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신창용 기자 = 소설가 최인호는 스스로 '고통의 축제'라고 명명했던 5년이라는 긴 투병의 시간을 거쳐 지난 9월 25일 홀연히 '별들의 고향'으로 떠났다.
작가는 '축제'라고 표현했지만 그라고 해서 죽음 앞에서 어찌 외롭지 않았겠는가. 어찌 두렵지 않았겠는가. 부인 황정숙 씨는 최근 유품을 정리하다가 남편의 책상 위에 포도송이처럼 남은 하얀 눈물 자국을 발견했다.
최인호가 고통과 마주하며 눈물을 흘렸던 그 방, 쌓인 책더미 사이에는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 쓴 그의 육필 원고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육신의 아픔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그의 펜을 꺾지는 못했다. 오히려 최인호는 깊은 밤, 탁상 앞에 앉아서 쓰고 또 썼다. 그것이 고통을 축제로 승화시키는 그만의 방법이었다.
최인호가 별세 직전까지 작성한 미공개 육필 원고 200매를 포함해 그를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이들의 편지를 담은 유고집이 발간됐다. 책의 제목은 '눈물'.
"오늘은 2013년 새해 첫 날입니다. 아이들이 찾아온다고 합니다. 주님, 제게 힘을 주시어 제 얼굴에 미소가 떠오를 수 있게 하소서. 주님은 5년 동안 저를 이곳까지 데리고 오셨습니다. 오묘하게. 그러니 저를 죽음의 독침 손에 허락하시진 않으실 것입니다. 제게 글을 더 쓸 수 있는 달란트를 주시어 몇 년 뒤에 제가 수십 배, 수백 배로 이자를 붙여 갚아 주기를 바라실 것입니다."(261쪽)
'눈물'은 문학을 넘어 우리나라 문화계 전체의 지형도를 바꾼 우리 시대의 거인 최인호가 아니라 병마의 고통 속에서 신에게 손을 내미는 한 인간으로서의 최인호, 그의 내밀한 이야기다. 1987년 천주교에 귀의한 최인호 베드로의 영적 고백이다.
누구나 죽음 앞에서는 초라한 모습을 보이지만, 작가는 자신의 외로움과 두려움을 애써 포장하려 들거나 그로부터 도망치려 하지 않았다. 그는 절망했지만 하느님 안에서 다시 일어섰다.
"감히 말씀드리면 저 역시 '깊은 고독' 속에 있습니다. 무엇보다 두려운 것은 그 고독이 '하느님께서 과연 계신 것일까 하는 악마적 의심'마저 불러일으킨다는 것입니다. 이 고독과 의심의 두려움은 제게 있어 이제 시작에 불과할 것입니다."(237쪽)
"이 생명의 저녁에 나는 '빈 손'으로 당신 앞에 나아가겠나이다."(251쪽)
고인은 자신의 죽음을 예감한 듯 마지막 편지를 띄우며 사랑하는 벗들과의 이별을 준비한다.
"그러나 사랑하는 벗이여.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억지로, 강제로 내 생명을 연장시키려 노력하지 말 것을 부탁합니다."(263쪽)
'사랑하는 벗이여'로 시작되는 이 책은 동갑내기 동무 이해인 수녀, 배우 안성기, 감독 이장호, 작가 오정희, 김홍신 등 최인호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보내온 감동의 편지로 문을 닫는다.
특히 안성기는 고인이 세상을 떠나기 보름 전인 9월 10일 아침에 구술한 시와 같은 짧은 글을 소개했다.
"먼지가 일어난다/ 살아난다/ 당신은 나의 먼지// 먼지가 일어난다/ 살아야 하겠다// 나는 생명/ 출렁인다."(277쪽)
여백. 352쪽. 1만3천800원.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12/24 13:56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