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영혼의 미술관' 출간한 인기 작가 알랭 드 보통 인터뷰
개개인의 심리적 필요에 부응하는 예술과의 만남 강조
(런던=연합뉴스) 백나리 기자 =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에 걸려 있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 앞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북적거린다. 많은 사람이 '모나리자'를 직접 보고야 말았다며 즐거워하지만 그림의 어디가 좋았느냐고 누가 물으면 딱히 할 말이 없다.
이런 궁색한 상황에 대해 스위스 태생의 인기 작가 알랭 드 보통의 조언은 "'모나리자'가 유명한 그림이라는 사실을 무시하라"는 것이다. 작가는 '모나리자'가 친척집 화장실벽에 걸려 있고 돈도 안 되는 그림이라 생각해보라고 권한다. 관객 개개인이 심리적 필요에 맞춰 자유롭게 작품을 해석하고 자신과 삶을 이해하는 계기로 삼을 때 '치유로서의 예술'이 가능해진다는 주장이다.
예술 에세이 '영혼의 미술관'(문학동네. 원제 Art as Therapy)을 출간한 작가를 25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의 내셔널 갤러리에서 만났다. 작가는 "사랑과 일, 타인과의 관계처럼 인간으로 살아가면서 발생하는 여러 문제에 답을 줄 수도 있기 때문에 예술작품을 개인적이고 치유의 측면에서 바라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인터뷰에 앞서 내셔널 갤러리에서는 런던 시민 3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강연이 열렸다. 한국에서는 작가가 20∼30대 여성 독자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데 비해 강연에는 다양한 연령대의 남녀가 고루 참석했다.
영국 최대의 미술관인 내셔널 갤러리에는 시대별로 작품이 분류돼 걸려 있다. 작가는 내셔널 갤러리 한복판에서 "제일 재미없는 전시 방식"이라며 거침없는 발언을 마다하지 않았다. 시기와 사조 같은, 연구자 중심의 전시 기준에 집착하지 말고 삶의 곤경이나 인간 감정의 양상을 주제 삼아 전시실을 나누자는 게 작가의 제안이다.
이런 제안을 네덜란드와 캐나다, 호주의 미술관에서 받아들였다고 한다. 작가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사랑과 섹슈얼리티, 슬픔, 불안, 질투, 희망, 노동, 죽음, 타인 같은 인간적이고 일상적인 주제를 예술가들에게 창작 의제로 제시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펼쳤다.
다음은 일문일답.
-- 지금껏 다방면에 관심을 보여왔고 이번엔 예술을 다뤘는데.
▲ 내가 지금까지 쓴 책들은 문화를 우리 삶의 한복판에 던져놓고 그 문화가 선사하는 치유적 측면을 들여다보는 것이었다. 나는 사람들의 인생을 바꿀 수 있고 사람들이 철학적으로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책을 써왔다. 내가 쓴 모든 책은 모두 같은 역할을 하다는 점에서 연결돼 있고 예술의 영역을 들여다보는 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 예술이 개인의 심리적 필요에 따라 적극적으로 향유돼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대형 박물관과 미술관의 작품 전시 방식을 비판했는데.
▲ 인간으로 살아가면서 발생하는 문제, 예를 들어 이해관계나 사랑으로 인한 어려움, 일에서 느끼는 괴로움, 결국은 죽을 운명이라는 사실이 주는 힘겨움,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는 어려움 같은 것에 대해 예술작품이 답을 줄 수도 있기 때문에 예술작품을 개인적이고 치유적인 측면에서 바라보고 싶었다. 예술작품을 우리가 살고 죽는 데 활용할 수 있는 어떤 것으로 보려고 했다.
-- 책 속에 소개한 140여점의 작품은 어떻게 골랐나. 책에 한국의 달항아리도 포함됐더라.
