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이상현 기자 = 표절인지 아닌지 따지기 어려운 분야는 비단 가요뿐만이 아니다. '심증'은 있지만 '물증'이 없어 책임을 묻기 어려운 분야가 하나 더 있다.
바로 방송사 예능 프로그램. 거듭되는 논란과 비판에도 불구하고 한 프로그램이 성공하면 유사한 포맷의 프로그램이 양산되는 현실을 더는 '유행'이나 '경향'으로 치부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최근 MBC는 내달 중순께 파일럿 예능 프로그램 '와일드 패밀리'(가제)를 방송한다고 밝혔다.
'와일드 패밀리'는 스타 가족이 다양한 반려동물과 함께 지내는 모습을 담은 관찰형 프로그램. 치유가 필요한 유기견이나 미니 피그, 아기 염소를 스타 가족이 입양해 정성스럽게 키우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감동을 끌어내겠다는 것이 제작진의 의도다.
하지만 '반려동물'을 중심에 둔다는 점에서 KBS 2TV에서 지난달부터 매주 토요일 오후 방송하는 애견 오디션 '슈퍼독'과 본질적인 차이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슈퍼독'과 자사의 인기 예능 '일밤-아빠!어디가?'를 섞었다는 느낌마저 준다.
MBC는 이에 앞서 오는 21일에는 파일럿 예능 '기막힌 남편스쿨'을 선보인다. 불량한 남편들을 교육시켜 아내와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돕는다는 취지인데 올 한해 예능에서 반복된 '남자 어른 교육시키기'의 흐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비슷비슷한 예능 프로그램의 등장은 하루이틀 문제는 아니다. 시청률 경쟁의 심화로 프로그램의 등장과 퇴장이 빈번해지면서 방송사들이 창조보다는 검증된 포맷의 '응용'에 몰두하는 것.
앞서 MBC가 올해 1월 첫선을 보인 '아빠!어디가?'로 인기몰이를 하자 KBS는 '해피선데이-슈퍼맨이 돌아왔다'로 시선을 끄는 데 성공했다. 두 프로그램은 모두 가정적이지 못했던 아버지가 자녀를 돌본다는 동일한 콘셉트다. 다만 후자의 경우 자녀의 연령대가 낮아졌을 뿐이다.
'응용'에 성공했는지 최근 '슈퍼맨이 돌아왔다'는 전작인 '맘마미아'의 부진을 극복하고 시청률이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닐슨코리아 조사 결과 최근 방송의 시청률(코너별. 광고 제외)은 8.4%. 압도적이었던 '아빠!어디가?'(13.3%)를 조금씩 추격하는 모양새다.
하지만 이제 시청자들은 일요일 저녁이면 지상파 3사 가운데 두 곳에서 '아버지의 자녀 양육기'를 지켜봐야 하는 처지가 됐다. 콘텐츠 중복 방송으로 인한 시청자의 권리 침해가 지적될 수 있는 부분이다.
KBS 2TV 예능 '마마도' |
또 앞서 케이블 채널 tvN의 '꽃보다 할배'가 큰 인기를 얻자 KBS는 '마마도'를 편성했다. '할배'를 '할매'로 바꾼 것을 제외하면 콘셉트가 거의 동일해 표절 논란을 일으켰다.
더구나 '꽃할배'가 인기의 정점을 찍을 때 '마마도' 방송이 공개되면서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때문에 제작진은 방송을 앞두고 '마마도'의 고유한 장점보다는 '꽃할배'와의 차이점을 먼저 설명해야 했다.
SBS '심장이 뛴다'도 앞서 방송된 MBC '일밤-진짜 사나이'에서 체험 대상의 종류만 바뀌었을 뿐 기본적으로 같은 콘셉트라는 지적이 나왔다. '진짜 사나이'는 군인을 체험하고, '심장이 뛴다'는 소방관을 체험할 뿐이라는 것.
베끼기 논란이 일면 방송사들은 어김없이 '주제가 다르다', '현장성을 살렸다', '내면에 집중했다' 등으로 차이를 강조하지만 핵심 구도가 유사한 상황에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다.
이처럼 특정 포맷이 호응을 얻으면 비슷한 프로그램이 우후죽순 기획되는 것은 최근 시청률 경쟁의 심화와 제작비 상승으로 방송사가 창조적인 시도를 피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SBS 예능 '심장이 뛴다' |
김교석 문화평론가는 "지금은 'MC가 누구면 된다' 식의 예능 프로그램 성공의 공식이 사라진 상황"이라며 "말 그대로 무엇이 터질지 모르는 현실에 하나의 콘셉트가 성공하면 유행처럼 확산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특히 공중파는 시청률 경쟁에서 단 한순간도 밀리고 싶지 않다는 욕심에 좋게 말하면 벤치마킹, 나쁘게 말하면 베끼기를 하고 있다"며 "장기적으로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제작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11/19 07:00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