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미모 제일의 무술 여배우 강청! 지금은 무엇을?
부르릉 부르릉 2톤 정도의 트럭이 흰 도복을 입은 별로 크지도 않은 사람의 배위를 거뜬히 넘어가자 TV 브라운관을 보는 전국 팬들의 환호와 갈채가 소리가 요란하다. 이어 손을 가볍게 훌훌 털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태연한 사람은 남자아닌 미모의 여인이라는데 더욱 놀라게 했다.
이는 1977년 초 묘기대행진의 TV프로에서 차력인 강청(본명 강원희)의 시범이었다. 그녀는 미모의 얼굴에 놀랄만한 실력으로 영화에 히로인으로 발탁되어 일약 주연스타로 각광을 밭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녀가 스크린에서 각광을 받고 스타덤에 오를 즈음 그녀는 자취를 감추면서 지금까지 스크린에서는 볼 수가 없었다.
그러던 그가 근래에 가끔 충무로 영화배우협회에 얼굴을 보였다. 현재는 영화배우협회에 적을 두고 전남 여수에서 글로벌 명품투어인 천아 관광여행사 대표로 국내, 해외관광 회사를 경영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강청은 1959년 경상북도 영천시 대전동에서 태어나 허약한 몸 때문에 16세 때부터 중국무술 18기와 태권도, 합기도에 이어 차력까지 수련했다. 이렇게 강렬한 무술로 다져진 몸과 활력 넘치는 다이나믹한 격투기의 실력은 뭇 남성들도 거뜬히 해치울 수 있는 실력가다. 마침 묘기대행진의 히로인으로 활략 하자 영화계에서 가만 놓아 둘리가 만무했다. 여기에 빼어난 미모는 더욱 영화계의 지름길 이였다.
마침 액션계의 대가 김시연 감독의 ‘팔대장문’에 여자 주인공으로 스카웃 여검객으로 호연을 보이면서 그녀의 연기는 높이평가 되었고 ‘중원의 백일홍’ ‘무림오걸’ ‘사문의 섬객”’등외 출연 각광을 받아 일략 스타덤에 올라 방송에 묘기대행진은 물론 청백전 외 화장품 모델에까지 출연하여 유망주라기보다 기대되는 스타로 점쳐져 있었다. 때를 같이하여 갑자기 액션물이 무너지면서 활동이 뜸했다 그러나 곧이어 당시 멜로물의 거장 정소영(미워도 다시 한 번 감독)감독의 히로인으로 캐스팅 되어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자취를 감추어 한동안 영화계에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다.
강청은 언제나 검소하고 얼굴에 화장기 없이 자연 미인으로 후배와 어려운 사람들을 배려하는 마음은 누구보다 높이 평가 할 수 있었다. 특히 한겨울에 충무로 다방 밖에서 서성거리고 있는 엑스트라 단역 배우들에게 커피를 대접하는 것은 다반사였고 그들에게 몸과 마음을 뎁혀 주었던 따뜻한 마음을 지닌 의리의 배우였다 라고, 현재 영화배우협회 이사장인 거룡(문종석)씨는 강청의 전성시대에 같은 동료로써 그녀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무예 여배우 강청의 현재 모습
강청은 그 당시 20대 초반으로 어렸을 때부터 소라의 꿈을 가지고 있었다. 평범하고 시골의 땅 내음이 푸릇 푸릇나는 시골에서 비둘기처럼 결혼을 해서 아기를 낳고 현모양처로 사는 것이 꿈이었다. 그래서 그 당시 피치 못할 사정으로 연예계에서 등을 돌려야 했고 당시 남편을 만나면서 화려한 영화계를 미련 없이 떠나야 했다.
그녀는 남편을 따라 전남 여수로 내려가 아들, 딸을 낳고 현모양처로 결혼생활을 하면서 오늘의 자리를 굳혀왔다.
강청은 그간 숨가쁘고 재미있는 나날을 보내왔다. 부부가 경영하는 여행사는 주로 해외여행으로 강청 사장이 동행한다. 중국, 일본, 대만, 베트남, 쾀, 태국, 러시 ,동남아, 유럽 싱가폴, 말레시아 대마도등 을 맡아 주로 해외활동을 하며 해외 업무가 없는 날이면 남편과 같이 국내여행을 돕고 나날이 줄거운 삶을 살아왔다.
그녀는 여수에서 살면서 평범한 주부로 97년도부터 틈틈이 장애인 봉사 활동을 해왔고 현재는 사단법인 한국장애인문화전라남도협회 전남여수시지부장과 사단법인 무예문화원 대도화랑무예 여수 지부장을 맡고 있다.
이렇게 항상 새롭게 도전하는 몸짓으로 치열하게 자신의 세계를 개척해 나아가는 강청은 앞으로도 더욱 열심히 노력하면서 봉사활동에도 이바지하겠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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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닷컴 안홍열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