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까미유 끌로델(1864-1943)은 오귀스트 로댕의 연인으로 잘 알려진 프랑스의 여류 조각가다. 스승이자 유부남이었던 로댕과의 불꽃 튀는 사랑으로 유명하다.
이자벨 아자니와 제랄드 드빠르디유가 출연한 1988년 작 '까미유 끌로델'은 이런 사랑과 절망으로 채색된 로댕과의 씁쓸한 연애담을 그렸다. 절망의 옷을 입고 사랑 속으로 뛰어드는 부나방. 끌로델의 이미지는 우리에게 그런 부나방 같은 존재로 다가왔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20여 년 후 쥘리에트 비노슈가 연기한 '까미유 끌로델'은 1988년 작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부나방의 에너지도, 희망의 조각도 볼 수 없다. 재능이 지나간 자리에는 폐허가 된 정신만 남았고, 젊은 시절 그녀를 스쳐간 인연은 모두 사멸했다.
영화는 황폐하기 그지없는 끌로델의 마음속을 따라간다. 프랑스가 낳은 리얼리스트 브루노 뒤몽 감독의 손끝은 냉정한 외과의사의 그것처럼 매몰차지만 정밀하다.
프랑스 남부의 한 정신병원에 수용된 까미유 끌로델(쥘리에트 비노슈). 누군가
음식물에 독약을 탄다는 의심과 병원 환자들의 절규 속에 숨 막히는 나날을 보내던 그녀는 견딜 수 없는 답답함에 몸부림친다.
끌로델은 어머니와 함께 살게 해 달라며 애원하지만 그녀의 애절한 목소리는 병동에 있는 그 누구에게도 가닿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의 남동생 폴(장뤼크 뱅상)이 정신병동을 방문한다는 소식을 듣게 된 끌로델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기대감에 들뜬다.
영화는 싸늘하다. 앙상한 나뭇가지를 통과하는 북풍의 냉기는 뼛속까지 시리게 할 정도다. 메마른 정신병원(수도원)의 풍경과 정신병자들의 기이한 표정, 그 속에서 시시각각 변하는 까미유 끌로델의 얼굴은 왠지 모를 슬픔을 자아낸다.
영화를 관통하는 건 사랑도 이별도 아닌 예술이다. 재능이 사라졌을 때의 슬픔이다. 젊은 날의 열정이 식은 뒤 시를 짓지 못했던 윌리엄 워즈워스처럼, 시마(詩魔)를 떠나보낸 끌로델의 고통을 보여주는 데 영화는 주력한다.
그런 끌로델의 비극을 전달하는 비노슈의 연기가 탁월하다. 배우가 표정 안에 담아낼 수 있는 감정의 최대치가 어디까지인가를 마치 증명하듯 보여준다. 잘 조율된 극의 분위기 속에서 넘쳐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연기했다. 매우 드높은 경지다.
'휴머니티'(1999)와 '플랑드르'(2006)로 각각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뒤몽 감독의 담담한 연출도 맛깔 난다. 영화는 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됐다.
10월24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상영시간 95분.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10/15 10:03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