드보이에 '원작보다 나은 리메이크작'이란 수식어는 붙이기 어려울 것 같다. 미국판 '올드보이'는 원작을 거의 그대로 답습하면서도 새로운 에너지는 불어넣지 못했기 때문이다.
술과 천박한 행동 탓에 큰 거래를 망친 광고회사 직원 조 두셋(조슈 브롤린). 만취한 그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여인에게 납치돼 어느 골방에 갇힌다. TV를 통해서만 세상 일을 알 수 있게 된 그는 자신이 납치된 사이, 아내가 잔인하게 살해되고 딸은 입양됐다는 사실을 알고 절망한다. 술로 고통을 달래던 그는 딸을 위해 탈출을 결심한다. 두셋은 운동을 하고 혹시 만나게 될지도 모를 딸에게 편지를 쓰면서 시간을 보낸다. 그렇게 보낸 시간이 자그마치 20년. 그러던 어느 날 두셋은 천장에서 쏟아진 최면 가스에 중독돼 정신을 잃고, 깨어보니 바깥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야기의 줄기는 그대로 가져오되 어떻게 현지화시키느냐가 리메이크의 관건인데, 미국판 올드보이가 현지의 독특한 분위기를 담아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다만, 미국의 뒷골목을 배경으로 하고, 원작의 화려함과는 다른 투박함과 거친 정서가 나름대로 살아있다는 점은 돋보인다.
미국판 '올드보이' 중 장도리 신 |
눈길을 끄는 지점은 역시 그 유명한 장도리 신(Scene)이다. 박 감독의 원작이 피 튀기고 살이 찢어지는 폭력적인 장면을 우아하고 유려하게 보여줬다면, '똑바로 살아라'(1989), '말콤 X'(1992) 같은 정치·인권 영화에서 능력을 발휘했던 스파이크 리 감독의 장도리 신은 매우 거칠고 투박하면서도 유머러스하다. 박 감독의 장도리 신이 횡적인 곡선에 가깝다면 스파이크 리 감독의 장도리 신은 종적인
직선에 더욱 가깝다.
엔딩 부분은 원작보다 훨씬 담백하다. 박 감독의 '올드보이'가 마치 그리스 비극처럼 비극적 결론을 향해 휘모리장단에 맞춰 꾸밈음을 곁들여 정성껏 세공했다면 이미 익히 알려진 '반전'을 토대로 마지막 장면을 꾸며야 했던 스파이크 리 감독의 엔딩은 단순하고 담백하다.
배우들의 연기는 원작에 미치지 못한다. 조슈 브롤린의 연기가 훌륭한 편이지만, 에너지가 폭발했던 최민식의 연기만 못 하고, 살토 코플리의 연기는 괴기스러웠던 유지태에 더더욱 근접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자아낸다.
1월16일 개봉. 청소년관람불가. 상여시간 104분.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 중 한 장면 |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4/01/13 07:00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