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희생의 시스템 후쿠시마 오키나와'
(서울=연합뉴스) 김영현 기자 = 일본인 스스로 현대 일본 사회의 본질을 '희생의 시스템'이라는 색다른 잣대로 분석한 책이 나왔다.
일본 철학자 다카하시 데쓰야 도쿄대 교수는 신간 '희생의 시스템 후쿠시마 오키나와'에서 현대 일본 사회를 관통하는 개념을 '공동체를 위한 일부의 희생'으로 규정하며 비판의 시선을 던진다.
다카하시 교수에 따르면 '희생의 시스템'에서는 어떤 자들이 얻는 이익은 다른 이의 희생으로 유지된다.
이 희생이 없이는 시스템이 유지되지 않는다. 또 이 희생은 평소 은폐돼 있거나 공동체에 대한 '귀중한 희생'으로 미화되고 정당화된다.
저자는 일본의 군국주의가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제대로 청산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이후에는 '희생의 시스템'이 일본 사회의 토대가 됐다고 분석한다.
'희생 시스템'의 대표적인 예로 후쿠시마와 오키나와를 꼽는다. 후쿠시마는 원자력발전, 오키나와는 미일 안보체제를 상징한다.
후쿠시마를 '희생의 시스템'으로 지목한 것은 도호쿠 지역 원전이 도쿄 수도권 등 다른 지역의 전력 사용을 위해 건설됐고, 피폭위험, 방사능 폐기물 처리장 등의 희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던' 희생의 시스템은 2011년 3월 대지진으로 가시화됐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그는 원자력발전을 "추진하는 순간부터 이미 희생을 상정하며, 특정인의 이익을 위해 타자에게 모든 희생을 떠넘기는 국가적 희생의 시스템"이라고 정리한다.
오키나와 지역은 국가 안보의 축인 미일 간 안보조약을 지탱했다. '본토'의 평화를 유지해 온 '희생의 시스템'인 것이다.
저자는 오키나와가 태평양전쟁 말기에 본토를 대신해 막대한 피해를 봤는데도, 패전 후 미군 때문에 또다시 여러 부담을 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아울러 저자가 일본 사회에서 주목한 것은 '천벌론'이다. 대지진이나 쓰나미 등의 재난은 하늘이 내린 벌이며 그 희생을 통해 살아남은 사람들은 속죄받는다는 논리로 일본 사회에 폭넓게 퍼져 있다.
그는 책에서 천벌론도 결국 이익은 내가 갖고 희생은 남에게 전가하는 '희생의 시스템'과 맞닿아있는 메커니즘이라고 주장한다. 책에서는 정치인 담화문, 천황의 메시지, 저명인사의 저술, 강연 등 다양한 텍스트에서 국가주의와 희생의 논리를 살펴본다.
나아가 민주주의적 다수결 원리조차 소수의 차별을 정당화하는 시스템으로 사용되는 현대 일본 사회의 맹점을 지적한다.
저자는 현재 방사능 위험 경계구역으로 지정된 도미오카마치에서 소년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대재난을 겪은 고향을 바라보는 슬픔, 이제는 수도권 주민으로 가해자가 됐다는 죄책감 등의 감정도 전한다.
그는 "공동체 전체의 이익을 위해 희생이 있어야만 유지되는 사회가 정상일까"라고 되물으며 "문제는 그러나 누가 희생될 것이냐는 게 아니다. 희생의 시스템 그 자체를 없애는 것, 그것이 중요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국내에서도 '희생의 시스템'이 적용되는 지역과 이슈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쪽만 일방적으로 계속 당하는 '희생의 시스템'은 일본의 일만은 아니다.
한승동 옮김. 204쪽. 1만1천원.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2013/09/12 07:00 송고