▲ 미술사학자 존 암스트롱과 책을 같이 쓰면서 우리가 좋아하는 그림들을 그냥 테이블에 늘어놓고 골랐다.(웃음) 달항아리는 페이스북에서 알고 지내던 한국인 덕분에 알게 됐고 정말 아름답다고 느꼈다. 우리집에도 조그마한 달항아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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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간 '영혼의 미술관' 출간한 알랭 드 보통
- (런던=연합뉴스) 백나리 기자 = 예술 에세이 '영혼의 미술관'을 출간한 스위스 태생의 인기 작가 알랭 드 보통이 25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의 내셔널 갤러리에서 런던 시민을 대상으로 강연한 뒤 인터뷰를 갖고 있다. 2013. 10. 27. photo@yna.co.kr
-- 개인적으로 삶에 깊은 영향을 준 예술작품이 있나.
▲ 요하네스 버미어나 피에터 드 후흐 같은 17세기 네덜란드 화가들의 작품을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이들의 작품은 반영웅주의적이면서 일상을 품위 있고 올바르게 그려낸다. 내가 내 삶이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을 뿐 아니라 흥미롭지도 않다는 걸 깨달았을 때 이들의 작품이 내 인생에 아주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이 그림들과 마주하면서 나 자신과 내가 처한 환경을 좀 더 우아한 방식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다.
-- 평소 예술을 즐기는 방식이 있다면.
▲ 책상 위 벽에 커다란 판을 하나 붙여 놓고 좋아하는 그림엽서들을 붙여 두고 감상한다. 박물관에서 파는 그림엽서들이다. 박물관이나 갤러리에는 항상 사람이 너무 많아서 진정한 감상을 하기 어렵다. 그림엽서와 포스터는 예술작품과 나 자신을 개인적으로 연결해주는 아주 훌륭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개인적인 접근을 통해서 예술작품을 더 풍부하게 느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사람들이 휴대전화에 자기만의 예술작품을 저장해 놓는 데 익숙해졌으면 한다. 나 자신과 관련된 작품들을 하나씩 저장해가고, 음악을 저장했다 듣는 것처럼 잠깐 시간이 날 때 감상하는 거다.
-- 대형 박물관과 미술관에서 전시 방식에 대한 작가의 비판을 불편하게 여길 것 같다.
▲ 내셔널 갤러리, 테이트 갤러리 같은 곳은 엄청나게 큰 기관이고 나는 그저 한 마리 벼룩에 불과하다. 나는 내셔널 갤러리를 무너뜨릴 작정은 아니다. 다만 이들의 접근 방식에 대해 진심 어린 비판을 하는 건 중요하다고 본다.
-- 한국에서 너무 많은 책이 치유를 약속했지만 요즘은 '힐링'에 대한 피로감이 쌓이고 있다. 차라리 우리의 삶이 고통의 연속이라는 걸 인정해 버리는 게 낫지 않을까.
▲ 내게 좋은 치유란 고통의 수용과 같은 맥락이다. 좋은 의미에서 고통의 수용은 감성적이면서도 우아한 방식으로 우리의 한계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한국 독자들이 어떤 책들에 실망했다면 그건 아마 '일 년 안에 10억 버는 법', '영원히 동안으로 사는 비법', '항상 행복한 성생활을 하는 법' 같은 제목의 책이어서가 아니었을까?(웃음) 문학이나 음악, 영화, 예술이 품고 있는 이상은 언제나 치유의 가능성을 품고 있어서 삶을 약간이나마 덜 괴롭게 한다.
-- 만약 '모나리자'에 대한 소개글을 쓸 기회가 주어진다면.
▲ 우선 '모나리자'가 유명한 그림이라는 사실을 무시하라고 강조할 것이다. '모나리자'를 둘러싼 신화나 열기는 작품과 (개인적인) 관계를 맺는 데 도움이 전혀 안 된다. 그 그림이 경제적으로도 가치가 전혀 없고 친척집 욕실 벽에 걸린 그림이라고 가정해보자. 물론 '모나리자'에는 수수께끼 같은 미소처럼 아주 흥미로운 점들이 많지만 그 작품이 세상에서 너무너무 뛰어난 작품은 아니라는 생각으로, 기대를 낮추고 그림을 보기를 권한다고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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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런던에서 시작한 '인생학교'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 잘 되고 있고 내년에 한국에도 지점을 내기로 했다. 세 군데 정도의 기관과 접촉하고 있는데 이르면 내년 6월쯤 한국에 문을 열게 될 것이다.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10/27 08:42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